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철 SK 감독과 자밀 워니. KBL 제공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다. 새로운 리더십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프로농구 구단은 보통 신임 감독 부임 첫 시즌에 많은 힘을 실어준다. 외국인 선수단 구성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새 감독의 철학에 맞는 새로운 선수를 찾는 게 일반적이다.
2021-2022시즌부터 서울 SK의 지휘봉을 잡은 전희철 신임 감독은 출발선부터 기존의 다른 사령탑들과 달랐다.
그의 선택은 자밀 워니와의 재계약이었다.
전희철 감독은 'SK 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에서 은퇴했고 오랜 기간 프런트, 코치 등으로 활동했다. 전희철 감독은 "여기서 통역 업무를 제외하고 다 해봤다"는 농담을 종종 할 정도다.
따라서 그의 구단 내 업무에는 연속성이 크게 작용한다. 전희철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선수단 구성과 운영에 깊게 관여하며 목소리를 내왔다.
워니와의 재계약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워니는 지난 2020-2021시즌 평균 17.7득점, 8.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0.4득점, 10.4리바운드로 최우수 외국선수상을 받았던 2019-2020시즌과 비교해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구단은 재계약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난 시즌은 워니에게 심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그가 아끼는 몇몇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전희철 감독은 워니를 잘 알고 있었다. 실력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이 없었다. 또 "감독과 선수는 친구처럼 가까워야 한다"는 그의 평소 지론답게 워니와 관계도 늘 좋았다.
전희철 감독은 작년 여름 미국에 머물고 있던 워니와 영상 통화를 했다. 사령탑 부임 인사를 건네면서 워니에게 재계약 의사를 전달했다. "나는 널 믿어"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워니는 전희철 감독에게 "저를 믿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지난 시즌 부진에 따른 미안한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걱정이 모두 담겨있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전희철 감독은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사령탑의 믿음을 재차 설명하면서 대신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살 빼라"고 했다. 워니는 최우수 외국선수상을 받았을 때보다 몸무게가 10kg 이상 늘어난 상태였다.
2021-2022시즌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 MVP를 차지한 SK 자밀 워니. KBL 제공
워니가 지난해 다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몸무게는 SK 첫 시즌 때와 비슷했다. 그 시절보다 조금 더 통통했다. 그런데 워니는 자가격리 기간에 철저한 관리와 운동으로 체중을 더 감량했다. 전희철 감독과 약속을 지킨 것이다.
워니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평균 22.1득점, 12.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2년 만에 다시 외국인선수 MVP로 등극했다.
워니가 MVP 트로피를 받은 시상식에 입고 온 정장은 전희철 감독이 선물한 옷이다. 전희철 감독은 "살만 빼면 뭐든지 사주겠다"고 약속했고 워니는 "많이 비쌀텐데 괜찮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워니가 그랬던 것처럼, 전희철 감독도 약속을 지켰다.
구단도 포기할까 고민했던 워니를 다시 끌어안은 전희철 감독의 선택은 100% 적중했다. 전희철 감독은 프로 사령탑 데뷔 첫 시즌에 통합 우승을 달성했고 챔피언결정전 평균 22.6득점, 11.8리바운드를 기록한 워니는 승리의 주역으로서 사령탑의 믿음에 보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