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상륙한 2020년 1월 20일 이후로 만 2년 4개월이 흘렀다. 기후 위기로 서식지가 확대된 박쥐가 매개체라는 가설을 지닌 코로나19는 미지의 질병이었다.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Pandemic)으로 상식이 된 지식들은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에게 상당 부분을 빚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사람과 사람 사이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는 것, 에어로졸을 통한 전파도 가능해 밀집된 실내 공간일수록 감염 위험이 올라간다는 것, 마스크와 손 씻기는 필수라는 것 등이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가 지난 12일 서울 목동 사옥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가천대길병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엄중식 감염내과 교수
는 '커뮤니케이션이 8할'인 방역에서 과학적 근거를 가장 친숙하게 설명해온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민관 대책위 간사였던 그는 기자들이 인터뷰를 위해 환자 측에 몰리는 걸 보면서, 의료진 누구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으로 자리 잡은 올 초부터 방역 고삐를 계속 풀어온 정부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코로나19의 파고(波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신규 확진자는 2만~3만 명대로 줄었지만, 델타 유행 당시 하루 확진자가 수천 명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아직도 상당한 규모다. 일일 확진자가 다시 10만을 넘어선 미국의 BA.2.12.1, 남아프리카공화국의 BA.4와 BA.5 등 오미크론 하위변이들도 국내에 이미 유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교체기에 있는 '방역 컨트롤타워'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성공적 방역'이란 넌센스"라며 "더 실패하느냐, 덜 실패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포스트 오미크론 '안착기' 전환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던 지난 12일 저녁, 서울 목동 CBS 본사에서 엄 교수와 마주앉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오래 갈 거라 예상했나. 종식은 요원하다는 게 중론인데.=아무리 짧게 잡아도 '2~3년은 꼬박 고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변이가 계속 생기니 아예 못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엔 3년 정도 지나면 계절성 유행으로 자리 잡은 스페인 독감처럼 될 거라 예상하기도 했다. 백신 때문에 그 (토착화되는) 시점이 더 빨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변이 발생주기가 짧아지니 그 또한 어려워졌다.
물론 변이가 분명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수준이 상상 이상이다. 바이러스학을 하시는 분들은 중국 우한에서 유래한 원시주와 현재 우세종인 오미크론이 거의 다른 바이러스 같다고들 한다.
두 가지가 혈연관계인지 모를 정도로, 즉 '얼굴이 완전히 바뀔 정도'의 변이가 일어난 거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병독력, 그러니까 병을 일으키는 독성의 힘은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시작되는데 그 부위의 변이가 아주 급격하다는 것이다.
백신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통 백신을 맞으면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아예 걸리지 않게 해주는 체액성 면역, 중증화를 막아주는 세포 면역 등 2가지 효과가 있는데 이제는 후자만 기대를 하는 거다. 바이러스 모양이 바뀌어 항체가 딱 달라붙지는 못하니까… . 처음 우한 주가 돌 땐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의 예방효과가 97%였는데 델타 때 70%대로 떨어졌고, 오미크론부터는 얘기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발생 초기부터 오미크론 정점 이후까지 문재인 정부의 'K-방역'을 총평한다면.=
델타가 유행한 작년 겨울까지 2년 동안은 잘했다고 본다. 다른 나라들이 경험했던 대유행은 없었으니까. 뒤틀리기 시작한 건 (2021년 11월 착수한) 단계적 일상회복부터인데, 오미크론 우세종화 이후로 완전히 망가졌다. 좀 더 환자가 줄어들고, 새로운 변이 유입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 일상회복을 시작했어야 했다. 확진자가 쭉 올라가 다시 방역을 강화하는 사이 오미크론이 들어와 버렸잖나.
