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미국 등 서방이 경제 제재의 고삐를 더 바짝 조이면서 러시아의 디폴트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 1일 "러시아의 디폴트 위기 가능성이 커졌다(extremely likely)"고 밝혔다.
대러 제재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러시아 경제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유럽 경제에 타격은 불가피하다.
'현금 국외 반출' 초강수 둔 푸틴…사재기 나선 러 국민
서방의 강력 제재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러시아 민간 경제다.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초인플레이션 우려에 사재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식료품 가격은 물론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가전제품 가격도 치솟고 있다. 애플페이와 구글페이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뱅크런(현금 대량 인출 사태)에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외화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일 1만 달러(약 1205만 원)를 초과하는 외화의 현금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인상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지난달 28일 러시아의 스위프트 퇴출을 결정하면서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다. 연초 대비 30% 절하된 상태다. 이 조치로 러시아는 수출 대금 등을 달러로 바꿀 길이 막혔다. 스위프트는 전 세계 200개 이상 국가 주요 은행 및 금융회사 1만 1000여곳이 이용하는 국제 송금·결제 시스템이다.앞서 러시아는 외국인 투자자의 러시아 내 자산 회수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원유 판매로 급한 불을 꺼보려는 시도도 여의치 않다. 해외 정유사들은 대러 제재를 우려해 러시아산 우랄유 구매를 중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스웨덴 정유사 프림과 핀란드 네스테오일 등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하고 북유럽산 원유로 대체했다. 우랄유 가격은 브렌트유가 장중 배럴당 107달러를 넘어서는 와중에도 이보다 18달러나 낮게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IIF 엘리나 리바코바 부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경제는 올해 10% 초반의 마이너스 성장률과 두 자릿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급하강할 것"이라며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인 BB+로 강등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러시아의 달러화 표기 국채 미상환 잔액은 330억달러(약 39조 7800억원)로 추산했다. 회사채 등까지 포함하면 1350억달러(약 162조 7500억원)의 대외 채무 만기일이 1년 안에 다가온다.
연합뉴스유럽 경제 타격 불가피…깊어지는 중-러 밀착관계
러시아 경제가 휘청이면서 해외 금융기관들의 타격도 불가피하다. 특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유럽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은행들이 각각 250억달러, 오스트리아 은행들도 175억달러 규모의 러시아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가·곡물값에 이어 원자재값도 급등하면서 초인플레이션 우려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팔라듐 가격은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팔라듐은 자동차 촉매제, 반도체 센서와 메모리에 쓰이는 원자재로 러시아는 전세계 팔라듐 생산의 40%를 차지한다.
다만 일각에선 러시아의 경제 규모가 이탈리아보다도 작다며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 오바마 행정부 시절 경제 고문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제외하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작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구원투수가 되어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러시아 외환보유고의 15%는 중국에 있고, 중국 정부는 기꺼이 도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최근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30년 계약에 합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