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박종민 기자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칩거 한 지 닷새 만에 돌아왔다. 선거 운동이 한창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대선 후보가 선거운동을 돌연 중단한 것은 그만큼 정의당이 처한 상황이 심각한 위기라는 증거다.
심상정 후보의 최근 지지율은 2%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15%를 넘나드는 안철수 후보는 물론 허경영 후보보다 못한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충격적이다. 심상정 후보는 17일 대선 후보로 복귀하면서 "아무리 고되고 어렵더라도 끝가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진보당의 위기는 심 후보가 스스로 진단한 것처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이면서 고질적인 노선싸움을 벌인 끝에 전당대회에서 싸움판을 벌이는 추태를 연출했다.
그렇게 갈라선 진보 진영은 다른 한 축인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전 대표가 내란선동으로 구속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당이 해산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 판결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진보 정당이 제도권 안에서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이중적 태도가 정의당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잡은 정권초기 민주당은 정의당과 정책 연대를 통해 여러 가지 개혁 작업을 추진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정의당은 '2중대'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민주당과 강력한 정책 공조를 유지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조건으로 내걸며 정의당의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공수처법은 통과됐지만, 민주당은 '꼼수'라며 비난한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 의석을 사실상 빼앗아 오는 배신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정의당이었다. 진보 세력의 확장과 국회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민주당과 협력했던 정의당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심상정 후보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하면서 이른 바 '조국사태'와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 가장 뼈아픈 오판이었다고 밝혔다.
심상정과 노회찬으로 대표되는 정의당의 인물난 역시 지지율 하락에 큰 몫을 했다. 정의당이 내세울 인물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새로 입성한 류호정 의원을 비롯한 새로 선출된 정의당 의원들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 오기는 했지만, 과거 노회찬이나 심상정처럼 내세울만한 뚜렷한 의정 성과나 활동이 눈에 띠지 않는다.
이는 6석에 불과한 소수 정당이 지닌 한계이기도 하지만 의원 개개인의 역량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의당에서 심상정과 노회찬의 뒤를 이을 인물을 배양해 내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가 '대선승리 전진대회'에서 연설 하는 모습. 황진환 기자
하지만 우리 사회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국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정의당은 소중하다. 욕설과 쥴리, 무속인과 대장동 지금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말들이다.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구경만 하고 있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이번 대선이 최악이 아닌 차악, 그것도 아니면 차차악을 뽑을 수 밖에 없는 척박하고 한심한 상황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소수정당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략이 결국 정의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면, 이제 갈 길이 어디인지 방향을 찾아야 할 시기다. "비호감 대선인데 심상정도 비호감이었다."는 심 후보의 자성은 뼈아프지만 반가운 고백이다. 정책과 비전은 간 데 없고 천박하고 치졸한 비난만 오가는 대선판에서 정의당은 선명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노회찬 전 의원의 6411번 버스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같은 승객들을 태우고 불평등하고 기울어진 현장으로 달리고 있다. 무너진 아파트 현장에서는 아직도 6명의 근로자를 찾지 못하고 있고, 생산 현장 곳곳에는 여전히 수많은 '김용균'이 존재하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높고 크지만 정의당이 존재해 야 할 이유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갈 길을 찾아 다시 나서는 심상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