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헌법재판소. 연합뉴스이탈리아에서 아이들에게 아빠 성(姓)만 따르도록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공영방송 라이(Rai) 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탈리아 헌재는 27일(현지시간) 신생아에 부계 성만 부여하는 현 규범이 차별적인데다 아이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가톨릭 전통이 깊은 이탈리아에서는 오랜 가부장제 전통에 따라 아이가 태어나면 자동으로 아빠 성만 주어졌다.
이탈리아 여성은 결혼한 뒤에도 남편 성을 따르지 않기에 엄마 성과 자녀 성이 다른 게 보통이다.
부모 간 합의에 따라 양쪽 성이 모두 부여되는 경우도 드물게 있는데 이때도 반드시 아빠 성이 먼저 쓰인다.
하지만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신생아는 부모 합의를 전제로 아빠 성 혹은 엄마 성 가운데 한쪽을 따를 수 있게 됐다.
물론 지금과 마찬가지로 부모 성을 모두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때는 부모가 누구의 성을 먼저 쓸지를 합의해야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판사에게 그 결정권이 위임된다.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현지 여성 인권단체 등은 진정한 성평등의 길로 향하는 역사적인 전기가 마련됐다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진보 성향인 일간 '라 레푸블리카'는 관련 기사에 '가족의 위계가 사라진다'는 제목을 달았다.
의회에서의 관련 입법 절차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의회에는 이미 헌재 결정의 취지가 반영된 법안이 제출돼 있다.
엘라나 보네티 가족·기회평등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헌재 결정에 실체를 부여하는 게 정치권의 최우선 과제"라며 정부는 의회의 관련 입법 절차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