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 빈소가 마련돼 있다. 박종민 기자"북녘 땅이 바라다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
전두환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민정기 전 공보비서관은 23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전씨의 유언을 이같이 밝히며 "회고록에 유서를 남겼다. 사실상의 유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 씨가) 평소에 '화장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하며 회고록 3권 648쪽 '글을 마치며' 부분이 사실상 유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 전 비서관은 지난 2018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회고록의 일부 구절은 자신이 직접 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초고는 전씨가 만들었지만 회고록은 자신이 완성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전씨가 자신의 회고록의 일부 내용을 확인조차 못한 채 출간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민 전 비서관은 당시 뉴스쇼에서 회고록에 조비오 신부를 '사탄', '거짓말쟁이'로 표현한 것에 대해 "이 표현 자체는 내가 쓴 것"이라고 밝혔다. 전씨가 '사탄'이라는 표현 자체를 쓴 적은 없지만 조비오 신부의 말이 허위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에 대해 진행자는 전씨가 책을 직접 쓴 게 아니라면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고, 민 전 비서관은 "원래 회고록은 저자 명의로 나가는 거 아니냐. 그렇지만 모든 회고록이 저자가 직접 쓴 회고록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가 사망한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민 전 비서관이 했던 과거 발언에 비춰볼 때 유서로 알려진 '전방의 고지에 백골로 남아' 구절을 전 씨가 직접 쓴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민 전 비서관은 2013년부터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전씨가 퇴고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민 전 비서관은 지난 8월 30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전씨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전 전 대통령의 구술 녹취를 바탕으로 회고록 초안을 작성했다"고도 말했다.
앞서 국가보훈처는 전씨가 내란죄 등으로 이미 실형을 받았기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이에 유족측은 민 전 비서관이 밝힌 대로 휴전선 부근에 전씨를 안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씨는 향년 90세를 일기로 23일 오전 8시 40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정부는 전씨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장을 진행하지 않으면서 전 씨는 정부로부터 장례와 관련한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됐다.
2011년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하고 국가장이 도입된 이후 사망한 전직 대통령 가운데 국가장을 치르지 않긴 전씨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