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바라보다 갈게요"…요양시설 '접촉면회'
이번 추석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요양병원·시설의 접촉면회가 가능한 첫 명절이다. 자녀들은 몇 달 만에 부모님 손을 맞잡았다며 코로나19 사태가 하루 빨리 끝나길 바랐다. 임민정 기자휠체어에 앉은 노모(老母)의 모습이 보이자 딸 유순희(65)씨는 "엄마. 엄마"하며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추석을 맞아 16일 서울 서초구 한 요양센터에선 애틋한 접촉면회가 이뤄졌다. 여전한 코로나19 확산세 탓에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로 면회가 이뤄졌지만 딸은 아흔이 넘은 어머니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으며 온기를 느꼈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요양병원·시설의 접촉면회가 가능한 첫 명절이다. 앞서 방역당국은 '추석특별방역' 일환으로 13일부터 2주간 요양병원·요양시설의 접촉면회를 허용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금지됐던 접촉면회는 올 6월 한 차례 제한이 풀렸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2천 명 넘게 나오면서 지난 8월 11일 다시 금지된 바 있다.
요양병원·시설의 입원환자와 면회객이 모두 백신을 맞았으면 접촉 면회가 가능하고, 그 외의 경우는 비접촉으로 면회를 할 수 있다. 이번 면회로 자식들은 몇 달 만에 마음껏 부모님을 안아볼 수 있었다. 한편 비접촉 면회를 한 일부 면회객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면회 시간 내내 노환으로 귀가 어두운 어머니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유씨는 어머니 손을 꼭 붙잡고 "엄마. 건강하세요"를 속삭였다.
면회 시간은 20분. "시간 다 됐어요"란 요양보호사의 말에 유씨는 "조금만 더 바라보다 갈게요"라며 마지막으로 노모의 삐져나온 머리칼을 정리해주고 등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접촉 면회를 끝낸 유씨는 "어머니하고 활발한 대화가 안 돼서 어제는 어쩌나 했는데. 우리 엄마 표정도 밝으셨고 무엇보다 실컷 만지고 왔다"며 손을 바라봤다.
1년여 만의 포옹. 연합뉴스"엄마 나 기억해? 엄마 딸 몰라?"
요양센터의 또 다른 면회 시간. 어머니를 보러 온 삼남매는 연신 노모의 기억을 되살리려 말을 걸며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치매 초기인 80대 어머니는 몇 달 만에 본 자식들을 못 알아보고, 안부인사에도 별 반응 없이 눈만 깜빡였다.
옆에 있던 직원이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어르신 딸 삐졌어. 삐져서 간대"라며 짓궂게 말하기도 했다. 자리에 함께한 한 요양보호사는 "접촉면회는 소통이 잘 안 되는 어르신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이 부모님 손이라도 잡고 만지면서 그리운 마음을 달래신다"라고 말했다.
"엄마 추석 잘 보내요" 면회 내내 어머니 손을 붙잡고 있던 자녀들은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접촉 면회가 끝나고 자식들은 챙겨온 어머니 약을 건네주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비접촉 면회객들 "손 잡아본 지가 언제인지"
백신 미접종자나 PCR 검사를 미처 하지 못한 가족은 '비접촉면회'에 만족해야했다. 치매 어머니를 10년째 요양병원에 모셨다는 강모(58)씨는 "이렇게 오래 어머니를 못 만난 적은 없었다"며 코로나가 터지고 어머니 손 한 번 못 잡아봤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임민정 기자백신 미접종자나 PCR 검사를 미처 하지 못한 가족은 '비접촉면회'에 만족해야 했다. 통유리로 된 칸막이를 사이에 둔 애틋한 면회가 이어졌고 유리막에 가려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탓에 전화로 소통을 했다. 부모님의 손을 직접 잡아드리거나 안아드릴 수 없었던 자식들은 유리막에 손을 맞댔다.
"제가 백신 2차 접종일이 이번 주 토요일이라 그것 때문에 추석인데도 접촉 면회 신청을 못했어요"
치매 어머니를 10년째 요양병원에 모셨다는 강모(58)씨는 "이렇게 오래 어머니를 못 만난 적은 없었다"며 "코로나가 터지고 어머니 손 한 번 못 잡아봤다"라고 눈물을 흘렸다.
강씨는 유리막 건너에서 노모의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며 "빨리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추석이니까 오늘 못 온 가족들한테 어머니 '건강하게 잘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려 사진을 찍었다"며 "접촉면회 자격을 갖추면 그땐 직접 찾아 뵐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센터를 찾은 가족들은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음식을 대접하고 시간을 보내던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고 입을 모았다. 김모(67)씨는 "어머니 만나면 예전처럼 음식도 드리고 그러고 싶어요. 우리 어머니가 카스테라 좋아하시고 과일. 단 거 좋아하시거든요. 예전 추석엔 손주 며느리까지 와서 만났었는데…"라고 회상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본 육십이 넘은 아들은 꽃무늬 블라우스 차림의 어머니를 향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노모는 그 보답으로 '앵두나무 처녀' 노래 한 가락을 불렀다. 김씨는 "오늘은 아들이 가장 좋다고 그러시네. 원래 물으면 자식들 다 똑같다 하다 그러시는데" 웃음 지었다.
연합뉴스91세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4남매가 함께 온 노모(60)씨는 "코로나 전엔 우리 언니가 매일 와서 두세 시간 정도 화투도 치고 했는데 전혀 할 수 없게 됐다"며 "둘째가 토마토 삶고 갈아서 한잔 담아왔는데 이것조차 직접 못 전달한다"며 아쉬워했다. 부스 안엔 3명까지만 들어올 수 있어 노씨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2교대'로 면회를 했다.
유리막에 가로막힌 짧은 면회에 끝내 눈물을 보이는 어르신도 있었다. 이를 보는 자식들 마음도 편치 않다. 두 동생과 면회를 온 황모(65)씨는 "어머니 들어가실 때 울었잖아. 매번 끝날 때면 이러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하다"고 눈물을 보였다.
그럼에도 노모(老母)는 밖에 있는 가족들 걱정부터 했다. 황씨는 "어머니가 91세인데 고관절이 안 좋으시다. 그런데도 장가 안 간 손주를 걱정하시더라"며 "부모가 자식 얼굴도 못 보고 자식이 부모 얼굴도 못 보는 이런 일이 어디 있나"며 답답해 했다.
면회를 미리 신청하지 못해 얼굴은 못 보고 가면서도 "추석 간식거리라도 전하고 싶어 왔다"는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김모(78) 할머니는 "남편이 안에 있다. 추석 전에 봤으면 좋겠는데 못 봐서 간식이라도 챙겨주려고 왔다"며 보온병에 담긴 죽과 간식을 병원 직원을 통해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