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순항미사일이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발사되는 모습. 연합뉴스북한은 지난 25일 발사한 순항미사일과 27일 쏜 탄도미사일에 대해 관영매체를 통해 사진을 공개하며 발사 사실을 인정했다.
순항미사일은 이번에 사거리가 연장된 개량형으로 보이지만 사실 둘 모두 크게 새롭지는 않은 무기다. 하지만 운용 방법이 달랐다. 이미 여러 차례 시험발사했던 탄도미사일을 저각으로 쏘는 등 방공망을 돌파하겠다는 식인데, 한미 군 당국은 더욱 골치가 아프게 됐다.
좀더 길어진 비행거리…속도는 지난해 9월과 거의 비슷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5일 발사한 순항미사일에 대해 "국방과학원은 1월 25일 장거리 순항미싸일 체계 갱신을 위한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며 "발사된 2발의 장거리 순항미싸일들은 조선(북한) 동해상의 설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9,137s(2시간 35분 17초)를 비행하여 1800km 계선의 목표섬을 명중하였다"고 발표했다.
1800km를 2시간 35분 17초 정도 날아갔다면 평균속도는 마하 0.58(197m/s, 709km/h)로 아주 빠른 수준은 아니다. 지난해 9월 11일과 12일 순항미사일 발사 뒤 북한이 공개했던 발표 내용에 담긴 속도와도 거의 같다.
물론 이는 순항미사일 특성상 방향을 이리저리 자유자재로 바꾸는 과정을 포함한 평균 속도라는 점에서, 실제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속도는 미군이 운용하는 토마호크(마하 0.7)와 비슷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군 관계자는 이 미사일에 대해 "내륙에서 상당 부분 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는데, 2시간 넘게 북한 내륙 상공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유도 능력을 검증했다고 추정된다. 함께 공개된 사진을 보면 표적인 함경북도 길주군 무수단리 앞바다 무인도 '알섬'에 명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난해 9월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뉴스1 제공미사일 사진을 지난해 9월 쏜 순항미사일과 비교해 보면 형태는 다소 다르다. 비행거리도 1500km에서 1800km로 20% 정도 늘어났다.
다만,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5연발 캐니스터(발사관)를 탑재하고 있다는 점은 두 미사일이 같다.
3년 전 처음 쐈던 KN-23, 저각발사로 재등장
27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는 당초 2019년 처음 시험발사했던 '대구경 조종방사포'나 '북한판 에이태킴스(KN-24, 화성포-11나형)'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2019년 5월 4일 처음 발사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로 보인다.
노동신문은 이 미사일에 대해 "국방과학원은 1월 27일 지상대지상 전술유도탄 상용전투부 위력확증을 위한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며 "발사된 2발의 전술유도탄들은 목표섬을 정밀타격하였으며 상용전투부의 폭발위력이 설계상 요구에 만족된다는 것이 확증되였다"고 보도했다.
'폭발위력이 설계상 요구에 만족된다'는 표현으로 보아, 일단 이 미사일은 핵탄두가 아니라 재래식 탄두 탑재용이다. 다만 고도와 비행거리가 문제다.
북한인 지난 27일 시험발사한 지대지 전술유도탄 시험발사 장면. 탄두가 폭발하면서 커다란 구형 화염이 발생한 것이 보인다. 연합뉴스2019년 5월 4일 북한이 이 미사일을 처음 쐈을 때 정점고도는 60km, 비행거리는 240km으로 탐지됐었다. 그 뒤 같은 미사일을 5월 9일, 7월 25일, 8월 6일 발사할 때는 고도 37~50km, 비행거리 400~600km를 기록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7일 이 미사일이 발사됐을 때 고도 20km와 비행거리 190km로 탐지했다고 밝혔다.
탐지된 제원을 비교해 보면, 이번에는
같은 미사일도 상당히 저각으로 비행거리를 줄여 쐈음을 알 수 있다. 군 관계자도 "기존 미사일 사거리를 줄여서 쐈을 가능성을 포함해 정밀 분석하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었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다.
