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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원대 이건희 미술품, 상속세 '물납' 가능한가?

문화 일반

    3조원대 이건희 미술품, 상속세 '물납' 가능한가?

    3조원 규모 이건희 미술품…피카소, 로댕, 리히터 작품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등 국보급 문화재 수두룩
    4월말 상속세 자진 신고 앞두고 관심 '증폭'
    삼성 측, 미술품 해외로 반출 않겠다
    미술품 담보 대출 가능성도

    국보 제216호 정선필 인왕제색도. 문화재청 제공

     

    지난 2008년 1월, 삼성 특검은 용인 에버랜드에 있는 미술품 수장고를 압수수색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이건희 미술품'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수장고에서는 피카소와 샤갈, 세잔, 리히터 등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은 물론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 퇴계 이황, 율곡 이이, 겸재 정선 등의 고서화, 국보급 불상 등 문화재 수천점이 발견됐다. 이곳에는 삼성문화재단 소장품과 '이건희 미술품'이 함께 보관되고 있었다.

    '이건희 미술품'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때는 지난 2007년이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비자금에 대하여 폭로하면서 삼성가(家)가 비자금을 가지고 막대한 미술품을 사들여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은 용인 에버랜드 미술품 수장고에서 의혹이 제기된 현대 미술품 151점을 압수하고 봉인했다. 이 가운데 고 이건희 회장 소유가 141점으로 밝혀졌다. 대부분 이 전 회장의 소유였던 것이다.

    당초 특검은 미술품 구입대금 출처가 삼성그룹의 회삿돈이 아닌지 의심했지만, 수사 결과 미술품 구입대금은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병철 선대 회장 당시부터 주식과 현금이 임원들 명의로 차명 관리되고 있었는데, 그 돈을 가지고 그림을 구입한 것이었다는 게 특검의 결론이었다 이에 따라 이 미술품들은 법적으로 온전히 이건희 회장의 소유로 인정받게 됐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 미술관장이 참고인 조사를 위해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소환되던 모습.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뒤, '이건희 미술품'의 존재는 13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회장 사망 이후 6개월 내에 해야 하는 상속세 자진 신고를 앞두고 ‘이건희 미술품’에 대해 가격 감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지난해 12월부터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의뢰로 약 3개월동안 '이건희 미술품'에 대한 가격 감정을 실시했다. 미술품은 총 1만 3천여 점, 감정 가격은 3조 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중 국보로 지정된 '아미타여래 삼존도'나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국립중앙박물관도 갖고 있지 못한 귀한 유물이고, 고려시대의 '금동 대탑,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 촛대와 청동 나전 거울, 겸재 정선 작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 등 국보로 지정된 한국 고미술품이 즐비하다.

    보물 제926호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문화재청 제공

     

    또한 모네의 '수련',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 회화,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 독일 추상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대표작, 영국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인물화 등 감정가 500억~1000억원 이상 초고가 작품 수십 점을 비롯해 현대미술 작품 천여 점도 보유하고 있다.

    직접 감정에 참여한 미술품 감정 전문가 A씨는 "미술품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상당히 가치가 높은 작품이 많았다"며 "매입가보다 100배 이상 오른 작품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 B씨도 "일제 시대에는 간송 전형필이 문화재를 지켰다면 1960~70년대에는 이병철 회장이 문화재를 지켰고 그 이후에는 이건희 회장이 지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집된 국보, 보물급 문화재가 정말 훌륭했다"고 말했다.

    ◇상속세 '물납제' 맞물려 문화계의 화두로 떠올라

    이 전 회장의 보유 주식 가치는 20조 원을 넘는데다 국보 30점과 보물 82점을 비롯해 서양 근현대미술품 1,300여 점을 포함한 미술품 1만3천여 점의 가치는 3조 원 가량으로 평가되고, 여기에 부동산과 현금자산 등을 포함하면 이 전 회장의 유족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10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받은 주식을 팔지 않고서는 10조 원이 넘는 현금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재계 안팎에서 나오면서, 문화계에서는 돈이 아닌 물건, 즉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문화재와 미술품으로도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물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 10여 개 문화예술계 단체와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들은 지난 3일 '조속한 물납제 제도화를 위한 대국민 건의문'을 이례적으로 발표하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도 최근 취임 일성으로 "상속세 물납제 도입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계의 오랜 숙원 사업인 '물납제'는 지난 2011년부터 추진돼 왔다. 조세는 현금으로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납세자가 현금을 보유하지 않거나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 인정되는 경우 부동산 또는 유가증권 등 특정재산으로 납부할 수 있는데, 여기에 상속세 증여세에 한해 미술품으로도 세금을 낼 수 있게 하자는 게 '물납제' 주장의 핵심이다.

    당초 문화체육관광부는 유명 미술가가 타계할 경우 유족들이 져야 할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유족들이 상속한 미술작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반대 입장을 보였다. 조세법률주의와 형평성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제도화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다시 '물납제' 논의가 떠오른 건 지난해 '간송 컬렉션' 사태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의 일본 반출을 막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유족들이 '간송 컬렉션'을 승계했는데,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은 사실이 알려져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상속세의 미술품 물납제 논의는 주요 미술품과 문화유산의 국외 유출 방지, 예술 진흥을 위해 도입이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기에 '이건희 미술품' 중 국보급 문화재와 유명 미술작품이 다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상속세 물납제' 논의는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법안은 발의됐지만, '삼성 맞춤 입법' 논란 부담…과세당국은 반대 입장

