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생활을 30년 넘게 하다 보니 꽤 여러 출입처를 경험했다.
사회부 경찰기자로 시작해 정치부, 경제부, 산업부 등을 출입하면서 애정이 가는 곳도 있었고 지겨워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곳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 봄 출입하기 시작해 이듬해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 출입했던 통일부는 애정이 가는 출입처 가운데 한 곳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당시 남북관계가 워낙 활발하게 전개되다보니 일은 많았으나 한반도에 평화분위기가 무르익는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기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일했다.
당시 통일부는 회담을 비롯한 각종 대북 관련 행사가 열릴 경우 북한의 대화 상대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남북한 긴장 완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 아래 통일부는 부서 명칭 그대로 통일 일꾼으로서 최선봉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진보정권인 만큼 대북 햇볕정책에 기반을 두고 남북관계를 진척시켰고 담당 정부부처인 통일부는 공식 통로였다.
그야말로 부처이름에 걸맞게 통일부는 한반도 '통일'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정부부처였다.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통일부가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설립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통일부 홈페이지 캡처 인터넷을 통해 통일부 홈페이지를 접속해 봤다.
홈페이지에 실린 설립목적을 보니 '4.19 혁명 이후 사회 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통일 논의를 수렴하고, 정부차원에서 체계적·제도적으로 통일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라고 적혀있다.
임무는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 한다'고 돼 있다.
간단히 말해 통일 문제를 다루고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곳이 통일부다.
조직도를 보니 장·차관 아래에 통일정책실, 교류협력실, 정세분석국, 인도협력국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07년 필자가 출입하던 시절의 통일부와 비교해 명칭이나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인 조직도나 임무, 그리고 설립목적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통일부의 영문 표기를 보면 통일, 결집, 단일을 뜻하는 UNIFICATION을 넣어 'MINISTRY OF UNIFICATION'이다.
하지만 요즘 통일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통일'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하는 부처가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다툼을 조장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새로 들어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 전 정권의 과오를 들춰내기 위한 정치투쟁의 불쏘시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통일부는 최근 탈북 어민 2명의 북송 관련 입장을 2년 8개월 만에 바꿨다.
지난 11일 북한 어민 송환 결정에 "분명히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입장"이라며 탈북 어민 2명의 북송 당시 사진 5장을 공개한데 이어 18일에는 북송 당시 영상을 공개했다.
판문점 현장에 나가있던 직원이 휴대폰으로 찍어 개인적으로 보관해 온 4분 분량의 영상으로 탈북 어민 한 명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주저앉으며 버티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통일부는 추가 영상을 공개하면서 "있는 그대로 봐 달라"고 했다.
앞서 6일 전 공개된 사진에 비교해 당시 상황이 좀 더 생생하지만 추가적인 정보는 없어 정보 제공보다는 국민 정서를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이어 탈북 어민 송환 사건 을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이나 여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인권 유린'으로 규정하고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위해 사건 처리 과정에 법과 절차를 무시했다고 규탄하고 있다.
이에 야당인 민주당은 집권 초기 무능력함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급락하자 여권이 정세 반전을 꾀하기 위해 대북몰이로 정치 공세를 벌이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어민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했고 귀순 당시 우리 군을 피해 도망 다니는 등 귀순의 진정성이 의심되더라도 사건 처리 과정에 불법이 있었다면 조사해 바로 잡는 게 맞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통일 업무를 담당할 뿐 아니라 향후 북한과 대화의 문이 다시 열릴 경우 공식 파트너가 될 통일부를 정쟁의 전면에 내세워 불쏘시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통일부는 설립목적에 맞게 '통일'을 위한 일꾼으로 써야 한다.
'남북관계는 한반도의 생존과 미래가 달린 가장 핵심 사안으로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윤석열 정부와 여권은 명심해야 한다.
북한에는 세계 초강국인 미국조차 다루기 까다로운 세습 정권이 버티고 있다.
북한을 대하는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 자체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대화의 공식 파트너는 통일부라는 사실을 '통일 일꾼'인 소속 공무원들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