문제는 '저공비행'…북한, 미사일 저각발사로 한미 요격 회피 노린다
바다에서, 지구 곡면과 레이더 탐지범위에 대한 그래픽.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수상함에 달린 레이더는 일정 거리 이상에서 적 함대나 저공으로 날아오는 항공기를 탐지하기 어렵다. 비행원리가 비행기와 똑같은 순항미사일도 마찬가지다. 국제해양안보센터(CIMSEC) 제공이날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된 두 미사일엔 공통점이 있다. 저공비행이 가능하며 대놓고 이 점을 노린 발사라는 점이다.
순항미사일은 본래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비행기와 원리가 비슷하다. 비행경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특성상 대함미사일로 많이 쓰이는데, 이럴 때 10미터 내외로 매우 낮게 날아 수상함의 레이더를 피하는 방식이다. 이를 시 스키밍(sea skimming)이라고 한다.
땅에서는 여러 지형지물이 많아서 바다보다 더 정밀한 유도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상 표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쓰일 수 있다. 이런 방식이 효용성이 있는 이유는 지구가 둥글다는 점 때문이다.
지상에 설치된 레이더로는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일정 고도 이하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제대로 탐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 군은 공중에도 여러 정찰기와 조기경보통제기를 띄워 24시간 북한을 감시하고 있지만 북한 지역을 100% 음영구역 없이 지켜보는 일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물론 레이더 가까이 날아왔을 때는 탐지가 가능하지만, 그만큼 요격에 필요한 시간은 촉박해져 있는 상황이다. 산이 많은 한반도 특성상, 자연지형에 바로 붙어서 날아오면 빨리 탐지하기가 어렵다.
같은 이유로 저각으로 쏘는 탄도미사일 또한 골치아픈 문제다. 탄도미사일은 순항미사일처럼 지형지물 몇 미터 위에 붙어서 날아오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저각발사를 하면 마찬가지로 레이더가 탐지할 수 있는 고도 아래에서 표적을 노릴 수 있다.
KN-23은 2019년에 고도 50km, 비행거리 600km를 이미 기록한 일에서 알 수 있듯
원하면 이번처럼 저각으로도 쏠 수 있고, 좀 더 멀리 있는 표적을 노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고각으로 쏠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군 관계자는 "어떤 속도와 고도로 발사하더라도 북한이 남쪽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엔 모두 막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요격이 그렇게 쉽지 않다.
한미는 여러 정보망을 통해 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를 대부분 미리 포착한다. 문제는 징후를 안다고 해도 미사일이 실제로 발사되기 전에는 도대체 어디를 노릴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나서도 앞서 설명한 지구가 둥글다는 점 때문에 한미 군 당국 레이더에는 발사 뒤 일정 시간이 지나고 일정 고도에 도달해야 그 때부터 레이더에 포착된다. 이를 기반으로 발사 지점과 비행 경로를 계산해야 대응이 가능하다.
순항미사일이든 탄도미사일이든, 저각발사는 레이더 탐지범위 아래로 낮게 날아오는 만큼 이런 계산을 어렵게 하고 한미가 필요한 대응 시간을 벌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미사일에 대한 대응은 원래 초 단위로 해야 하는 만큼 몇 초라도 시간을 못 벌게 하는 쪽이 북한 입장에서 유리하다.원래 미사일은 다른 무기체계와 달리 공격하기 쉽고 방어하기는 어렵다. 쏘는 입장에서는 표적과 궤도를 미리 계산해서 쏜 뒤 도망치면 되지만 막는 입장에서는 미사일을 쏘는 즉시 궤적을 계산해 어디로 올지 예측하고, 실제 탄착 전에 요격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이번에 쏜 KN-23은 재래식 탄두였지만 실전이라면 탄두가 재래식일지, 핵일지, 화학무기일지, 생물학무기인지도 미리 알기 어렵다.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같은 미사일로 이런 다양한 궤적의 시나리오로 운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요격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며 "한미의 탐지 및 요격을 회피하도록 보다 낮은 고도에서, 보다 빠른 속도로, 보다 강화된 변칙기동을 수행하고, 보다 다양한 사거리 성능, 보다 다양한 운용 시나리오를 통해
남한이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양한 목표물에 대해 동시타격이 가능하도록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