    국회에서도 일부 의원이 의원 입법 형태로 '물납제' 법안을 발의하거나 발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도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삼성 특혜 입법'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기재위에 상정도 되지 않은 상태다. 이광재 의원은 "아직 안건 상정 자체도 되지 않았다"며 "기재위 분위기는 삼성의 상속세 신고가 끝난 다음에야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기류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미술품의 가격을 평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물납으로 받은 미술품을 매각해 현금화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비상장주식의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를 낼 때 주식으로 물납하는 게 허용됐지만, 비상장주식은 현금화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조세회피 수단으로 물납이 악용될 우려가 있어 결국 증여세 물납은 폐지됐고 상속세 납부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실제로 비상장주식을 과세당국에서 물납으로 받아 경매에 부쳤지만 팔리지 않아, 결국 주식으로 세금을 낸 회사에서 원래 신고한 가격의 절반에 다시 사들이는 등 폐해가 컸다.

    재정당국 관계자는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는 상속받더라도 원래 상속세가 과세되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상속재산에 부과되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지정문화재를 물납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형평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결국 정부가 세금을 들여 미술품을 사들이는 것과 같은 얘기다. 현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조세법 전문가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호영 교수는 "미술품 시장은 완전히 공개되어 있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미술품의 거래 가격 사례를 알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공신력있는 감정 가액을 산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현행 세제상 미술품에 대해서는 취득세와 보유세도 없는 상황에서,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 부과에도 ‘물납제’를 허용해 주자는 주장으로는 국민 여론을 설득하기 어렵고, 오히려 특정인을 위한 목적을 가진 법률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 측, "해외로 미술품 반출하지 않는다, 미술관 건립하지 않는다" 내부 방침 세워

    삼성 측에서는 '이건희 미술품'을 해외로 반출하지 않겠다는 내부적인 방침을 세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국가 문화재와 세계적인 미술품들을 해외 경매 시장으로 내놓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건희 미술품'이 대부분 알려진 작품이고 국보급 문화재인데 해외로 반출시키는 것은 여러가지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이 복역 중인 상황에서 관련 사안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 관계자는 "'물납제'에 대해서는 현재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외부의 의견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삼성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대출을 받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미술품을 담보로 한 대출도 검토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미술품의 가액을 감정해 비과세 대상인 문화재의 상속분을 확정하고 상속세 마련을 위한 대출에 필요한 담보를 산정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했을 때 '물납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미술품' 가운데 국보 30점과 보물 82점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비과세 되기 때문에 실제 상속세 대상 미술품 가액은 3조 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또한 일부에서 주장하는 '이건희 미술관'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박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데다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등 혐의로도 기소돼 재판을 앞 둔 상황에서 상속 문제가 부각되는 것도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이건희 전 회장도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재산을 차명주식, 차명계좌를 통해 상속받았고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신주 인수권부사채나 전환사채 같은 방식으로 계열사 주식을 헐값에 인수하게 하는 방식으로 물려주는 등 삼성가의 상속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아 왔다.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며 이재용 부회장도 지난해 대국민 사과에서, 삼성과 관련된 문제의 근원이 경영권 승계 문제임을 인정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인 상속세를 성실하게 납부하는 모습으로 여론을 환기시키겠다는 복안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 분할 납부 중 법안 통과되면 물납 가능할 수도

    그렇다면 '이건희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물납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삼성가 측은 현재 상속세를 한꺼번에 내는 것보다 1.2%의 이자를 부담하면서 최장 6년간 나누어 내는 ‘연부연납(年賦延納)’ 방법으로 상속세를 낼 계획이다. 다만 ‘연부연납’을 할 경우 일정한 담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삼성가 측에서는 유가증권과 부동산 등 담보로 제공할 물건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될 경우 삼성가에서는 오는 4월 말까지 상속세 신고와 함께 상속세 납부 계획을 내게 되며 국세청에서는 이를 토대로 상속가액이 맞는지 등을 일일이 조사해 상속세를 확정하게 된다. 이럴 경우 현행법상으로는 미술품 물납제가 허용되지 않지만, 만약 입법 과정에서 "개정법 발효 이후의 납부분부터 적용한다"는 조항이 들어갈 경우 연부연납 중이라도 법이 개정되면 그 때부터 물납이 가능할 수는 있다. 세무당국 관계자도 "만약 물납제를 도입한다면 개정법 부칙에 내용을 넣는 방법으로 연부연납 중인 상속세 납부에 적용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술품 '물납제'는 계속 이슈가 될 전망

    '이건희 미술품' 상속으로 촉발된 물납제는 앞으로도 계속 이슈가 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물납제'가 도입되면 미술품 감정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미술업계가 나서 '물납제' 이슈를 과열시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물납제가 시행되면 재벌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컬렉션은 물론 재력가, 유명 작가 등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상속세 등 물납을 위한 작품 평가와 시가 감정 등 시장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미술품 상속으로 인한 세금부담 완화와 문화유산의 해외유출 방지를 위해 십여년 전부터 물납제를 추진해 온 터라, 이번 논란을 긍정적으로 본다. 문체부 관계자는 "10년 전부터 삼성과 관계없이 물납제가 추진돼 왔는데 어쨌든 '이건희 미술품'으로 인해 이슈가 되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좋아진게 사실"이라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여러 문제들을 보완해 장기적으로는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서 동덕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문화재 미술품 물납제 도입에 관한 세미나에서 "국세청이 출연하는 미술품의 가치를 가장 낮게 평가한 감정액을 기준으로 독점적 위치에서 가장 저렴하게 사들일 수 있는 우회적인 방식이 있다"고 말했다. 곽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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