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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가출에서 흉악범죄까지…소년은 어떻게 '범죄자'가 됐나 (계속) |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비행 청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 소년법의 두 가지 목표다.
우리 사회는 반사회 성향 소년이 건전하게 자라길 바라며 소년법을 뒀다. 만 19세 미만이라면 범죄를 저질러도 소년법에 의거, 형사처벌이 아닌 '소년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기회를 준다는 의미다.
보호처분은 1호에서 10호까지 있다. 보호자 감호 위탁부터 소년원 송치까지, 처분은 소년의 죄질보다 재비행 가능성을 중심으로 내려진다. 10세 이상부터 보호처분 대상이 되고, 14세부터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개선 가능성이 없다면 형사재판을 받을 수 있다.
2020년 법원에 접수된 소년보호사건은 약 3만8천 건이다.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저질렀을까. CBS노컷뉴스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소년부에 접수된 소년보호사건 12건과 통계를 통해 소년법의 의미를 들여다봤다. 사례에 쓰인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가출, 범죄의 시작…절도·사기가 가장 많아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중학교에 갓 올라간 다현이는 7개월 동안 다섯번 '실종'됐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아버지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탓에 툭하면 집을 나갔다. 동네 선배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다현이는 상습 가출로 소년부 재판을 받았다.
소년법은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의 소년을 '우범소년'으로 분류한다. 몰려다니며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 술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행위 등을 한 소년들이 해당한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재판에 간다. 2020년 우범소년은 전체 소년보호사건 중 3.7%를 차지했다.
가출은 추가적인 비행으로 이어지곤 한다. 경제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생활비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절도나 사기를 저지른다. 호기심 등의 이유도 있어 두 죄명 비율을 합하면 전체 소년보호사건의 거의 절반일 정도로 흔한 비행이다.
중학교 3학년 하은이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다른 지역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친구 관계가 중요했던 하은이는 가출해 무리와 함께 절도 등 비행을 이어갔다. 그러다 인천에서 일산까지 택시로 이동하며 요금을 서너 번 내지 않아 사기로 입건됐다. 이미 한 번 보호시설에 다녀온 하은이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성매매 피해 노출된 여성 청소년들…보호 필요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출은 특히 여성 청소년들에게 위험하다. 돈벌이 수단으로 조건 만남을 하며 성인과 또래 집단으로부터 성 착취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전까지는 성매매 유입 아동·청소년도 보호처분 대상이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이 개정되면서 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를 통해 법적 보호를 받게 됐으나 위험한 상황은 여전하다.
중학교 2학년 예원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온라인 등에서 성범죄에 노출됐다. 어머니는 예원이가 4살 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교통사고 이후 생계 활동을 못 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예원이를 키워왔다. 집안 분위기는 우울했고, 아버지는 예원이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집도 학교도 예원이를 외면했다. 중학교 때는 동급생이 나체 사진에 예원이의 사진을 합성해 유포했다. 가해자는 강제 전학을 갔지만 예원이도 더는 학교를 못 다녔다. 당시 아버지가 예원이를 비난하자 예원이는 한겨울에 집을 나왔다. 쉼터에서도 지도 교사 지적에 반발해 도망쳤다. 술 사주겠다는 성인 남성과 조건 만남을 한 예원이는 시설 보호처분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윤서도 여러 차례 성매매를 했다.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해 조부모와 함께 살던 윤서는 할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재혼한 아버지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윤서를 폭행하고 정서적으로 학대했다. 이복동생들과 차별당하며 가족 사이에서 겉돌던 윤서는 결국 가출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쉼터에 거주하던 윤서는 사기, 점유이탈물 횡령 등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윤서의 진술서엔 "집이 지옥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또 상처를 준다"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재판에서도 "자기가 잘못해서 몸을 버렸다"며 윤서를 책망했다.
분노·우울이 범죄로 표출…보호자와는 정서적 관계 단절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책 <소년을 위한 재판>을 쓴 심재광 판사는 소년비행의 가장 큰 특징으로 '충동성'과 '반복성'을 짚었다. 2020년 보호소년의 행위 원인 중 '우발'은 41.9%로 가장 많았다. 청소년의 분노와 우울감 등 감정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면 반복되는 비행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신생아 때부터 보육원에서 살던 고등학생 현우는 초등학생 때 보육원 형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자신도 패싸움을 시작했다. 중학생 때 좋아하던 보육원 선생님이 떠나면서 방황을 심하게 했다. 학교폭력 등으로 징계를 받았던 현우는 보육원 유리창과 문, 벽 등 기물을 파손해 소년부로 넘겨졌다.
