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지난 17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자녀 의대 편입학 특혜·병역비리 등 그간 제기된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윤석열 정부의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정호영 후보자가
자녀들의 경북대 의대 편입학 의혹 등 자신을 둘러싼 언론의 문제 제기에 대해 대부분이 '허위' 또는 '과장'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 후보자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국민들께서 의구심을 가지고 계신 바는 충분히 이해하며, 저도 제 설명과 국민들의 의문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었으나 과장되거나 허위적인 의혹들이 다수"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틀 만인 28일에는 인사청문준비단이 이례적으로
"(청문회까지) 남은 기간 동안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언론의 협조'를 요청했다.
국회에서 예정된 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내달 3일로 1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사실상 굵직한 의혹들은 이미 매스컴을 통해 거의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언론의 무분별한 공세가 문제인지, 후보자 측 관련 해명이 충실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은 나왔다.
후보 지명後 해명자료 55건 안팎…내용 충실했는지는 '물음표'
지난 17일 기자회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준비단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정호영 후보자 관련 설명자료. 후보자의 입장문부터 Q&A 등까지 40쪽에 육박한다. 이은지 기자 29일 기준으로 전날까지 복지부 인사청문준비단이
정 후보자 관련 보도를 해명하고자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설명자료는 어림잡아도 55건 안팎이다. 장관직에 지명된 이달 10일 이후 매일 평균 3건 이상의 서면 자료가 쏟아진 셈이다.
내정 1주 만인 지난 17일, 후보자가 자청한 기자회견도 열렸다. 초기에 의혹을 적극적으로 불식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보이지만, 관례에 비춰 평범한 행보는 아니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이 하드카피 본(本)으로 건네받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관련 설명자료'는 40쪽에 육박한다.
21일에는 7년 전 아들의 병역판정 의혹을 두고 하루 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실시한 재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4급' 판정에 따라, 보충역으로 소집된 아들이 지난 2010년 현역 판정을 받았던 사실이 문제가 됐다.
준비단은 복지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2015년과 마찬가지로 4급 판정에 해당되는 '신경근을 압박하는 추간판 탈출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이 나왔다"며 의무기록 사본증명서와 MRI(자기공명영상) 촬영 판독결과 등을 공개했다. 병무청 판정의 토대가 된 이전 기록도 재검증을 거쳤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의료기관'에서 아들로 하여금 다시 검사받도록 하겠다고 했음에도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3자가 입회하지 않아 스스로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2015년 당시 MRI·CT 영상자료를 국회에 직접 제출해 전문가 판단을 받으라"며 '셀프 검증'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준비단 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빌딩으로 정 후보자가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직접 답변한 '비공식적' 소명까지 더한다면 횟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지경이다.
자녀 편입학 등 주요보도 문제의식, 합리적…'동문서답' 말아야
전날 준비단이 기자단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검증'이 가능케 도와 달라며 부탁한 보도자료는 역설적으로 후보자 관련 의혹이 얼마나 방대했는지를 망라(網羅)해 보여준다.
해당 자료에 '주요 사례'로 첨부된 붙임 자료에는
①사실 관계 확인이 부족하고 잘못된 내용에 기반 ②주요사실을 누락하여 사실과 다른 의미로 설명 ③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특정사실만 과장, 개인정보 유출 등 언론 보도의 문제점이 항목별로 담겼고, 구체적인 사례들이 URL(링크)과 함께 나열, 제시됐다.
분량 상 굉장히 축약된 평가임을 전제한 후 보도들의 디테일한 정확성 여부를 따져 '라벨링'한 것이 적절한지는 차치하더라도 물음표가 생기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 일례로 동아일보와 한겨레·매일경제 등
여러 언론이 집중적으로 다룬 정 후보자 딸의 편입학 전형 당시 구술면접 문제를 들 수 있다.
