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8일 강제퇴거를 앞두고 있는 성남시 산성동 유영철씨의 반지하 방. 정성욱 기자창문은 있지만 빛은 없는 곳. 유영철(73)씨가 8년째 살고 있는 반지하 방이다. 침대 하나로 꽉찬 단칸방. 한편에는 담배와 약 봉투, 빛바랜 로또 복권이 그의 처지를 말해준다.
유씨에게 이웃은 없다. 모두 떠났다.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산성동은 재개발 지역이다. 그도 떠나야 한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 그의 전 재산인 반지하방 보증금 500만원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근처 부동산에선 5천만원짜리 반전세를 안내했다.
한 달에 67만원의 기초생활수급자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 유씨로서는 '천만원'이 붙는 집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산성동에서 유씨와 같은 처지의 세입자는 30여 가구가 있다. 최근 법원은 유씨에게 오는 27일까지 집을 비우라고 통지했다. 이후에는 강제집행이다.
4500세대 중 30세대 남아…빈집 늘며 야속한 영화촬영지 위상만
18일 성남시 산성동에서 법원 집행관들과 용역업체가 강제집행을 하고 있다. 정성욱 기자산성동은 2025년 3300여 세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조성될 예정이다. 집주인들은 조합원이 돼 아파트 분양권을 받는다. 세입자들도 거주기한 등 일부 조건을 갖추면 재개발 단지 내 임대아파트 청약 신청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세입자 4500여 세대 중 임대아파트 청약 신청 자격이 있는 세입자는 1천여 세대 정도. 나머지 3500여 세대는 떠났거나, 떠밀려 나갔다.
현재 텅빈 산성동에서 움직임이라곤 강제철거를 하는 용역업체와 이를 말리는 세입자뿐이다. 야속하게도 사람이 없다 보니 지난해부터는 이곳이 영화촬영지로 떠올랐다.
유씨는 "빈집을 볼 때마다 남은 세입자들은 속이 타들어 가는데, 빈집이 많다는 이유로 영화촬영지가 됐다"며 "지난해부터 촬영 장면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사무실에 간이 침대, 책상 옆에 밥솥…"갈 곳 없어"
산성동에서 내쫓긴 세입자들은 주변을 표류하고 있다. 정은화(60)씨는 산성동에서만 30년을 살았지만 지난달 산성동에서 쫓겨났다. 출근길 골목에서 마주친 용역업체 직원들은 정씨를 지나친 뒤 그대로 그의 집 문을 뜯어냈다. 이어 정씨의 물건들을 거리 밖으로 내던졌다.
정은화씨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사무실이자 거주지. 책상 옆에는 밥통이, 난로 위에는 세면용 대형 냄비가 놓여있다. 정성욱 기자급한대로 그는 10평짜리 자신의 사무실에 가정을 차렸다. 사무실 안쪽에는 간이 침대를 뒀다. 집에서 쓰던 빨간색 밥통도 가져다 놨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난로 위에 양은냄비를 올려놨다. 자식들이 안부를 물을 때마다 서글프다.
하지만 사무실 생활도 시한부다. 정씨의 사무실이 있는 성남시 중앙동도 올해 6월부터 재개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씨는 "자식들은 모두 독립했고 혼자만 건사하면 돼서 사무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재개발을 반대하는 것도, 책임지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은 너무 춥다. 남은 사람들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갈 곳이 없는데 나가는 시기를 조금 늦춰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조합 "한 달에 은행 이자만 5억…법대로 해야"
재개발 철거가 진행 중인 성남시 산성동 현장. 정성욱 기자조합원들도 세입자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이들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집주인과 세입자로 돈독하게 지냈다. 하지만 생계가 걸리다 보니 관계는 틀어졌다.
조합은 은행에서 재개발 사업비로 대출받은 이자만 한 달에 5억원이라고 말한다. 세입자들이 나가야 철거를 하고 본격적인 아파트 공사에 들어가는데, 세입자들이 나가지 않아 빚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관련 법령에 따라 세입자들에게 주거 이전비용도 지원한다고 설명한다. 1인 가구는 평균 900만원, 2인 가구는 1200만원 선이다. 더욱이 2020년부터 1년간 이주기간을 줬기 때문에 더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조합 관계자는 "매달 은행 이자만 5억원씩 나가고 있고, 세입자들에겐 지난 1년 동안 이주 기간을 알렸다"며 "세입자의 사정도 이해하고 추운 겨울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곳뿐 아니라 모든 재개발 사업은 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관련 규정 없으면 끝? "성남시는 방관자"
용역업체의 강제철거가 진행된 성남 산성동 한 마트 모습. 정성욱 기자
산성동에 남아있는 세입자들은 성남시의 태도를 지적한다. 직접 인허가를 내준 관리 주체이면서도, 민간 사업이란 이유로 방관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동계 철거'를 외면하는 모습은 지자체로서 자격이 없다고 꼬집는다.
김정태 성남 산성동 대책위원장은 "산성동 재개발 사업은 성남시의 도시를 정비하는 차원의 사업인데 민간 여부를 따질 게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시는 관련 조례가 없다는 이유로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시 등 일부 자치단체는 조례로 '동계 철거'를 금지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제68조는 '12월부터 2월까지' 세입자들에 대한 강제 퇴거를 제한하고 있다.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부산시(제53조)와 광주시(제61조), 대구시(제54조)도 세입자를 보호하는 조례를 마련하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시도 조합 측에 동절기는 피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지만, 관련 조례도 없고 법원 판결에 따라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할 방법이 없다"며 "강제집행보다는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