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왜 영끌족의 빚을 내가 낸 세금으로 갚아줘야 하나요? 한 달, 한 달 성실하게 전세대출 이자 갚아 나가고 있는 사람이 애초에 무리하게 집 산 사람까지 책임져 줘야 하나요? 투자든 거래든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겁니다"
18일 회사원 김모(38)씨는 정부의 취약차주 금융 지원책 발표와 관련해 불만을 쏟아냈다. 전세대출 2억원에 대한 이자를 월 42만원씩 꼬박꼬박 갚아오던 김씨였다. 그는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지난 14일 정부가 대통령 주재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청년 등 취약차주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하자, 이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불거지며 상황이 점차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18일 김주현 금융위원장까지 기자간담회를 열고 진화에 나섰다.
'청년 특례 프로그램' 등 시민들 반발 거세
연합뉴스지난 14일 금융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 현황 및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사실상 연장하는 안,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40조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 저신용 청년들의 이자 감면 등을 지원하는 청년 특례 프로그램 등이 포함됐다.
금융당국이 해당 정책을 발표한 이후 형평성 및 도덕적 해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주식이나 가상자산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았던 저신용 청년들을 지원하는 청년 특례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 높다.
청년 특례 프로그램은 청년층의 신속한 회생과 재기를 위해 이자 감면, 상환유예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신용회복위원회에서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만 34세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채무 정도에 따라 이자를 30~50% 감면하고,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유예를 하면서 해당 기간 이자율을 3.25%로 적용하는 내용이다.
회사원 박모(27)씨는 "친구들 중에도 코인으로 큰 돈을 잃은 사람들이 꽤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들에 대해 결국 빚을 갚아주는 식으로 정책이 나가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알뜰하게 살면서 빚과 투자를 조심해 왔던 사람들로서는 비판적일 수 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안심전환대출 정책에 대해서는 '영끌러 구제책'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오는 9월 출시되는 45조 원 규모의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더 낮은 금리의 장기·고정금리 방식으로 바꿔주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지원자격은 우대형의 경우 부부소득 합산 기준 7천만 원 이하로 대출한도는 최대 2억 5천만 원까지다.
대책 발표 후 각종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전·월세 거주자는 혜택이 거의 없고 집값 인상으로 결국 부를 불린 부동산 소유자에게만 유리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주택 구매는 주거 성향이나 투자 상황과 향후 전망을 토대로 본인이 결정하는 것인데 국가가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맞느냐는 얘기다.
기준금리 상승기 초기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고정금리 대출을 받았지만, 이번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며 장기·저리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차주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가상자산 투자자 위한 제도 아냐" 금융위원장까지 '진화' 나서
김주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논란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상자산 투자 실패자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사업이 안 될 수도 있고, 가정적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투자실패도 있을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예정대로 채무를 갚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부연했다.
또 "이번 취약계층 지원방안은 우리 금융시스템에서 운영 중인 채무조정 제도를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이미 기존 금융회사의 자기 고객 대산 채무조정,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금융권 공동의 채무조정, 법원의 회생절차 등을 통해 취약자를 지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소상공인 부실 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소상공인 새출발기금의 경우 사실상 신규 금융거래가 불가능한 연체 90일 이상 차주에 대해서만 원금 감면(60~90%)을 지원한다고 김 위원장은 덧붙였다. 또한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신속 채무조정 역시 카드발급과 신규대출 등 금융거래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신용점수 하위 20% 차주만을 지원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원금 감면이 없어 '빚 탕감'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논란 초기 금융위는 "(청년이) 신용불량자, 실업자 등으로 전락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야 궁극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과 후생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핵심인 청년층을 지원함으로써 사회비용을 줄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란 것이다. 아울러 금융위는 지원 대상 청년층의 기준을 세밀하게 설계, 운영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지원 대상 세밀한 조정해야… 형평성 해치지 않도록 정책적 판단 필요
스마트이미지 제공신용불량자로 대거 전락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선제적인 정책이라는 금융당국의 주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향후 정책 집행 과정에서 구체성을 담보하고, 시행 단계에서 지원대상과 심사 기준을 세밀하게 설계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부작용을 최소화해 지원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도 시급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발표로 인해 또다시 직접 지원이 늘어나면 정책 대출에만 매달릴 수도 있고 지원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결국 지원 방법과 대상 선정 기준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형평성 우려에 대해 금융당국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빚을 낼 여력도 없는 청년을 위한 정책을 해야 한다. 빚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투자한 부분에는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부채가 많고 적고가 아니라, 코로나19 등 상황 때문에 가난해진 진짜 사람들을 찾아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