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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피해자' 향한 빚고문, 정부 화해 거부에 집 경매 코앞

사건/사고

    '인혁당 피해자' 향한 빚고문, 정부 화해 거부에 집 경매 코앞

    11년째 이어지는 '배상금 반환' 문제…국가 차원 해결 난망

    1974년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의 자택 경매일이 최근 3년 만에 다시 잡혔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씨는 200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배상금을 가지급 받았는데, 2011년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면서 받았던 배상금의 절반을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이 이자는 쌓여갔고 결국 하나뿐인 집도 경매에 넘어갔는데, 이씨가 제기한 강제 경매 청구이의소송에서 정부는 법원의 화해권고안을 거듭 거부하고 있습니다.

    법원 화해 권고안 거부에 매각기일까지 잡히며 상황 악화
    화해 권고안.. 당초 원금 5억+지연이자 10억 중 "원금만 받을 것"
    정부, 인권위 등 국가적 해결책 찾으라는 권고에도 "원금, 이자 다 받겠다" 강변

    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인혁당 재건위 사건 희생자 유가족들
    1974년 조작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84)씨의 자택 경매일이 3년 만에 다시 잡혔다. 정부는 그간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배상금 반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것을 요구받았지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이른바 '빚고문'에 동참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지난달 18일 이씨에게 경기도 양평 자택 경매 매각 및 매각결정기일 통지서를 보냈다. 이씨는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강제 경매 청구에 대한 이의소송을 진행 중인데, 예정됐던 변론기일보다 하루 앞선 시점으로 매각기일(6월22일)이 잡혔다.

    이에 이 씨 측은 "해당 건에 대한 민사(청구이의소송) 재판이 진행 중이고 (경매가 진행되면) 회복 불가능한 재산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매각기일 변경 신청을 했다. 여주지원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도 "(기일 변경은) 임시적인 조치고 소송 기간 중 경매를 멈추려면 재판부로부터 강제 집행 정지 결정문을 받아야 한다"고 답해 언제 기일이 다시 잡힐지 모르는 상황이다.

    경매 법원이 매각기일 통지서를 발송한 당일 저녁, 정부법무공단은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판사 남성민)가 심리 중인 청구이의소송에서 법원이 제시한 세 번째 화해 권고안마저 거부했다. 정부법무공단은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정부를 대리하는 기관이다.

    이에 정부와 법원이 민주화 유공자이자 국가폭력 피해자인 이씨에게 받았던 배상금을 돌려내라고 하면서, 빚 상환을 못하자 대안은 찾지 않고 채무자 압박 수위만 높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의 아들 이송우(필명·51)씨는 "기다렸다는 듯 매각기일을 통보하는 등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부의 행태에 깊은 분노와 절망감, 허탈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앞서 재판부는 4월 12일 이씨가 총 5억 원만 정부에 상환하고, 나머지 10억 원 상당의 이자는 내지 않도록 하는 화해 권고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3일 "5억 원을 갚지 않을 경우 화해 권고를 무효화하고 원래대로 15억 원을 갚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등 이의를 제기했고 다음 날 법원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마지막 권고안도 정부의 거듭된 이의신청으로 결렬된 것이다.

    법무부 국가소송과는 "인혁당 사건 관련 피해자와 유족분들이 그동안 겪었을 정신적 고통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재판부의 조정 결정과 제1차 화해권고결정은 현행 '국가채권관리법'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었고, 제2차 화해권고결정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했으나 시간이 너무 촉박해 부득이하게 이의신청하도록 승인했다"고 답변했다. 정부법무공단은 지난달 24일 변론기일도 연기 신청했다.

    정부의 이 같은 안일한 태도는 오래 전부터 반복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법무·검찰개혁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의 구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낸 뒤에도 정부법무공단은 "국정원이나 검찰로부터 아무런 내용을 받은 게 없다"고 답했다. 배상금 지급 판례가 뒤바뀐 이명박 정부, '부당 이득금' 반환 소송이 시작된 박근혜 정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던 문재인 정부에 이어 '인혁당 빚 고문'이 윤석열 정부에서까지 11년째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씨는 2008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피해 생존자 및 유가족(77명)과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1, 2심에서 승소해 총 배상금의 2/3인 10억9천만 원가량을 가지급 받았다. 그러나 2011년 대법원이 "불법행위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과잉 배상"이라며 판결을 뒤집어 34년 치 지연이자를 없애고 받은 돈의 절반인 약 5억 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13년 7월 국정원은 돈을 갚지 못하는 이들에게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걸었다. 그동안 쌓인 빚을 청산하고 4.9통일평화재단 기금을 내는 등 가지급 받은 배상금을 다 썼던 이들은 순식간에 다시 '빚쟁이'가 됐다. 게다가 매년 20%씩 법정 이자가 붙어 정부에 갚을 빚이 불었다. 지금까지 빚을 못갚은 이들은 38명으로 파악됐다. 이씨도 현재까지 이자만 10억 원이 쌓였고 정부는 2017년 2월 이씨의 하나 남은 집을 경매에 넘겼다.

    국정원과 검찰 등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이 이창복씨 자택 경매 법원에 제출한 보정서국정원과 검찰 등을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이 이창복씨 자택 경매 법원에 제출한 보정서
    2019년 5월 이씨는 매각기일이 잡히자 강제 매각에 대한 청구이의소송을 내 1심에서 패소하고 2심이 진행 중이다. 당시 이씨 측은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서류를 경매법원에 제출했고 정부법무공단은 보정서류를 냈다. 이후 3년 동안 경매가 진행되지 않았다.

    멈췄던 경매가 갑자기 진행되는 이유에 대해 이씨 측은 "그동안 국정원이 민주화 유공자 사건임을 감안해 경매가 진행되지 않도록 조처를 한 줄 알았다"면서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원 경매 담당자는 "(멈췄던 이유는) 알 수 없다"며 "오래된 사건이고 민사집행법 제49조에 해당하는 집행 정지 사유가 없어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CBS노컷뉴스가 확인한 정부 제출 보정서에는 "채무자가 주장하는 국가 차원의 해결책과 관련해 이 사건 소송수행청인 국정원은 검토하고 있는 바가 없고, 소송지휘청인 법무부 및 검찰로부터도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안의 수용 여부 및 별도 해결책에 대해 전달받은 바 없다"며 "법원의 부동산 강제 경매 진행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보정서의 이 같은 내용은 그간 문재인 정부에서 "해결책을 찾겠다"고 한 표면적 입장과 배치된다. 2019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인혁당 피해자들이 부당이득금 반환 문제로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조속히 해소하고, 국민 보호책임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도록 완전하고 효과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의견을 냈다.

    그에 앞서 2017년 12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제6차 권고안을 발표하고 "가지급 받은 배상금을 반환해야 하는 반인권적 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정부는 이들이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배상금 반환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빚 고문'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2020년 국정원은 "법무부 등 유관 기관과 협의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재판부에 선고 연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법원의 화해권고안을 여러 차례 거부하면서 해결 의지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환수를 포기하면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법원의 권고안을 받아들일 경우 배임은 아니라는 판단이 나온다. 또 국회에 발의된 국가채권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피해를 당한 채무자의 제반사정을 참작해 국가에 대한 채무를 감면해줄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그러나 해당 법률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2년째 계류 중이다.

    이송우씨는 "정부가 화해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2심에서도 패소하면 상고하겠지만 시간만 버는 정도 아니겠느냐"며 "윤석열 정부에서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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