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에 거주하던 아버지로부터 편지와 학자금을 받았다가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 한 70대 노인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찰에 불법 체포돼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약 50년 만으로 재심 재판부는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5-3부(이관형 최병렬 원정숙 부장판사)는 지난 8일 70대 노인 A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확정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판결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지난해 9월 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지 약 1년 3개월 만이다.
1970년 서울 모 대학의 학생이었던 A씨는 당시 일본에 사는 아버지에게 편지와 학자금을 받았다. A씨의 아버지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소속이라는 이유로 A씨를 간첩으로 인지한 경찰은 그를 그해 4월 긴급 체포해 연일 무자비한 조사를 벌여 자백을 유도했다. 그 결과 'A씨가 반국가단체와 통신하고 금품을 받았다'며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검찰 또한, 이 논리 그대로 A씨를 기소했다.
그해 8월 서울형사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의 전신)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법원의 2심 재판부는 짧은 심리 끝에 같은 해 10월 형량을 징역 1년으로 낮추기는 했지만 유죄 판단을 유지했고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판결이 확정된 지 50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A씨 측은 법정에서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 과정에 폭행·가혹행위 등이 수시로 있었고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경찰이 최초 A씨를 강제 연행할 때 영장 제시는커녕 피의사실의 요지 혹은 변호인 선임권에 관한 고지도 없었고 뒤늦게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불법 구금한 것도 재심 청구 사유로 제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연합뉴스재판부는 이중 경찰과 검찰의 폭행 및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점은 입증이 부족하지만 경찰이 A씨를 체포한 지 2~3일 후에야 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불법 구금했다고 판단, 올해 7월 15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그리고 한 차례의 공판을 거친 뒤 이달 8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A씨를 불법 구금하며 확보한 진술, 압수물 등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으며 혐의 또한,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편지 내용이 인사와 안부 수준을 넘어 반국가단체 활동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은 아버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받았을 뿐인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 혹은 안전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죄 선고를 마친 뒤 잘못된 판결을 한 과거 사법부를 대신해 A씨에게 사과한다고도 전했다. 재판장은 "끝으로 한 말씀을 드리자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렸지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과거 판결에 대해 위로와 함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부디 명예를 회복하고 쌓였던 응어리를 털어버리고 보다 자유롭고 떳떳하게 생활하기를 기원한다"며 선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