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왼쪽). 연합뉴스"세계 무대에서는 힘들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육상 선수로서 약점인 짝발, 그리고 높이뛰기 선수 중에서는 단신에 속하는 188cm 신장. 하지만 우상혁(26, 국군체육부대)은 모든 것을 이겨냈다.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기록(2m35)과 함께 4위에 오르더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 육상 최초 은메달을 땄다.
우상혁은 19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2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넘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2m37을 넘은 무타즈 에사 바심(카타르), 동메달은 2m33을 기록한 안드리 포르첸코(우크라이나)가 가져갔다.
한국 육상의 세계선수권대회 최초 은메달이다.
우상혁 이전 한국 육상은 세계선수권에서 단 하나의 메달만 획득했다. 바로 2011년 대구 대회 남자 20km 경보 김현섭이다. 김현섭은 당시 6위를 기록했지만, 앞선 러시아 선수 3명의 도핑 적발로 8년 후 동메달을 받았다.
◇짝발, 그리고 단신…우상혁에게는 핸디캡이 아니었다
우상혁은 짝발이다. 8살 때 당한 교통사고 영향으로 오른발이 왼발보다 10mm 작다. 좌우 밸런스가 중요한 육상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우상혁은 짝발을 이겨냈다. 중학교 때 도약 종목으로 전향하면서 균형 잡기 훈련에 매진한 결과다. 여기에 긍정적인 마인드도 영향을 미쳤다. 우상혁은 "구름발인 왼발을 다쳤다면 높이뛰기를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짝발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여기에 188cm 신장도 높이뛰기 선수 중에서는 단신에 속한다. 실제로 동메달을 딴 포르첸코와 장마르코 탬베리(이탈리아), 셸비 매큐언(미국)은 190cm가 넘는다. 금메달리스트 바심은 189cm로 우상혁과 비슷하지만, 키는 분명 높이뛰기에서 장점이다.
우상혁 스스로도 2016년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높이뛰기에 최적화된 신체를 가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신 스테판 홀름(스웨덴)을 롤모델로 삼고 작은 키를 극복했다. 홀름의 키는 181cm. 우상혁보다 작은 키에도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상혁. 연합뉴스◇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
우상혁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 후 부진했다. 부상도 따라다녔다. 도쿄 올림픽 출전조차 쉽지 않았다. 슬럼프였다.
올림픽 기준 기록(2m33)을 넘지 못한 상황. 하지만 도쿄 올림픽 티켓은 우상혁에게 찾아왔다. 랭킹 포인트 인정 마지막 날까지도 대회에 출전하면서 도쿄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당시 대한육상연맹은 우상혁을 위해 높이뛰기 우수선수초청 공인기록회를 열었고, 우상혁은 개인 최고 기록(2m31)과 함께 랭킹 포인트 15점을 추가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후 우상혁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도쿄 올림픽에서 2m35를 넘어 4위에 올랐다. 한국신기록이었다. 공동 금메달을 딴 바심, 탬베리와 격차는 2cm에 불과했다.
자신감이 붙었다. 우상혁은 세계 수준에서 경쟁하는 점퍼가 됐다. 올해 3월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2m34를 넘어 금메달을 땄고, 5월 다이아몬드리그 개막전에서는 2m33을 기록하며 우승했다. 2월 체코(실내)에서는 2m36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어진 세계선수권대회. 우상혁은 거침이 없었다. 2m30까지 모두 1차 시기에 바를 넘었다. 살아남은 선수는 5명.
우상혁은 2m33을 3차 시기에서 성공했다. 이어 2m35 역시 2차 시기에서 넘었다. 매큐언이 가장 먼저 탈락했고, 탬베리가 다음으로 도전을 끝냈다. 메달을 확보한 상황에서 포르첸코가 마지막 시기를 실패하면서 은메달을 확정했다. 2m37은 1차 시기 실패. 2m39로 바를 올렸지만, 두 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2m37을 넘은 바심이 금메달, 우상혁이 은메달이었다.
이제 우상혁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한다. 바로 2024년 파리 올림픽이다.
한국 육상은 마라톤(1992년 바르셀로나 황영조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이봉주 은메달)을 제외하면 올림픽 메달이 없다. 결선 진출조차 힘들었다.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 결선에 진출했을 때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높이뛰기 이진택 이후 25년 만이었다.
하지만 우상혁은 이제 결선 진출이 아닌 메달이 목표로 뛴다. 단순한 목표가 아니다. 당당한 메달 후보로 파리 올림픽을 준비한다. 한국 육상의 역사를 쓰고 있는 우상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