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박성제 사장이 26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사옥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올림픽 개회식을 포함한 중계방송 전반의 문제에 관해 사과했다. MBC 제공MBC가 2020 도쿄 올림픽 중계방송에서 부적절한 자막·사진 사용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사과한 가운데, 노조도 이번 일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이하 MBC본부)는 27일 성명을 내어 이번 개막식 논란을 "해당 국가의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고, 시청자들에게는 불쾌감을 안긴, 변명의 여지 없는 잘못"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5일 열린 대한민국 대 루마니아 경기에서 마리우스 마린 선수가 자책골을 넣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쓴 것을 두고는 "상대 국가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지금 MBC 스포츠는 '올림픽은 MBC'라는 구호가 무색해질 정도로 위태롭기 그지없다"라고 바라봤다.
MBC본부는 "지금 혹독한 책임 추궁을 받고 있는 구성원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반성과 회복의 길을 함께 하고자 한다. 단편적인 정보로 대상을 쉽게 규정하려 하진 않았는지, 우리 안에 우월감이 자리 잡혀 있지 않았는지, 주목을 끌기 위해 배려심을 잊은 적은 없는지 뒤돌아본다. 우리는 이 시간을 시청자의 높아진 감수성에 발맞추고, 공영방송 종사자로서 바람직한 태도를 확고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루 전인 26일 박성제 사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것을 두고는 "이 뼈아픈 과정이 MBC가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을 기회가 되려면 사과문에서 약속한 바들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라면서도 "회사가 대외적으로 적극 사과하면서, 내부적으론 현 상황을 평가하고 책임질 사람을 찾아 문책하는 재판관의 입장에만 서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라고 전했다.
이번 논란 전에도 스포츠국의 대규모 조직개편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 MBC본부는 "스포츠 PD 인원의 축소, 협업 시스템 문제, 제작진과의 소통 부족 등으로 올림픽 중계는 시작 전부터 파행의 연속이었다. 조합은 성급하게 이뤄진 조직 개편 작업이 이번 문제들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줬는지 면밀하게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모습. 황진환 기자MBC는 지난 23일 열린 개회식 당시 우크라이나를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진을, 아이티를 소개할 때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송출했고, 마셜제도는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라고 설명했으며, 노르웨이 차례엔 연어 사진을 띄웠다. 엘살바도르, 루마니아 등에도 부적절하고 경솔한 사진과 설명을 곁들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기에 GDP(국내 총생산)나 백신 접종률을 기재한 것은 특정 국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적이 나왔다.
개회식 논란이 여전한 가운데, 지난 25일에는 국가대표팀과 루마니아의 경기에서 마리우스 마린 선수가 자책골을 넣자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써 질타받았다. 상대 팀 선수의 실수를 희화화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결례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이번 논란은 영국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 'CNN' 등 외신에서도 보도됐다.
당초 MBC는 공식 트위터와 홈페이지에 국문으로만 사과문을 올렸으나 이후 영문을 추가했고, 26일에는 박성제 사장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박 사장은 MBC가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라며 "신중하지 못한 방송, 참가국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방송에 대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당 국가 국민들과 실망하신 시청자 여러분께 MBC 콘텐츠의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 일문일답을 통해 현재 내부 조처 상황에 대해 전했다. 일관되게 '무시'와 '조롱'을 바탕으로 한 방송을 한 것에 대해 관계자들 조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자, 박 사장은 "관련된 분들 중 일부는 업무 배제돼 있고 일부는 업무 중이고 일부는 조사를 받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강도 높은 특별감사나 진상조사위 구성을 포함해서 대책을 논의 중이다. 가장 철저한 조사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재발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도록 하겠다"라고 부연했다.
거듭되는 올림픽 중계 논란이 MBC 본사 스포츠국이 가지고 있던 제작 기능을 자회사인 MBC플러스로 이관한 조직개편 때문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는 "동의하기 힘들다"라는 답변을 내놨다. 박 사장은 "이번 사태가 본사나 계열사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올림픽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참가국을 존중하지 못했던, 규범적 인식의 미비"라고 밝혔다.
이번만이 아니라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도 개회식 때 경솔한 내용을 내보냈다는 비판에 대해 박 사장은 "그런 부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조사 중"이라며 "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필요한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