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멕시코 북부 누에보레온주에 사는 노병 헤수스 칸투 살리나스(87) 씨의 단층 단독주택은 5일(현지시간) 오후 모처럼 북적였다.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군악대의 힘찬 연주가 마을에 울려 퍼지고 집 앞 도로에 마련된 간이 무대 앞엔 한국과 멕시코 양국 군인들과 주민들이 자리 잡았다.
칸투 씨가 40년 가까이 산 낡은 집을 수리하는 공사가 첫 삽을 뜨는 날이었다.
이번 공사는 우리 육군이 한국 전쟁과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주는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육군은 2011년 이후 국내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이 사업을 해 왔는데, 올해 한국과 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칸투 씨를 비롯한 멕시코 참전용사 2명을 대상으로 해외사업을 처음 벌이기로 했다.
멕시코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시 수많은 멕시코 병사가 미군 소속으로 한반도에서 싸웠다는 것이 최근에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의 숨은 참전용사 찾기 캠페인을 통해 생존 참전용사 4명과 작고 참전용사 5명이 확인됐다. 이중 초대 한국전 멕시코 참전용사회장이던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이 작년 별세하고 3명만이 남았다.
그중 한 명인 칸투 씨는 17세 어린 나이에 입대해 미 육군 7사단 23연대 소속 공병 하사로 1951~1953년 한반도에서 싸웠다.
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틈이 나면 고아원을 찾아 한국 전쟁 고아를 보살피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전에도 참전하고 대위로 전역한 후 고국 멕시코로 돌아왔다.
베트남전에서 부상한 칸투 씨는 다소 거동이 불편했지만 내내 흐뭇한 표정으로 기공식을 지켜봤다.
떨리는 손으로 한국에서 온 손님들의 손을 맞잡으며 연신 "멕시코와 한국은 한 나라고, 우리는 한 형제"라고 강조했다.
아직 참전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그는 당시 함께 싸우다 목숨을 잃은 '영웅' 전우들을 다시 한번 기리기도 했다.
멕시코 노병 헤수스 칸투의 6·25 참전 당시 모습. 연합뉴스기공식을 위해 멕시코를 찾은 고태남(소장) 육군 인사사령관은 "참전용사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으로 한국은 위기에서 벗어나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며 칸투 씨에게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 새롭게 단장된 집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라"고 기원했다.
칸투 씨와 그의 가족은 한국이 잊지 않고 찾아와 고마움을 전한 것에 도리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칸투 씨는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간병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자녀들은 과달라하라와 미국 샌앤토니오 등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된 단독주택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지만 비가 새 얼룩진 천장과 깨진 채 방치된 유리창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여동생 마리 칸토 씨는 "새집으로 모시려고 해도 이 집에 계속 있고 싶어 한다. 추억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육군은 현지 업체를 통해 앞으로 3~4개월간 칸투 씨의 집을 전반적으로 수리하고 오래된 가전 등도 교체해줄 계획이다.
6일엔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에 사는 로베르토 시에라(93) 씨의 집에서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다.
이날 칸투 씨 집 앞의 기공식엔 이웃들도 찾아와 제 일처럼 기뻐했다.
칸투 씨를 위한 작은 선물을 들고 찾아온 이웃 클라우디아와 빅토리아는 "예전부터 칸투 할아버지에게 한국전쟁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감동 받았다"며 새 보금자리를 갖게 될 '영웅' 이웃에게 축하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