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로 장기 찢어져 숨졌는데 오열…"그 부모, 진짜 악마였다"> <"마지막이니 잘 생각하라고" 노원구 피해자 생전 카톡에…> 국내 주요 언론사들의 범죄를 다룬 기사 제목들이다.
30일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에서 제69차 언론인권포럼 <'2차 피해' 유발하는 보도의 문제점: 성범죄, 아동학대 보도를 중심으로>가 열렸다. 유원정 기자
건국대학교 황현정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 선임연구원과 언론인권센터 모니터링팀이 지난 2021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국내 주요 중앙지, 일간지, 경제지 등을 모니터링한 결과에 따르면 범죄 보도는 월 평균 1만5천건 가량에 달한다.
과연 이들 범죄 보도는 2차 피해를 지양하는 방향일까. 모니터링 결과는 '아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성, 과장성, 폭력성, 잔혹성 등을 강조한 자극적 보도가 넘쳐 나는 실정이다.
30일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에서 열린 제69차 언론인권포럼 <'2차 피해' 유발하는 보도의 문제점: 성범죄, 아동학대 보도를 중심으로>에는 각계 언론 미디어 전문가 및 종사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언론의 범죄 보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했다.
수사기관이 제공한 공식 자료에는 피해자 신상정보와 가해자 행적이 없지만 기사는 그렇지 않다. 스토킹 살해 '노원구 세모녀 사건', 아동학대 사망 '정인이 사건'처럼 사건을 피해자 이름 및 주소지로 명명하는가 하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기본적 신상정보와 카카오톡 등 SNS 흔적까지 모두 기사화 된다. 실상 벌어진 사건 내용과는 무관하더라도 그렇다.
가해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행적과 주변인 인터뷰 등을 통해 잔혹성과 이상 성향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넘쳐 난다. 악마화된 가해자에게는 과도한 서사가 부여되고 결국 이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해당 사건이 개인 간 문제, 개인의 일탈로 축소되는 것이다. 가해자의 황당한 주장을 그저 전달하기만 하는 보도 방식 또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스토킹 범죄를 위시한 성범죄 보도에서는 더욱 이런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여성의전화 김수정 기획조직국 국장은 스토킹이 살해로 이어진 '김태현 사건'(노원구 세모녀 사건)을 들어 "범죄를 '구애 행위' 중 발생한 일로 미화해 응하지 않은 피해 여성의 '처신 문제'라 묘사하거나 가해자에게 집 주소를 알려준 피해 여성의 잘못인 것처럼 보도, 댓글을 다는 행태가 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악마적 개인'인 가해자가 '일탈'적으로 저지른 범죄라 보도하는 행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인 간 사소한 문제로 축소 시키는 것이다. 지극히 상습적이고 계획적인 폭력 행위가 국가가 개입해야 할 범죄가 아닌 개인 간 '사적 영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게 한다"며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이 여성폭력의 근본 원인임을 성찰하지 못하게 하고, 제대로 된 대책 마련보다 '형량 강화' 등 일시적 대책에만 그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비판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아동학대 보도도 마찬가지다. 세간에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16개월 아동학대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사망한 피해 아동의 얼굴, 신체, 학대 정황이 담긴 CCTV 등을 인용해 아동학대 과정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기사들이 대량 생산됐다.
해당 사건이 크나큰 사회적 파장을 낳았음에도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대책 등을 진단하는 탐사보도는 현저히 부족했다. 그보다는 가해자와 피해 아동 간 관계와 학대 행적에 집중하는 보도가 대다수였다. 이를 지양하고자 언론윤리헌장,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기준,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기준 등이 존재하지만 보도 현장에서 철저하게 지켜지긴 어려운 현실이다.
황 선임연구원은 "범죄 보도에 한해서는 윤리적 태도로 기사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선정적, 자극적 언어나 문장을 피하고 가해자를 악마화하거나 특성화 하는 내용도 피해야 할 것"이라며 "사건 본질과 관계없는 사생활 보도를 지양하고 피해자 개인정보나 신상정보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가해자도 과도하게 과거 행적을 캐거나 사생활 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을 지양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범죄사건이 일어난 현황에 대한 보도를 넘어 해당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요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적, 제도적 대응 방안을 제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극적 기사엔 더 자극적 댓글…오염된 '공론의 장'
그래픽=안나경 기자왜곡된 범죄 보도의 여파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론을 형성하는 독자들은 충격적 범죄 장면, 가해자 신상 및 이상 행동 등 자극적 제목의 기사들에 열광하지만, 정작 관심을 갖고 여론을 형성해 나가야 하는 재발방지 대책 등에는 반응이 미미하다. 범죄 보도가 사회적 제도 개선과 같은 긍정적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지 못한 모양새다.
스토킹 및 아동학대 범죄 보도 모니터링을 진행한 언론인권센터 한상희 사무차장에 따르면 자극적 기사에는 더 자극적인 댓글이 달린다. 독자들은 기사 내용이나 제목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양상을 보인다. 그 결과 사건의 원인 제공을 피해자에게 돌리거나, 피해 내용을 지나치게 묘사 또는 추측해 2차 피해가 발생한다.
한 사무차장은 "스토킹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와 게임을 통해 만났다는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피해자가 게임을 한 것 자체를 문제 삼고 마치 피해자 스스로 주소를 알려준 것처럼 언급해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몰아가거나 피해자 외모를 언급, 이 사건을 남녀 간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꼬집었다.
이어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라도 피해내용의 과도한 묘사가 댓글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 노출되는 것은 피해자나 유족들로 하여금 2차 피해를 유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추측성 내용이나 허위 댓글을 통해 또 다른 피해사실 묘사 역시 2차 피해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가해자의 경우, 보도에서 공개되지 않은 가해자 실명, 직장, 가족 등 신상정보가 댓글을 통해 노출돼 가해자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가 존재한다. 가해자를 향한 혐오가 지역이나 외국인 혐오로 연결되기도 한다.
결국 '공론장'을 기대했던 댓글 창은 표현의 자유란 미명 아래 '배설의 장'으로 변질됐다. 기사를 유통하는 언론사와 포털사이트가 더 이상 기존 댓글 정책을 유지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2차 피해의 심각성이 큰 성범죄, 아동학대 범죄 등 보도에 대해서는 새로운 댓글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각 언론사에 개별 기사 댓글 창 온·오프 기능을 제공하고 있고, 한겨레신문은 2차 피해가 예상되거나 우려되는 기사에 한해 개별 기사 댓글 창 닫기 기능을 활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한국기자협회 임소라 부회장은 "수년 전부터 댓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정 기사에 대한 '댓글 차단' 기능을 만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며 "댓글은 논쟁적 사안에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기 위한 공간이다. 아동성범죄, 성폭행 사건을 두고 '찬반 논쟁'을 벌이는 건 불필요한 일"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를 실제 온라인에서 구현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튜브'처럼 각 언론사들도 플랫폼 자체에 댓글 차단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이버, 카카오,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 경우 언론계 차원에서 댓글 창 개선 방안을 모아 가다듬고 공식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