정부는 오미크론이
델타보다 치명률이 낮단 점을 계속 강조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거지,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실제로 병독력이 결코 낮지 않다. 백신과 자연 감염에 의한 면역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니 그렇게 보이는 거다. 코로나19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거나, 백신을 안 맞은 사람에게는 치명률이 여전히 높은 바이러스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해서 갔어야 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박종민 기자-만약 100점 만점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주시겠나.=
50점. 원래 85에서 90점 정도는 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오미크론 때문에 다 깎아먹었다. 앞서 2년간은 자잘한 논란거리들은 있었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이나 대응기조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미크론 유행이 가속화될 때 오히려 방역을 푸는 결정을 했다. (그 이후) 1만 7~8천 명이 숨졌는데, 절반으로 막을 수 있는 사망자를 2배로 늘려놨다고 본다. 나중에 누군가는 이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매일 사람이 수백 명씩 죽는데 계속 방역을 완화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평소엔 방역이 좀 느슨했던 나라들도 오미크론 유행이 피크로 올라갈 때는 다중시설 이용과 이동을 제한했다. (정부는) 늘 자영업자·소상공인 얘기를 하는데,
경기 부흥을 위해 방역 완화 선택을 할 만큼의 피해였냐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우리가 석 달 동안 큰 유행을 겪으며 입은 사회·경제적 피해와 방역을 강화했을 때 자영업자 등의 피해를 비교하면 생각보다 저울질하기 쉽지 않다.
-3월 중순 정점 때는 신규 환자가 62만 명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우리의 방역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단언컨대 방역에 성공하는 나라는 없다.
(신종감염병에 대한) 방역은 모두 실패다. 단지 '적게 실패했냐, 많이 실패했냐'의 차이일 뿐, 팬데믹이 생기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질환에 대해서 방역의 성공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엄 교수는 2020년 봄 대구·경북 신천지를 중심으로 한 1차 대유행 당시를 예로 들었다. 그는 "우한이 우리나라와 얼마나 교류가 많은 도시인데, 확진자가 (벌써) 안 들어왔겠나"라며 "열성 호흡기 질환 감시체계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논의하던 중에 대구가 쾅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환자가 확인되기 전 이미 한국에도 감염자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분석이다.
확진자가 1만 명을 넘긴 올 1월 말부터는 역학조사가 사실상 '올 스톱'됐다. 엄 교수는 "발생을 스크리닝하는 3T(검사·추적·치료) 전략은 유입 초기엔 굉장히 효율적인 체계지만 환자가 늘수록 못 따라간다. 역학조사 인프라를 더 넓히지 않으면 '서지'(Surge·대규모 급증)가 생겼을 때 손 놓게 된다고 했는데 그 준비에 게을렀다"며 "진단부터 어그러지니 유행 피크가 한참 올라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보신 안타까운 사례도 많았을 것 같다.=확진자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폐가 완전히 망가져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천식 환자였던 30대 초반 임신부도 기억난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사망했는데, 감염 이후 천식이 나빠진 것으로 여겨 조치를 빨리 취하지 못한 케이스다. 출산 이후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를 달았지만 끝내 숨졌다.
재택치료 중 스크리닝이 제대로 안 된 환자가 많았는데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우리가 감당 가능한 수준의 환자가 발생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야 하는데, 반대로 갔다. 단시간에 중환자가 너무 많이 생기면 사망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 방역당국이 가장 잘했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은.=3차 접종이다(*편집자주: 현재 60세 이상 기준 90%에 육박하는 3차 접종률은 1월 말 당시 이미 80%대 중반 수준이었다). 백신이 중환자 발생을 예방하는 효과만 남은 상태에서 버틴 건데, 만약
접종률이 저조했다면 지금쯤 약 10만 명의 희생자가 나왔을 거다.
아무리 오미크론의 치명률이 낮아졌다 해도 해외 국가들은 다 우리보다는 높다. (치명률이) 지금보다 네다섯 배만 높게 나와도 10만 명은 금방 훌쩍 넘어가게 된다. 우리 국민의 높은 시민의식과 질병에 대한 높은 이해력도 주효했다고 본다.
