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후 한 달여 만에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결과 번복이 도화선으로 작용하면서 신구 권력 갈등 수준이 임계점을 넘보고 있다. 이미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대장동백현동 특혜 의혹 수사 등 사정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여야의 신경전은 고조된 상태였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강한 사퇴 압박을 받으면서 전선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정권 초 반짝했던 협치 무드는 완전히 사라졌다.
"북로남불, 자료 공개하라" VS "신 색깔론, 보복수사의 시작"
왼쪽부터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 윤창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19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월북 공작'으로 규정한 국민의힘을 향해 "민생보다는 친북 이미지, 북한에 굴복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신(新)색깔론"이라고 날을 세웠다. 감사원까지 관련 사건에 대해 감사에 착수하자,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색깔론 프레임'을 다시 등장시키는 등 강수로 맞선 것이다.
앞서 새 정부 들어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백현동 특혜 의혹 수사 등이 본격화된 것과 관련해서도 "문재인 정권에 대한 보복 수사의 시작"이라고 비판했던 우 위원장은 이날도 "협력적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방향보다는, 강 대 강 국면으로 몰고 가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야당은 사정의 칼 끝이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의원 등 야권의 주요 인사들을 향하고 있다는 판단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결사항전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등 여권의 공세는 갈수록 세지고 있다.
당장 이날도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해수부 공무원을 '월북몰이' 한 것도 민주당이고, 민생을 망친 것도 민주당"이라며 "'내로남불'을 넘어 '북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당시 자료를 모두 공개하라"고 몰아세웠다. 당 차원에서는 진상규명을 하겠다며 관련 TF를 전날 발족시켰다.
국민의힘은 전 정부 시절 해수부 공무원의 자진월북 판단의 근거가 됐던 군 감청 기록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해당 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로 일정 기간 공개가 금지된 상태다. 민주당은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대한민국 첩보 시스템이 드러난다며 "실소를 금할 수 없다(우상호 위원장)"고 반대하고 있다. 관련 자료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해당 이슈는 다시 여야의 정쟁거리로 전락할 소지만 다분하다.
물러나라며 "낙하산, 후안무치" VS 버티겠다며 "명백한 직권남용"
왼쪽부터 전현희 권익위원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윤창원 기자이와 함께 여권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전방위 사퇴압력을 넣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지목하는 등 수위도 노골적이다. 전 위원장과 한 위원장은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배제됐다.
전 위원장과 한 위원장이 공히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입장을 내비치자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전 위원장을 겨냥해 "그동안 권익위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며 그간 권익위가 부처의 정권수호위로 기능해 왔다고 압박했다. 앞서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두 사람을 겨냥해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후안무치한 것"이라고 일갈했었다.
이에 민주당은 "임기가 정해진 장관급 위원장의 업무를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박홍근 원내대표)"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와 극한 갈등을 빚으면서도 "임기라고 하는 건 취임하면서 국민과 한 약속"이라며 임기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논거로 소환해 맞서고 있다.
대통령실이 최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처럼 전 정부 '정보공개청구 항소사건' 목록을 파악하고 있는 것도 신구 권력 갈등의 화약고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정보공개를 피했던 사안 중엔 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둘러싼 '비서실 특별활동비 등 정보공개청구건'이 포함돼 있다.
잇따른 정책 의총, 민생위원회·TF…진짜 민생은?
이처럼 치열한 신경전 속에서도 여야는 각각 정부 정책과 합을 맞추는 집권여당, 정부의 경제 실장을 짚는 민생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부각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경쟁하듯 정책 의총을 잇따라 열고 민생 관련 위원회, TF를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원장 사수를 위한 여야 대치가 길어지면서 국회가 셧다운됐고, 민생 법안들은 심사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도 기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