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절차 없이 공무원 등 시민에게 보낸 국민의힘 임명장. 독자 제공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에서 연초부터 공무원 등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확인 없이 전자 임명장을 보내 논란이 일었지만, 지금도 이같은 행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실수', '착오'라고 하기에는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임명장 남발'이 반복되고 있는 와중에,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며 해당 행위에 면죄부를 줬다.
9일 민주당·선관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한 당직자는 이날 오후 윤 후보의 직인이 찍힌 전자임명장을 받았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직능총괄본부 문화예술지원본부 문화강국특별위원회 특보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하다"라며 고마워했다.
이 당직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임명장을 보내다니 그야말로 웃픈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른바 '윤석열 임명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인 없이 뿌려지고 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최근까지 민주당 소속 의원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영입됐던 독도전문가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에도 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경선 과정에도 초등학교 6학년 학생, 경선 경쟁자인 원희룡 후보,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선 후보에게 '특보로 임명한다'는 등의 임명장을 보냈고, 정당 가입이 불가능한 공무원과 교사, 민주당 소속 현직 구청장, 목회자, 일반 시민 등에도 임명장을 뿌렸다.
이들 모두 하루아침에 자신도 모르게 국민의힘 '특보'가 됐다. 특히, 한 시민에게는 반발했는데도 선거대책기구 이름만 바꿔 두 번이나 임명장을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보이스피싱인줄 알았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당시 "착오였다"라고 해명까지 했지만, 실수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선관위는 이런 임명장 남발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선관위는 "개인 정보 도용 부분은 형법상의 문제로서 선관위 소관은 아니다"라며 "임명장을 보낸 부분에 대해서는 '선거 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공직선거법 제93조 제3항(누구든지 선거운동을 하도록 권유·약속하기 위해 선거구민에게 신분증명서·문서 기타 인쇄물을 발급·배부 또는 징구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선관위는 "전국에서 발생한 사안이라 중앙선관위에 넘겨 조사를 했다"라며 "선거운동을 직접적으로 하는 선거사무소나 연락소가 아닌 선거대책기구에서 보낸 임명장이 실수로 보이며, 선거 운동을 위한 임명장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신고한 시민에게는 이런 내용의 결과를 알려드렸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경남도당 당직자에게 보낸 임명장. 페이스북 캡쳐
공직선거법 제61조 '선거사무소와 선거연락소를 설치한 자가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선거대책기구는 '선거를 준비하는 조직'으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여러 사례를 확인할 수 없어 '실수'라는 쪽으로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공직선거법·개인정보보호법 논란이 불거지며 '임명장 남발'이 이어지고 있어 소극적이고 편협한 법 해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임명장은 지지자 등에게 직책을 부여해 선거운동을 독려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고 있지만, 선관위는 개선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법 위반이 아니라며 대응에 선을 긋고 있는 등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당에 가입할 수도 없는 데도 임명장을 받은 경남도청 공무원은 "선관위에 신고 이후 관련 내용이 중앙선관위에 이첩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조사 결과를 나는 통보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게 선관위의 공식 입장이라면 전혀 수긍할 수가 없다"라며 "동의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나를 임명했는데 이게 위반이 아니라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