앞서 후보자의 딸은 2017학년도 경북대 의대 학사편입 구술평가에서 3고사실에서만 만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때 후보자는 경북대병원 진료처장(부원장)을 지내고 있었다. 서류평가는 합격자 33명 중 28위로 비교적 낮은 순위였기에 '2단계인 면접에서의 특혜로 당락이 뒤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욱이 3고사실의 심사위원들은 정 후보자와 도합 35편의 논문을 공저한 인연이 있었고, 당시 시험이 당초 해명과 달리 완전한 '블라인드 테스트'가 아니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면접관들이 응시자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준비단이 덧붙인 해명은
"구술평가 점수는 정답이 정해져 있어 만점이 나올 수 있고, 다른 만점자도 있다"는 것이다. 후보자 자녀'만' 특별히 만점을 준 것이 아니므로 주요 사실을 고의적으로 빠뜨렸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3고사실에서 만점을 받은 지원자는 합격자 1등이었던 학생을 포함해 4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 인사청문준비단이 지난 28일 출입기자단에게 배포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검증을 위해 언론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자료 일부. 준비단 제공 하지만
핵심은 만점자가 '복수'였다는 사실이 아니다. 1·2 고사실에서는 각각 53·51점을 받는 데 그쳤던
후보자의 딸이 3고사실에서 60점을 얻는 데 아빠의 그림자가 1%도 작용하지 않았는지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원래 후보자 딸의 최종 등수가 38위였고, '예비후보 5번'으로 있다가 추가합격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동문서답에 가깝다.
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5~2020) 전국 10개 국립대 의대의 학사편입생 중 부모가 해당 의대에 근무하고 있었던 경우는 8명에 불과했다. 이 중
25%(2명)가 정 후보자의 아들·딸이란 것인데, '아빠 찬스'에 대한 혹독한 검증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밖에 병원장으로 재직하던 2018~2019년 미국에서 열린 경북의대 동창회 참석이 '필수적 직무 목적'이었다고 설명한 부분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크루즈 투어와 댄스파티가 포함된 행사가 '공무상 국외 출장'으로 신고된 점에 대해 '외유성'을 의심하는 보도가 왜 비합리적인지 뾰족한 해명을 못 내놓는 것은 후보자 측이다.
준비단은 후보자가 '노란우산공제'에 가입해 부동산 임대업으로 매달 2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챙겼다는 언론 지적을 놓고는 "직원들의 권유에 따라 신청했다"고 책임을 전가했다. 형편이 어려운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를 절세 목적으로 활용한 것이 적절했는지가 관건인데, '제도 상 가입대상이므로 특혜를 받거나 부당한 행위가 아니다'라는 반박은 온당한가.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정말 '단언'할 수 있나
지난 26일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한 입장문 일부. 인사청문준비단 제공 궁극적으로 정 후보자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법적 무죄'가 곧 고위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윤리성과 동의어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반복해 들은 말은 "저의 지위를 이용한, 어떠한 부당한 행위도 없었으며 가능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의 검증 강도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는 후보자의 표현도 수위가 올라갔다. 지난 21일 그는
"불법은 없었으나 국민의 눈높이가 도덕과 윤리의 잣대라면, 거기로부터도 떳떳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조차 '자진 사퇴론'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도덕적, 윤리적 잣대로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말로 대신하겠다"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언론을 적으로 돌리며, '일말의 부끄럼이 없다'고 단언하는 태도는 국민 정서와 눈높이를 아는 예비 공직자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준비단이 전날 자료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부 매체에서 후보자 자녀의 실명을 노출시킨 것은 보도윤리에 어긋나는 일이 맞다. 그러나 자녀 편입학·병역 등
주요 의혹들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큰 폭발력을 가진 이슈인지를 진지하게 헤아려봤는지 후보자에게 반문하고 싶다. 다수의 보도들은 충분히 합리적인 문제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었고, 그렇기에 단발성 기사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정호영만이 '포스트 오미크론' 시대를 이끌 적임자라 여긴다면, 국민의힘 역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후보자가 어떤 면에서 다른지 근본적 질문에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이제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