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두고 한 쪽은 별건수사 금지법이라고 하는 반면 다른 쪽은 여죄수사 금지법이라고 대립하고 있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때 '사건의 동일성'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는 법 조항 때문이다. 민주당은 검찰의 부당한 별건수사를 금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 조항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법조계에선 모호한 개념 때문에 수사와 재판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구제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형소법 개정안 196조, 檢 보완수사 시 '동일한 범죄 사실 범위 내에서'만
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 형사소송법(형소법) 개정안 최종안 제196조(검사의 수사)를 보면, 2항과 4항이 신설됐다. 2항에선
검사가 보완수사를 할 때는 '해당 사건과 동일성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게 했다. 4항에선
검찰을 포함한 모든 수사기관이 수사할 때 아예 별건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했다.
당초 이날 새벽 민주당이 단독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시킨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이 보완수사를 할 경우 '해당 사건과 동일한 범죄 사실의 범위 내에서' 수사를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여죄 수사 등을 할 수 없게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빗발치자 '동일한 범죄 사실의'를 '동일성을 해치지 아니하는'으로 바꿨다. 하지만 기소의견 송치사건 외에 고소인 이의신청 송치사건, 시정조치 요구 후 불이행해서 검사가 요구해서 송치되는 사건은 '동일성' 원칙이 그대로 남아 있어 여전히 여죄 수사 등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본회의 상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 제 196조(검사의 수사) 수정안 사실 별건수사라는 용어에서
'별건'은 '원래 사건(본건)' 이외 모든 사건으로 본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마구잡이식 부당한 별건수사다. 별건수사가 부당한지를 보는
중요한 판단 기준은 '관련성'이다. 이를테면 뇌물 혐의와 전혀 관련이 없는 횡령 혐의 수사를 통해 본건인 뇌물 혐의를 입증했다면 이는 대표적인 '부당한 별건수사'다. 하지만 피의자 자신의 공금 횡령을 감추기 위해 상급자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하면 이런 경우 뇌물 혐의와 횡령 혐의는 관련성이 있어 부당한 별건수사라고 보기 힘들다.
반면 사건의
'동일성'에 대한 개념은 주로 재판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수사 단계에서 적용된 적이 없다. 형법상 동일성 개념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재판 단계에서 갑자기 수사를 받지 않았던 혐의 사실을 두고 검찰이 기소할 경우 방어권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취지에서 사용된다.
문제는
재판 단계에서 적용되던 동일성 개념을 갑자기 수사에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들이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단계에서 이 개념을 적용하기엔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우려한다. 모호한 개념으로 인해 수사 단계에서 진범·공범 및 추가 피해에 대한 수사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장애인·아동 범죄 피해자를 공익 변호해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별건수사는 영장청구 범죄를 수단으로 영장 미기재 범죄를 탈탈 터는 것으로 위법한 것이고,
동일성은 형사재판의 기판력(확정판결을 받은 사항에 대해서는 이후 다른 법원에서 그 사건이 다시 제소되더라도 이전 재판 내용과 모순되는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소송법상 효력) 범위를 판단할 때 나오는 용어이지, 수사 단계에선 나올 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7일 검찰 수사권과 기소법 분리 법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민주당 "쌍끌이 별건수사 금지해야" vs 檢 "부당한 별건수사 이미 금지"
민주당이 '동일성'이라는 모호한 개념까지 들고 와 별건수사 금지에 주력하는 이유는
검찰이 마구잡이식 별건수사로 인해 중립성을 잃었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특히 민주당 정치인들에 대한 뇌물 수사를 했던 검찰을 향한 반감이 크다. 정치인 뇌물 수사를 하고 싶은데 범죄 단서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를 못하니 그 주변부터 쌍끌이 저인망식으로 털어 결국엔 정치인을 겨낭하는 수사를 했다는 시각이다.
검찰은
현행 법령 곳곳에 이미 부당한 별건수사를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존재한다고 반박한다. 검찰청법 제4조나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6조, 법무부령인 인권보호수사규칙 제15조 등에서 '관련성' 없는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피의자를 압박해서는 안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번에 형소법 개정안 196조 4항에 부당한 별건수사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지 않았다.
부당한 별건수사 금지에 대한 취지를 이해하지만,
애매한 '동일성' 조항을 넣을 경우 엉뚱하게 여죄 수사조차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어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모든 별건수사를 금지할 게 아니라 '관련성 있는 범죄'는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범·공범 및 추가 피해 등에 대한 수사와 억울한 피해를 입은 국민을 구제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서다. 배성훈 대검 형사1과장은 "검찰청법에는 '관련성 있는' 별건 범죄는 수사하도록 돼 있다"면서 "
당연히 해야 하는 별건수사에 프레임을 씌워 못하게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일성이라는 개념은 재판의 개념이고 결국 해석의 문제"라면서 "
이걸 수사에 집어 넣어 앞으로 혼란이 엄청 클 것이고 범죄자를 놓쳐버릴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틀림없이
피고인 측 변호인은 '별건수사로 얻은 증거다'라면서 모두 증거 채택 부동의를 할텐데 이같은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이냐"면서 "이제 변호사 능력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게 될 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제도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