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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출산정책…독일의 길이냐, 일본의 길이냐

사회 일반

    기로에 선 출산정책…독일의 길이냐, 일본의 길이냐

    편집자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감소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위기 앞에 높였다.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평생 낳을 출생아 수)은 0.81로, 초고령 국가의 대표격인 일본 1.34보다 훨씬 낮다. 출생아 26만500명은 1970년대의 4분의 1 수준이고, 6·25 전쟁 때의 절반 수준이다.

    이렇다보니 지역 소멸, 국민연금 고갈 등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경제 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인구 감소의 파고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열음이 날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안팎이 인구위기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5년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시기다. CBS노컷뉴스는 새 정부의 인구위기 대응책의 현 주소와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정책 방향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보려 한다.

    머스크 "일본은 소멸할 것" 경고했지만 한국은 더 심각한 상황
    2020년 출생율 한국 0.84명 vs 일본 1.33…20년 전부터 역전
    일본, 가족 관련 지출 GDP 대비 1.79%…유럽 선진국의 절반
    한국은 1.3%에 그쳐 일본보다 낮아…늘려도 모자랄 판에 감소

    ▶ 글 싣는 순서
    ①전쟁때보다 출생아 적은데…인구대책 또 후순위로 밀리나
    ②무늬만 저출생 정책…기본계획은 왜 실패의 길을 걸었나
    ③기로에 선 출산정책…독일의 길이냐, 일본의 길이냐
    (계속)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저출산·고령화는 전 세계적인 문제다. 일찍이 선진국의 대열을 형성한 유럽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경제 강국에 이어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개발도상 국가들도 직면한 현안이 됐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지난해 평균 합계출산율은 1.6명에 불과하다. 인구가 줄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인구대체 수준(2.1명)에 한참 모자란다.
     
    인구 위기는 각국이 처한 환경에 따라 강도가 제각각이다. 인구 감소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지 않은 유럽 국가 중에선 인구 위기를 시행착오 끝에 극복해 가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독일, 프랑스, 스웨덴 같은 노르딕 국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파른 인구감소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국가 소멸을 걱정하는 곳도 있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보다 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최근 일본의 소멸과 한국의 인구붕괴를 경고했다.
     
    이미 여러 객관적인 지표들은 우리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획기적인 변화 없이는 '수십 년을 잃어버린' 일본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그래픽=김성기 기자
     

    인구절벽 위기에 저출산 담당 장관까지 신설한 일본


    인구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일본은 꾸준히 정책을 내놓으며 나름 분주하게 대응해 왔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정현숙 교수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성호 박사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보다 10년 정도 앞선 1990년대부터 저출산 문제에 대해 정부가 나섰다. 1989년 합계출산율이 1.57까지 떨어진 것을 두고 '1.57 쇼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1994년 보육·육아 대책인 엔젤플랜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다음 세대를 이끌 어린이가 있는 가정은 국가가 지원한다'는 모토로 차세대 육성지원대책추진법이 만들어졌다. 일본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저출산 담당 장관까지 신설했다.
     
    2012년에는 소비세를 늘려 보육 예산으로 충당하기 위한 법률도 제정했다. 2015년에는 저출산 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내각부에 자녀·육아본부를 설치했다. 또 인구감소를 멈추고 출산율을 올려 1억명을 유지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1억총활약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2017년에는 취업 여성이 이용할 보육 시설을 대폭 확충하기 위한 육아 안심 계획을 내놨다. 또 유아교육과 고등교육 무상화 등 2조엔(약 19조원) 규모의 정책을 내놨다.
     
    2018년에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본의 저출산 정책은 우리나라가 추진했거나 추진하려는 정책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이들 정책은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일본은 고령사회를 대비해 노인 정책 중심을 펴다가 맞벌이 부부를 위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연합뉴스 

    포장은 화려했지만 실효성 낮은 정책들…재원 지원도 미흡


    하지만 연이은 일본의 저출산 대책이 포장은 화려했지만, 내실이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일본은 1994년 첫선을 보인 엔젤플랜은 억지스러운 저출산 정책을 끼워 넣어 효과를 반감시켰다.
     
    문무과학성의 '이지메'(집단 따돌림) 방지 대책, 아동·노인·장애인 이동권 관련 정책 등도 저출산 정책으로 제시됐다.
     
    저출산 정책의 효과를 이끌어 낼 만큼 예산을 쏟아붓지 않은 점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2017년 기준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족 관련 공공지출 영역에서 프랑스·영국·독일·스웨덴 등은 3.17~3.6%를 차지했지만, 일본은 1.79%로 절반 수준에 그친다.
     
    또 일본의 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고령자 관련 지출 비중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나머지 3분의 1이 가족 정책을 포함해 보건, 장애, 실업, 노동 관련 여러 부문에 얇고 넓게 뿌려진다.
     
