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윤창원 기자사립학교의 채용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학재단들은 자율성 침해를 이유로 헌법 소원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교육계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사학법 개정안 통과…필기는 교육청이 담당
지난해 11월 박찬대 법안심사소위원장과 소위원들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사립학교법,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등 법안을 심사한 모습. 윤창원 기자지난 2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지난 31일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내년부터 사립학교들도 신규 교원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채용 전형 중 1차 필기시험을 무조건 시도교육청에 위탁해야 한다.
그동안은 사학법 시행령에 '공개전형을 교육감에게 위탁해 실시할 수 있다'고만 돼있었기 때문에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모든 사학들도 공립과 마찬가지로 1차 필기시험을 의무적으로 교육청에 위탁 실시해야 한다. 지원자들은 공립교사 임용시험과 같은 날, 같은 과목(교육학과 전공)으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
"개정안 자율성 침해"…사학·야당 반발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립학교법개정안 철회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사립학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사학과 야당은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헌법과 사립학교법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헌법 31조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사립학교법 1조에도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높임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학 단체들은 이를 근거로 위헌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학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상교육으로 권한을 뺏긴 상황에서 남은 인사권마저 국가에서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는 "정부의 중등사학에 대한 재정지원은, 애초에 정부가 중학교 의무교육과 고교평준화에 사립학교를 강제로 포함시키면서 학생선발권과 수업료징수권을 박탈한 것에 대한 보전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라며 "재정보전을 이유로 사학의 자율성을 오히려 박탈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있을 수 없는 위법적 행정행위"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립학교법 개정안 대신 사립학교들이 공동으로 문제를 출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전북과 경북지역 사학은 이미 이 같은 방식을 시행 중이다. 전북은 교육청이 예산을 지원하고 출제위원과 운영위원을 추천하는 등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경북은 2017년부터 교육청의 개입 없이 사학들이 독자적으로 필기시험을 공동 출제한다.
자율성보다는 공공성…찬성에 힘 실려
하지만 교육계내에서는 사학의 이같은 주장이 갈수록 명분을 상실하고 있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우선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31조 6항을 보면 학교 교육은 법률로 정하게 돼 있고, 사립학교법 1조에 따라 자주성은 공공성을 높이는 한도 내에서 보장돼야 한다"며 "자주성이 공공성보다 우선시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발생해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또 교원의 위탁 채용이 건학이념 혹은 학교의 정체성 실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건학이념 실현과 학교의 정체성 확립은 학교 운영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인 파주고등학교의 이성근 행정실장도 "교육청에서 뽑은 인재는 사립학교에 적합하지 않고 직접 뽑은 사람은 적합하다는 논리는 같은 사학으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 학교는 신규채용에 관한 전형절차를 관할청에 위탁해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우수한 교원을 초빙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필기시험을 자신들이 내야 건학이념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학들이 지역단위 단체 시험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춰지는 이유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장은 "자기들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맞춤형 채용을 실시한다는 사립학교들이 공동으로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은 회피성 대책으로만 보인다"며 "사립학교의 설립 취지는 국가 교육의 공공성보다 우선 되어선 안되고 사립교원 역시 공립학교 교원의 채용 기준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초중고법인연합회의 주장에 대해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고교 평준화와 중학교 무상교육을 통해 학생 선발권, 등록금 책정권을 제한한 이유는 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 권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대신 결손 금액을 재정결함보조금으로 지원해 왔다"며 "계속된 사학비리로 수준 미달의 교사가 교단에 서면서 평등한 교육 권리가 무너졌기 때문에 재정을 지원하지 않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경기도교육청 같은 강화 대책도 필요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현행 사립학교법 개정안보다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논란이 된 경기 성남시 A사립학교와 같이 필기시험의 배점을 임의로 바꿀 경우 학교가 마음에 드는 지원자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책으로는 경기도교육청과 마찬가지로 전국 시도교육청이 사립교원 채용 일부가 아닌 전 과정을 위탁 직접 선발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내년부터 1차 필기만이 아닌 2차 실기 및 면접시험까지 전 과정에 걸쳐 위탁 채용을 진행하는 강화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김용호 경기도교육청 학교지원과장은 "현행 법상 사립학교의 시험 배점을 공립 임용고시와 같게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필기시험만 위탁해서는 공정한 채용을 진행할 수 없다"며 "이번에 통과된 사학법 개정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시험 일체를 교육청에서 담당해야 만연한 사학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