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A씨는 2019년 경기도 지역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는 과정에서 총 6억5천만 원을 대출 받았다. 일정 기간 후 금리가 갱신되는 혼합형 대출로, 당시 금리는 2% 후반대였다.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가능 한도를 꽉 채워 대출을 받은 A씨지만, 이제는 금리 갱신을 앞두고 기대가 불안으로 바뀌고 있다. 그는 "아파트 호가가 최근 들어 고점에서 1억 원 이상 빠졌다"며 "지금도 매월 내는 원리금만 240만 원인데, 금리가 1~2%만 올라도 한 달에 300만 원 안팎으로 돈을 내야 할 듯해서 굉장히 마음이 심란하다"고 말했다.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치솟는 금리
황진환 기자
멈추지 않는 물가상승세에 맞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두 달 사이에 1.25%포인트 올렸다는 소식에 A씨 같은 영끌족들의 불안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미 기준금리 수준이 순식간에 같아지면서 외화 유출과 원화 가치 하락 등을 우려한 한국은행(한은)이 다음 달 초유의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인상)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이미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전달까지 0.25% 포인트씩 다섯 차례 금리인상 조치를 단행한 상태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변동금리는 이런 기준금리 인상 흐름에 속도감 있게 반응하며 치솟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 범위는 3.63~5.741%로 22일 집계됐다. 금리 상단이 6%에 육박한 것이다. 지난해 5월 말 금리 범위가 2.37~3.87%였던 점을 감안하면 약 1년 만에 상단이 2%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기준금리 상승 여파로 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출금리도 동반 상승하는 것이다. 국내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서, 변동형 주담대 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신규 취급액 기준)는 5월 1.98%로, 4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금 조달 비용으로 직결되는 금융채 금리와 수신금리가 올라가다보니 코픽스에 반영되는 것"이라며 "만약 한은의 빅스텝 인상이 현실화 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은행권에서 변동금리로 돈을 빌린 대출차주는 4월말 잔액 기준 77.3%에 달한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은 은행‧제2금융권 대출인데, 이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건 주담대다. 2017년 말부터 작년 말까지 4년 사이 409조 원이나 불어난 가계부채 잔액 가운데 절반 이상(211.8조 원)은 주담대 증가분이다. 은행‧제2금융권 주담대 잔액을 모두 합친 총액은 2017년 말 769.9조 원에서 작년 말 981.7조 원으로 급증했다.
자산가치는 하락…다중채무자 대출잔액 563조 원 넘어서
황진환 기자고물가와 고금리 환경 속에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은 점도 '영끌족'에겐 이중 불안으로 작용하고 있다. 맞벌이인 30대 B씨 부부는 작년 초 수도권에 '갭투자'로 집을 마련했는데, 주변 아파트 호가가 떨어지는 걸 보면서 내년 입주를 앞두고 매매를 고심 중이다. B씨는 "입주를 위해선 주담대에 더해 신용대출까지 6억 원을 넘게 받아야 하는데, 이자 부담은 점점 커지고 집값도 어떻게 될지 몰라 파는 걸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의 6월 둘째 주(13일 기준) 전국 아파트 값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3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낙폭이 크진 않지만, 좀처럼 멈출 것 같지 않던 가격 상승 흐름이 올해 들어 전환된 모양새다.
주식이나 코인(가상화폐)투자로 한 방을 노렸던 '빚투족'의 한숨도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에서 3억 원 이상 변동금리형 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40대 자영업자 C씨는 여윳돈 5천만 원으로 빚을 갚는 대신 가상화폐 루나에 투자했다가 최근 폭락 사태 속에서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작년 말 2%대 중반이었던 전세 대출 금리는 최근 4%대 초반으로 훌쩍 뛰었고, 그에 따라 월 이자부담도 60% 이상 불어났다. C씨는 "코인 투자로 경제적 자유를 꿈꿨는데,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며 "대출 원금부터 갚을 걸 그랬다는 생각에 잠이 안 온다"고 후회했다.
