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1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2010년 11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날 연평도 포격전에 대해 여야 의원들이 1·2차 대응사격에 왜 각각 13분과 15분이 걸렸냐고 묻자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은 답했다.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든가 그런 식으로 생각할 때는 당연히 쏘게 되면 바로 됩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그 포탄이 여기저기 낙하하면서 여기저기 피해가는 그런 상황에서, 바로 즉응사격한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스타크래프트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남짓 스타크래프트를 즐겼던 기자도 잘 알고 있다. 게임 속에선 최전선에 나가 있는 병력을 사령관(플레이어)이 직접 세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 해병(마린)과 공성 전차(시즈 탱크)는 적 사격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쓰러질 때까지 한 치도 빗나가지 않고 명령에 따라 사격하며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자원을 채취해 금방 얻을 수 있다. 사령부(커맨드 센터)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체적으로 이륙해, 공중에 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건물이나 전차가 적 공격에 피해를 입으면 건설로봇(SCV)을 투입해 금방 수리하면 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다.실전에서 지휘통제는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 현장 지휘관은 일선 병력으로부터 보고를 받아 자신이 책임지는 구역의 전투 현황에 대한 판단과 결심을 내리고 이를 상부에 보고한다. 이렇게 지휘관들로부터 받은 보고를 종합해 국군통수권자가 판단과 결심을 내리면, 다시 현장까지 전달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실 결심한 그대로 병력들이 움직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래야 하지만,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언급한 전장의 안개(Nebel des Krieges) 즉 불확실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지휘관은 여러 정보를 최대한으로 조합해 목표를 달성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부하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
서울 용산구 합동참모본부 건물. 연합뉴스명분은 그럴싸하다. 전시 지휘소는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 B-1 벙커인데 평시 지휘소는 합동참모본부 B-2 벙커이니, 장기적으로는 합참이 남태령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군사적으로는 옳을 수 있다. 물론 군 관계자는 "전시 지휘소와 평시 지휘소는 필요한 시설이 다르다"며 "전시 지휘소가 훨씬 넓으며 그 목적에 맞추어 설계된 탓에 평시에도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말하긴 했다.
합참의장이 행사하는 군령권은 본래 국방부 장관이 가지고 있다. 군령권의 행사는 결국 국방부의 정책개발과 맞닿아 있다. 국방부가 합참 청사로 이사 가서 합치는 어수선한 동안 업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합참이 남태령으로 이전한다면 국방부와 연관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지금 당장 눈에 띌 만큼 전투력이 떨어지진 않는다. 예를 들어 북한이 근시일 내 또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가정해 보자. 1차적으로 해군 이지스함과 공군 그린파인 레이더가 이를 추적한다. 그 결과는 경기 오산 중앙방공통제소(MCRC)로 취합돼 합참 지하 B-2 벙커 전투통제실로 보고된다. 보고 과정 자체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다.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공보작전은 늦어진다. 국방부 청사 1층에 있는 기자실부터가 이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 발사의 전략적 의도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한 정보판단도 늦어진다. 관련 부서가 이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과 합참의장이 결심을 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프로세스가 밀린다. 군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략을 개발하는 부서는 박스에 사무실 집기를 넣어서 엘리베이터에 실어보내느라 바쁘다.
뜻 있는 군인들이 주경야독으로 전략과 정책을 좀더 공부할 공간이던 국방대 서울캠퍼스도 위례신도시 옆으로 이전한다. 국방부 시설본부가 현재 국방대 서울캠퍼스가 있는 전쟁기념관 뒤편, 구 방위사업청 건물로 이전하기 때문이다. 한 학교 관계자는 "사실 서울캠퍼스가 논산에 있는 본교보다 인원이 더 많은데, 갑자기 성남으로 이전하면 군인들더러 학업을 하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1분과 업무보고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인수위 측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이전에 496억 원만 든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자신들도 인정했듯 이는 시설본부 등 국방부 직할부대 이전과 합참의 남태령 이전 비용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국가재정법 38조를 보면 기획재정부는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뉴스에서 500억원이 조금 못 되는 사업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긍정적인 작용도 없지는 않다. 청와대 반경 4.5해리(8.334km)에 설정돼 있는 P73 비행금지구역은 2해리(반경 3.7km)로 줄어든다. 총 들고 청와대 뒷산을 지키던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보단 서울경찰청 101·202경비단을 활용해 보다 시민 친화적 경비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합리적인 방안이지만 걱정된다. 대통령실 옆 군부대가 다름 아닌 1급 비밀을 다루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라면 군사보안을 위해서라도 정치적 공간인 대통령실보다 시민들에게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부대는 본래 시민 친화적일 수가 없는 공간이어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은 원세훈이라는 낙하산 원장을 맞았다. 그는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국내파트 요원을 해외로 보내고, 해외파트 요원은 대북업무를 맡기고, 대북파트 요원에겐 국내를 맡기는 식으로 인사 대학살을 단행했다. 그 결과는 2011년 말 김정일이 사망했는지 아닌지도 모르다 조선중앙TV 중대발표를 보고서야 알게 되는 참사로 이어졌다. 국내 정치에도 손을 댄 혐의로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됐다.
이 사실이 당시가 아니라 몇 년 뒤에 드러났듯, 국방부 청사가 졸속으로 이전을 추진하는 와중 보이지 않고 감시하기도 힘든 곳에서 부정과 허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부정부패뿐이면 차라리 다행이다. C4I 체계를 다시 세팅하면서 2016년처럼 대북 작전계획을 해킹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군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치인에 복종하고 국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하지만 야전에선 전역지원서를 낼 때가 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러잖아도 군문을 떠난 퇴역 장성들부터가 대선을 앞두고 각자 캠프를 찾아 떠난 지 오래다. 강직한 군인들이 환멸을 느껴 떠난 자리엔 권력만 바라보는 정치군인들이 득세한다. 정치군인은 군을 정치의 꼭두각시로 만들기 일쑤다.
캠프를 찾아가지 않은 예외는 박한기 전 합참의장과 이승도 전 해병대사령관 정도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승도 전 사령관은 앞서 언급한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 지휘관이었다.
레프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했다.
군대가 강해지는 이유 또한 단순하지만 오합지졸이 되는 이유는 천차만별일 터다. 그 천차만별에 우리 군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