고등학생 준영이는 PC방에서 지갑과 시계 등 고가품을 훔쳤다. 집에서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간병하던 할머니는 화가 나서인지 수시로 욕설을 했다. 화살은 준영이에게도 향했다. 욕설이 듣기 힘들었던 준영이는 어느 순간부터 학교 가기를 거부했고 우발적으로 비행을 저질렀다.
보호자와 정서적 관계가 단절된 청소년들도 범죄에 손을 댔다. 화장품 매장에서 4만 원 상당의 화장품을 훔친 민경이는 어머니와 대화하지 않던 상태였다. 모녀는 둘 다 우울증이었다. 아버지는 숙식 '막노동'으로 지방에서 생활했다. 민경이는 고등학교 자퇴 후 비행 소년들과 어울렸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소년부에 통고했다. 소년원에서 나온 민경이는 또다시 가출했다.
중학교 3학년 유빈이는 빈집에서 친구들과 '래커(락카)'와 부탄가스 등 약물을 3번 흡입했다. 유빈이는 락카 흡입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무리에서 따돌림당하기 싫어 함께 비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부모님은 유빈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혼했고, 이는 유빈이에게 상처로 남았다. 사춘기 들어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교류하기 어려웠던 유빈이는 친구들에게 의지했다.
가해자면서 피해자이기도…'범죄 선택'은 누구 책임인가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소년범죄의 또 다른 특징은 소년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얼굴을 포함해 온몸에 문신이 있는 중학생 강민이는 보호처분 기간에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훔치고 무면허로 운전했다. 강민이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 연령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를 시작했으나 비행 정도는 더 심해졌다.
병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주변의 지지와 협력이 강민이에게 없었다. 강민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처음엔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나중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아버지는 외도하다가 집을 나갔고, 어머니가 강민이를 돌봐왔지만 보호 능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지환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길거리 여성을 불법 촬영했다. 수능이 한 달 남은 시점에 붙잡혔다. 모의고사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다는 게 범행 이유였다. 지환이도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주식 투자에 실패한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투면서 어머니를 폭행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지환이도 아버지로부터 맞았다.
소년범들이 어려운 가정환경에만 있는 건 아니다. 중학생 승호는 부모님, 형과 함께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다만 부모님은 승호가 동네 '일진'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페이스북 단체 채팅방에서 시비가 붙은 승호는 서열을 가린다며 어느 봄날 공원에서 집단 패싸움을 했다. 승호는 "친구들이 부추기는 분위기에서 겉멋에 빠져 싸움을 했다"고 말했다.
특목고에 다니던 동욱이는 길 가던 여성을 불법 촬영하고 성추행했다. 4살 무렵 부모님이 이혼해 할머니 손에 컸지만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유복하게 자란 경우다. 동욱이는 아버지 기대에 부응하려고 특목고에 진학했지만 친한 친구도 없고 경쟁이 심해 학업 스트레스를 풀고자 범행했다고 말했다.
소년범죄의 배경을 살펴보면 가정·학교·사회로부터의 방치, 심리적 불안, 또래 압력 등이 자리한다. 물론 더욱 광범위한 배경과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행동을 선택하는 건 자율성이 있는 개별 청소년이다. 범죄는 어떠한 경우라도 저질러선 안된다. 범죄의 흉악성, 피해를 입고 눈물을 흘리는 또 다른 소년들이 있다는 점에서 소년범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올바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필수다.
다만 그 책임을 손 쉬운 도구가 될 수 있는 처벌 강화와 연령 기준 하향으로 채운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소년법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 되고 있는지, 소년범의 잘못된 선택은 단순히 소년범만의 선택인지 등 충분한 숙고가 이뤄졌는지 물음표가 제기되는 셈이다.
8년간 소년보호재판을 맡아 '호통판사'로 알려진 천종호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문제는 비행청소년에 대한 혐오"라며 "비행이나 범죄로 내몰리는 것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를 못보니까 순수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역반응으로 혐오가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행은 혐오받아야 할 게 맞지만 아이들이 왜 비행에 이르게 됐는지 실상을 보고 근원적으로 막을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