한은은 주식시장이 활황이었던 2020~2021년 중 가계의 주식 관련 투자액 191.6조 원 가운데 18%인 약 34.5조를 '빚투 규모'로 추정했다. 22일 코스피 지수는 작년 6월 역대 최고점이었던 3316.08 대비 29.3% 하락한 2342.81에 마감하며 연저점을 또 경신했다. 오후 4시35분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11월 최고점인 6만7566달러에 비해 70% 이상 빠진 2만198달러에 거래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리해서 빚을 끌어다 쓴 이들의 대출 부실화 우려가 금리 인상과 맞물려 점점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최근 한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가계대출 전체 차주 가운데 22.1%는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이들이 빌린 돈의 규모는 전체 가계대출 잔액의 32.1%, 금액으로 따지면 563조 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은이 이날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상 올해 1분기 기준, 대출을 포함한 전체 가계부채 보유 차주 가운데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취약차주' 비중도 전년말 대비 0.3%포인트 증가한 6.3%로 나타났다.
다행히 아직까진 가계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은 낮은 수준이다. 올해 1분기 말 은행권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17%, 제2금융권은 1.26%로 전년말 대비 각각 0.01%포인트, 0.1%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한은은 보고서에서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취약차주 등의 연체가 늘어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분석 결과 향후 자산시장 조정 정도에 따라 가계부문 소비가 제약되고 가계대출의 부실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금리가 오르면 오를수록 제 2금융권에서 높은 변동 금리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 다중채무자, 적자 가구부터 부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자영업 대출도 960조 원…"저소득층, 버는 돈 절반 상환 가능성"
가계대출 만큼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기업대출의 연체율도 은행권의 경우 0.28% 수준으로 높지 않지만 이는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편은 귀금속 상점, 아내는 미용실을 운영 중인 D씨 부부는 코로나19가 확산일로였던 지난 2020년 하반기에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지원을 받아 은행권에서 각각 3천만 원씩 자영업자 대출을 받았다. 거치 기간이 끝나고 현재 3.22% 변동금리를 적용받아 남편 D씨는 매달 약 66만 원씩, 아내는 3개월 주기로 약 200만 원씩의 원리금을 상환 중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매출이 코로나19 이전 대비 절반도 안 되고, 회복세가 느려 3년 남은 상환 기간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D씨는 "아내의 경우는 사실상 빚으로 원리금을 갚는 수준이어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1609조 원에 달한 기업대출의 대부분은 중소기업분(1384.6조 원)이고, 이 중소기업분의 절반에 육박하는 625.1조 원은 자영업자들의 사업자 대출이다. 이들의 가계대출까지 합친 '자영업자 대출' 총액은 960.7조 원에 달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40.3%나 증가한 액수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 피해상황을 고려한 금융지원 조치의 일환으로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도 실시했는데, 6개월씩 네 차례 연장을 거쳐 오는 9월 말 종료될 예정이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자영업자 대출과 관련해 "금리가 상승하고 9월 지원조치 종료시점도 다가옴에 따라 자영업자의 채무 상환 능력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며 향후 전개될 수 있는 구체 상황까지 분석‧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일단 한은은 자영업자 대출이 매년 코로나19 이전의 증가추세(12.6%)를 따라 늘어나고, 소득은 매출 회복세와 경제전망 등을 고려해 올해와 내년 각각 3.6%, 2.6%씩 성장하는 것을 기본 시나리오로 상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올해와 내년 각각 0.5%포인트씩 뛰고, 금융지원 조치가 예정대로 9월 종료되는 등의 변수가 복합 충격으로 작용하면 저소득(하위 30%) 자영업 가구의 DSR은 내년 48.1%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버는 돈의 절반 가량을 원금과 이자 상환에 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우려를 인식하고 자영업자 대출 부실화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긴 했다. 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대표적으로,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주체인 새출발기금(가칭)을 통해 은행으로부터 잠재 부실채권을 매입, 상환일정을 조정하고 채무감면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당국은 전체 자영업자 대출액 가운데 부동산 임대업자들의 대출분을 제외한 약 600조 원을 놓고 차주별 위험도를 자체 분석한 결과 약 30조 원 가량을 잠재 부실채권으로 산정했다. 또 30조 원의 20%인 6조 원은 특히 부실 위험도가 높다고 봤는데, 이는 과거 위기 때의 경험과 통계치를 분석해 도출한 결과라고 한다. 다만 일각에선 물가‧금리 상승 수준이 시장 예측을 벗어나고 있는 만큼, 보다 접근법을 세밀하게 가다듬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