    이렇다 보니 대기아동(정원이 넘쳐 보육원에 가지 못하는 아동)을 없애겠다는 계획이 수차례 나왔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정현숙 교수는 "일본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보장비용 중에서도 고령자 관련 비용만 빠르게 증가해 왔다"면서 "국민의료비의 60% 이상을 65세 이상 고령자가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인구학자인 아토 마코토는 2016년 일본 출산 정책을 가리켜 "예산액이 너무 적었고, 시기도 너무 늦었다"고 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여러 법률들도 방향성과 지원의 필요성만 강조했을 뿐 현실을 바꾸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저출산 담당 장관은 1억총활약담당 장관 외에 다른 직을 겸하면서 출산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잦은 교체로 일관성있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어려웠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그래픽=김성기 기자
     

    한국, 일본보다 심각한 출산율…따져보니 마중물도 '찔끔'

    일본은 한국보다 10년 앞서 저출산 상황에 접어들었고, 저출산 정책도 10년 먼저 시작했다. 일본의 합계 출산율은 1974년을 기점으로 인구대체 수준 이하로 떨어졌고, 한국은 1983년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저출산 대책은 일본이 1995년, 한국은 2006년 첫 단추를 끼웠다.
     
    이에 따라 일본의 한국의 10년 후를 비추는 '거울'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1년부터 합계출산율에서 역전 현상이 생겼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01년 1.31명으로 일본의 1.33명보다 낮아졌고,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2020년 기준 한국이 0.84명이고 일본은 1.33명이다. 일본은 그나마 1명 이상에서 버티고 있지만, 우리는 2018년부터 1명 아래로 떨어졌다.
     
    일본도 가족을 위한 복지비용 지출이 유럽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한국은 이보다 더 심하다.
     
    우리는 2017년 GPD 대비 가족 관련 공공지출 비중이 일본보다 0.5%p 정도 낮은 1.3%에 그쳤다. 일본은 소폭이라도 증가 추세지만, 한국은 되레 2015년 1.36%에서 뒷걸음질친 것이다.
     
    38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했는데 효과를 못 봤다면서 '정책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아직 출산율을 끌어올리기에는 마중물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보다 냉정한 진단이다.
     
    저출산의 흐름을 바꾼 선진국들이 GDP에서 육아부문에 지출하는 비율은 대체로 3% 정도지만, 일본은 0.6% 정도다. 한국은 훨씬 적은 0.1%다.
     
    조성호 박사는 "저출산 정책 관련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클수록 합계출산율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두 나라 모두 저출산 정책 지출이 OECD 국가 중에서 낮은 편이고 합계출산율도 낮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이름 뿐인 저출산 대책이 적지 않았고, 저출산 대책을 담당했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컨트롤 타워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양국은 공통적으로 최근 들어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이나 주거 문제 해결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지만, 실효성 있는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인구절벽의 깊이와 그동안의 재정 투입 효과를 감안하면, 한국은 일본을 앞질러 더 아슬아슬한 위험지대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 그래픽=김성기 기자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독일…무엇을 배워야하나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지난해 3월 독일 신생아 출산이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코로나의 충격으로 세계 각국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와중에 나온 소식이었다.
     
    코로나 영향으로 2020년 독일의 합계 출산율은 2년 전 1.57명보다 소폭 하락한 1.53을 기록했지만, 독일은 여전히 저출산의 함정에서 빠져나온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1990년대 중반 1.3명까지 하락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독일은 1970년대 후반부터 재정투입을 통한 저출산 대책을 마련했다. 올 2월 기준으로 독일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매월 약 219유로(약 30만 원 상당)를 지급한다. 지급 기간이 길게는 아이가 만 25세가 될 때까지 이어진다.
     
    아동수당은 셋째부터 금액이 더 올라가고 물가상승률과 연동돼 매년 인상된다. 아이를 낳은 부모가 출산 휴가 중에 월급의 65%를 받는 부모보조금도 있다. 출산휴가는 보통 아빠가 두 달, 엄마는 1년을 낸다.
     
    또 육아 세금공제 혜택도 있는데 이는 연봉이 높을수록 공제금액이 커지는 게 특징이다. 이는 부자 가정에 대해서도 출산을 유도하기 위한 방편이다.
     
    한국과 달리 대학은 물론 대학원까지 학비도 전액 무료다. 독일이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투입하는 비용은 한해 수백조원에 달한다. 2020년 아동수당으로만 456억 유로(62조 원)를 썼고, 무상교육을 위한 교육예산은 1586억 유로(214조 원)에 달한다.
     
    독일의 출산율이 드라마틱하게 반전한 데에는 막대한 재정 투입뿐 아니라 가사 분담 등 '성평등' 인식이 정착한 것도 주효했다.
     
    또 기업들이 일과 육아가 병립할 수 있는 제도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것 또한 '워킹맘'에게 출산의 선택권을 넓혀줬다. 서울여대 정재훈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육아휴직은 짧게 쓰되, 아침 8시에 출근에서 오후 2~3시에 퇴근하는 탄력근로제를 오래 이용한다"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적 돌봄시설 확대, 특히 초등학교 전일교육 도입와 맞물려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일본이 교훈을 얻을 만한 유럽 국가 중에는 스웨덴도 있다. 진보세력(사회민주노동당)이 장기집권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확고하게 뿌리내린 스웨덴은 출산율에서 확실한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스웨덴은 서유럽 국가들의 육아정책에 많은 영향을 줬는데 뮈르달 부부(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군나르 뮈르달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알바 뮈르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부부가 <인구문제의 위기>라는 책을 발표한 건 1934년이다. 이들은 이때부터 부모가 되려는 자유를 막는 경제적·사회적 장애물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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