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과 임기를 막 시작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첫번째 정상회담에서 대북 문제에 있어 서로 코드를 맞췄으며, 46년만에 미사일 지침을 종료시키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었다. 신산업 분야에 대한 협력을 토대로 미래 동맹의 길도 모색했다. 다만, 우리가 추진했던 백신 스와프가 불발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 文대통령 원했던 싱가포르 더해 판문점선언 존중받아…성김 임명·미사일지침 해제 성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는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초한 대북정책을 펼 것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추진하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정부 시절 싱가포르 합의의 성과 위에서 대북 문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한 부분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특히 미국이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4·27 판문점 선언을 인정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북미간 협상 뿐 아니라 남북간 자체적인 교류와 협력의 길을 터준 것으로 청와대는 보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에 한국이 많이 기여하지 않았나"라며 "남북관계에 대한 존중과 인정의 뜻"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석이었던 대북특별대표가 문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임명된 것도 성과 중 하나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성 김 주 인도네시아 대사를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한국계로 주한 미국대사 출신이기도 한 그는 6자회담 경험이 있는 등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대북특별대표 임명으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낼으로 기대된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 국무부가 협상하면서 만든 일부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톱다운' 방식을 앞세웠던 트럼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도 이번 정상회담의 큰 수확이다. 1979년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군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 등을 제한해 미사일 개발에 족쇄가 됐던 한미 미사일 지침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46년만에 종료됐다.
총 4차례 걸쳐 조금씩 개정됐던 지침이 완전히 해제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1000㎞ 이상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주로켓 기술 확보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오찬을 겸한 단독 정상회담 모습을 공개했다.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캡처
◇ 백신 스와프 불발됐지지만 美바이든, 軍 55만에 백신 제공…韓기업 44조 선물보따리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백신 공급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간 '포괄적 백신 파트너십'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백신 스와프'를 통해 백신을 미리 당겨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이 부분은 끝내 언급되지 않으면서 불발됐다.
대신에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군인 55만명에게 백신을 직접 지원하겠다고 밝혀 문 대통령의 면을 세워줬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사와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성과를 토대로 문 대통령은 우리 나라를 '백신 허브'로 만든다는 구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미간의 백신 전문가그룹을 발족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기술 교류를 이어갈 예정이다.
미국이 원했던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대한 공급망 강화도 가시화됐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이번 순방에 발맞춰 총 44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양국은 한국 전쟁으로 맺어진 '피의 동맹'을 '미래 동맹'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반도체, 배터리 등 신산업 분야의 교류 뿐 아니라 5G·6G 기술이나 우주산업, 원전협력 등의 협력과 공동진출을 모색하기로 했다.
◇ 노마스크로 유쾌한 회담, 유대감 쌓은 두 정상…北문제와 대중 갈등 불씨는 여전정상회담의 결과물 뿐 아니라 과정도 한미 양국이 만족할 만한 장면들로 채워졌다.
마스크를 벗고 악수를 하며 가까이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 두 정상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명예훈장 수여식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미국 측의 배려로 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명예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6·25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문 대통령은 SNS에 글을 올려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최고의 회담이었다", "정말 대접받는 느낌이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다만, 정상회담에서 어느정도 코드를 맞춘 양국이 실제로 외교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대북 문제에 있어 바이든 대통령이 '톱다운' 방식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으며, 한미 공동성명에 북한 인권 문제가 거론된 것도 북한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미중갈등 국면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던 우리 정부가 한미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