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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면돌파에 소환되는 '과거'…북한판 영웅시대



통일/북한

    北 정면돌파에 소환되는 '과거'…북한판 영웅시대

    자력갱생 정면돌파에 과거 위기극복담론 총동원
    고난의 행군·숨은 영웅·천리마시대정신
    김정은 당세포 '10대 과제·12대 품성'…30년 전과 유사
    北 '과거를 보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역설' 강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이 대북제재의 장기화와 코로나19 무역 단절 등에 따른 각종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활용했던 위기극복 담론을 총동원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0년대 '고난의 행군' 구호를 최근 소환한 데 이어 7, 80년대 등장한 '숨은 영웅' 담론, 50년대 후반의 '천리마운동 시대정신' 등도 다시 강조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당 세포 비서대회에서 내놓은 '당 세포 10대 과업과 12가지 기본 품성'도 90년대 전반기에 제시된 사상동원담론인 '당 세포 5대 과업과 10대 품성'을 다시 활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당세포를 '숨은 영웅'이라 치하한 이유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9일 6차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체제의 근간이 되는 세포비서들에 대해 "보수 없이 당을 위해 헌신하는 숨은 영웅 중의 숨은 영웅들"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에 대해 세포비서들은 "총비서 동지께서 숨은 영웅 중의 숨은 영웅, 우리 당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값 높은 칭호"를 안겨줬다며,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영광과 최고의 영예"라고 호응했다.

    70년대 초에 등장한 '이름 없는 영웅', 즉 숨은 영웅은 "수령님께서 심려하시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누가 보건 말건 자기의 모든 정력과 재능을 다 바치는 사람"으로 정의되는데, 80년대 6차 당 대회에서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으로 발전했다.

    시장화와 정보화로 크게 변화된 북한의 사회 경제적 현실, 제재와 코로나19 방역 속에서 8차 당 대회 과업 관철을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현 시점이야말로 남이 보건 말건 헌신을 다 하는 보통 사람들, 숨은 영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전후 복구·천리마시대…가장 영웅적인 시대"

    5,60년대에서 불러온 것은 '천리마 시대정신'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3일 정론에서 5,60년대는 "우리 조국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이고 영웅적인 시대", "가장 가혹한 시련 속에서 가장 경이적인 승리를 이룩한 시대"라며, "전후 복구건설 시기와 천리마 시대의 영웅들처럼 살며 투쟁하자"고 촉구했다.

    신문은 "우리가 (현재) 직면한 난관은 크다"면서, 하지만 "전후 복구건설 시기와 천리마 시대 영웅들의 투쟁 정신으로 살며 투쟁한다면 뚫지 못할 고난이 무엇이고 이룩하지 못할 승리가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5,60대 북한판 '영웅시대'를 소환함으로써 현 시기 북한 주민들의 헌신을 독려한 셈이다.

    ◇北 인민이 갖춰야할 품성과 당면 과제…30년 전과 유사

    김 위원장이 당 세포 비서대회에서 제시한 '당 세포 10대 과업과 12가지 기본 품성'도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당 세포가 지녀야 할 12가지 품성은 바로 "당성, 원칙성, 정치성, 책임성, 이신작칙, 창발성, 군중성, 인간성, 진실성, 락천성, 도덕성, 청렴결백성"이다.

    이는 지난 1991년 5월 10일 김정일이 전국당세포비서강습회 참가자들에 보낸 서한에서 언급한 "충실성, 혁명성, 원칙성, 책임성, 창발성, 헌신성, 군중성, 인간성, 낙천성, 청렴결백성" 등 10대 품성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범 인민이 갖춰야 할 품성이 30년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김 위원장이 제시한 10대 과업도 마찬가지이다.

    당 노선 및 정책으로의 무장, 5대 교양중심의 사상교양사업, 당 규약 학습 및 당 생활의 정규화·규범화, 당 조직 관념 제고와 당 생활기풍 확립, 입당 대상자들의 집중교양 단련, 청년교양에 특별히 힘쓸 것, 인간개조사업을 통한 공산주의적 기풍 확립,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현상과의 투쟁이라는 10대 과업에는 시장화와 정보화의 확산에 따른 북한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이에 대한 대응 자세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김일성 주석이 지난 1994년 4월 1일 전당 당세포비서대회대표들에게 보낸 축하문에서 말한 '5대 과업'을 토대로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주석은 당시 "첫째로 당 중앙위원회의 유일적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가며, 둘째로 당 생활 조직과 지도를 잘 하여 모든 당원들을 주체형의 혁명가로 키우며, 셋째 군중과의 사업을 잘하여 당과 대중의 혈연적 연계를 강화하며, 넷째로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힘 있게 벌려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며, 다섯째로 조국의 안전과 사회주의 전취물을 튼튼히 보위하는 것, 이 것이 현 시기 당 세포들이 틀어쥐고 나가야 할 5대 과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30여 년 전 소련 등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대외 현실 속에서 제기한 과업과 내용 면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방법과 형식면에서 유사성이 큰 것이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당 세포 10대 과업과 12가지 기본품성'은 사실상 김일성 5대 과업, 김정일 10대 품성의 "통합본"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소환의 압권은 '고난의 행군'

    과거로부터 소환된 위기극복 담론 중에서 압권은 역시 '고난의 행군'이다. 김 위원장은 세포비서대회를 마치면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이 90년대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해 위기극복을 위해 동원했던 '고난의 행군' 구호를 다시 꺼내 든 것은 현재 국면에 대한 위기의식을 드러내면서 '자력갱생의 정면돌파'를 강조한 대목으로 관측됐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결심했다는 '고난의 행군'이 "경제난, 생활고의 동의어로 쓰면서 조선(북한)의 현황을 제재와 코로나, 자연재해의 이른바 3중고의 맥락에서 거론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김 위원장의 발언 이후 며칠 뒤 해설 기사를 통해 "그것(고난의 행군)은 새로운 5개년계획의 기간에 인민들이 폐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사생결단"이라며 "노동당은 승리의 다음 단계로 혁혁한 전진을 이루려면 보다 힘겨운 정면 돌파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신보의 해설 '고난의 행군은 과거지사 아닌 미래형'

    조선신보의 기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 위원장이 언급한 '고난의 행군'이 "과거지사"가 아니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과거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혁혁한 진전"을 이루기 위한 '정면 돌파전'이라는 것이다. 과거를 보면서 앞으로 향한다는 역설을 주장하는 셈이다.

    북한은 올해 초 8차 당 대회에서 경제 목표 미달을 인정한 뒤 경제발전 5개년계획 등 각 분야 과업을 제시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내부 정비·보강 전략을 통해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은 뒤 자력부강을 이뤄나가겠다는 것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와의 핵 협상이 앞으로 언제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문화적 자산과 물질적 자산 등 북한 내부의 자원을 총동원해 자력갱생을 도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 "고난의 행군은 능동적 공격적 성격…과도기적 방식"

    그러나 과거를 보면서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 그렇게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더라도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것이 아니라 공격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 사상무장과 자원결집을 통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라며,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과도기에 취할 수 있는 것으로 이런 방식이 오래 갈 수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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