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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전방 고지에 묻히고 싶다"는 전두환 유언, '어불성설'인 이유

국방/외교

    [영상]"전방 고지에 묻히고 싶다"는 전두환 유언, '어불성설'인 이유

    핵심요약

    전두환씨, 회고록에 "전방 고지에 백골로 남고 싶다" 글 남겨
    측근 "평소에 '화장해달라' 얘기…전방 고지 묻을 수 있을지 우리가 결정은 못해"
    국방부 "장지에 대해 유족 측과 논의한 바 전혀 없다"…DMZ라면 유엔사 허가 필요
    12.12 당시 노태우 9사단장, 서부전선 전방 지키던 29연대 병력 빼돌려 서울 점령
    사리사욕 위해 전방 경계 내팽개쳤는데, 유언 내용 자체가 뻔뻔하다는 지적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빈소가 마련돼 있다. 박종민 기자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 빈소가 마련돼 있다. 박종민 기자23일 사망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회고록에 '전방 고지에 묻히고 싶다'는 내용으로 유언을 남겼다고 알려지면서 그가 묻힐 장지가 어디가 될지도 주목받고 있다.

    다만 유언대로 장례가 치러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 당시 서울 점령을 위해 전방 경계를 내팽개쳤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유언 자체도
    어불성설
    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방 어느 고지에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국방부 "전혀 논의한 바 없다"

    "내 가슴 속에 평생을 지녀 온 염원과 작은 소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저 반민족적, 반역사적, 반문명적 집단인 김일성 왕조가 무너지고 조국이 통일되는 감격을 맞이하는 일이다. 그날이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건강한 눈으로, 맑은 정신으로 통일을 이룬 빛나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 전에 내 생이 끝난다면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

    전두환씨 측근으로 알려진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전씨가 숨진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 기자회견에서 "회고록에 유서를 남겼다. 사실상의 유서"라며 회고록 3권 648쪽 '글을 마치며' 부분이 사실상 유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씨가) 평소에 '화장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도 전했는데, 이 말대로라면 전씨가 본인 시신을 화장해서 '전방에 있는 고지'에 묻히길 원했다는 뜻이 된다.

    다만 민 전 비서관은 "전방 고지라는 게 장지인데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장지가 결정될 때까지는 일단은 화장한 뒤 연희동에 그냥 모시다가 결정되면 그리로 하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전방 고지들이 대부분 비무장지대(DMZ) 또는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군 당국 허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장례가 치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24일 취재진 질문에 "장지에 대해 유족 측과 논의한 바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정부가 전씨에 대해 국가장을 치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장례에 대해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군 관계자는 "군부대 부지도 국유지인데, 상식적으로 어떤 부대에서 전씨 유골을 안장하겠다는 데 허가를 해 주겠나"며 "유족이 근처에 따로 사유지를 마련해 안치한다면 모를까, 군부대에 안치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만약 전씨 유족이 DMZ에 유골을 안치하겠다면, 이 곳을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유엔사 측은 취재진 질문에 "전씨 유족에게서 요청이 들어온 바 없다"고 답했다.

    사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하는 신군부 세력.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노태우씨, 다섯 번째가 전두환씨. 연합뉴스사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하는 신군부 세력.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노태우씨, 다섯 번째가 전두환씨. 연합뉴스

    12.12 당시 전방 병력 빼돌린 신군부… 유언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지적도

    현실성과는 별개로 해당 유언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쿠데타를 위해 전방 경계를 내팽개친 과오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전두환씨는 국군보안사령관 겸 10.26 사건 합동수사본부장이었고, 노태우씨는 육군 9사단장이었다. 신군부 세력은 12월 12일 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공관에서 총격전까지 벌인 끝에 불법 연행했고, 전군에 비상령이 떨어져 군 당국과 신군부 세력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신군부는 경기도 김포에 주둔하던 특전사 1공수여단을 서울로 보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했다. 박희도 여단장이 하나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했던 3공수여단도 반란에 가담한 최세창 여단장 지시를 받고 바로 근처 특전사령부에서 총격전까지 벌여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 체포했다.

    비슷한 시간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 본부가 위치한 경복궁에 있던 노태우 9사단장은 구창회 참모장을 통해 이필섭 29연대장에게 연대 병력을 이끌고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 현 광화문)으로 출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전방에 배치돼 있던 29연대는 2기갑여단 전차대대와 합류, 이를 앞세워 구파발을 통해 서울로 들어가 중앙청을 점령했다.

    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엄중한 상황에서, 노태우씨가 전방을 지키던 29연대를 빼돌려 군사반란에 악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 공로로 신군부 세력 2인자로 떠올랐고 후에 대통령까지 지냈다.

    1979년 11월 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사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1979년 11월 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사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평시작전통제권은 1994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 이양됐다. 때문에 12.12 당시에는 전방에 배치된 병력을 이동하려면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한미연합사령부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신군부 세력은 이 원칙도 무시하고 병력을 불법 동원했다.

    전두환씨가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통일이 오는 날을 지켜보고 싶다'며 전방 고지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일 자체가 뻔뻔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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