-하반기 재유행을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앞으로의 유행 상황은 어떨까.=오미크론은 감염된 사람이 엄청나게 늘어 더 이상 기존 확진자를 재감염시키지 않는 이상은 더 퍼져나가기 힘든 환경이 될 거다. 다만,
새로운 변이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가 꿈틀대고 나올 것이다. 해외에서는 우리처럼 델타 점유율이 '0%'가 안 된 나라도 있는데, 이런 곳들은 델타가 어디선가 전파되고 있다가 오미크론이 하향치에 다다랐을 때 다시 (우세종으로) 돌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당국은 이른바 포스트 오미크론 '안착기'로 넘어가면 확진자의 격리의무를 해제하겠다고 하는데, 논란이 뜨겁다.=기본적으로
격리 해제는 마스크를 벗으라는 것만큼 반대한다. 격리를 권고사항 정도로 둬서는 우리나라의 문화환경을 고려할 때 격리를 유지할 사람이 없다. 예를 들어 '저 오늘 아파서 그냥 하루 쉬겠습니다'라는 말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직장 문화가 아닌 이상 어렵다는 거다.
또 단순 노무직으로 갈수록 지병이 있는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된다면 결국 그 직장이나 지역사회 전파의 매개체가 될 거다. 본인도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에 병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럼 사망자가 또 늘어나게 되는 거다. 확진자 격리를 의무적으로 유지하는 것 때문에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면 모르지만, 그것도 아닌데 왜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회사가 출근을 강요하게 만드는 꼴이다.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브리핑 때마다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이제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였다. 실내 마스크 해제 등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인류가 감염병을 이겨내기 시작했던 건 1800년대 '종두법'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새로운 기술로 극복해 왔다는 거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신(新)기술은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인데, 이것만으로는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벗으려면 환기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다.
1인 가구가 집에 혼자 있거나 소규모로 몇 사람이 모이는 건 별 문제가 없지만, 불특정 다수가 밀집하는 다중시설에서 환기를 안전하게 할 수 없다면 마스크는 못 벗는다. 코로나19는 (사물) 접촉을 통해서도 전파가 되기 때문에 표면 환경(surface environment)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문제다. 락스·소독제 없이 문 손잡이 등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단 얘기다.
-새 정부는 8월쯤 밀집·밀폐도 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거리두기를 내놓겠다고 예고했다.=밀집도를 자동으로 모든 장소에서 스코어링(scoring)해주지 않는 이상 그걸 누가, 어떻게 아나. 똑같이 밀리는 데라도 요일마다, 계절마다 밀집도가 다 다를 텐데 너무 거친 기준이다. 마스크를 안 쓰고 밀집도가 높은 장소에 가면 자동으로 알람을 주는 정도의 기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현 정부의 가장 큰 과제를 꼽는다면.=일단
감염병 전문병원부터 빨리 첫 삽을 뜰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 당장의 대응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앞으로 어떤 병이 (새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1·2차 의료기관들이 신종 감염병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되는 것도 필요하다. 다음 팬데믹이 오면 (코로나19 대응처럼) 선별진료소를 몇백 개씩 짓고 별도의 사람들을 뽑아서 (기존) 병원 간호사 등이 다 그만두고 가게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다인실이 많은 병실 구조도 문제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도록 경제성을 고려한 의료체계를 만들었던 건데, 감염 전문가들은
우리도 이제 '1~2인실 체계'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선진국은 중환자실이 대부분 1인실로 설계돼 격리 병동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인력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자원을 충분히 확보해야 다음 팬데믹을 견딜 수 있다.
대한감염학회에서 '롱코비드'(코로나19 장기 후유증) 가이드라인도 빨리 만드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기준도 설정이 안 됐는데 치료클리닉이 생기고 '회복탕' 같은 걸 팔고 있더라. 인증되면 정부에서 바로 지침으로 만들면 되는데, 한 달 이내에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