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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설득 않고 시행령 개정에 매달리는 尹 정부

핵심요약

기재부, 중대재해법의 경영책임자 규정 피해 시행령 개정 의견 내놔
노동부도 '법 위임 없는 시행령 개정 불가' 입장 밝혔는데도 재계 봐주기 개정의견 내놔
법무부도 '검수완박' 무력화할 '검수원복' 시행령 입법예고
"여소야대 속 불가피한 선택이라지만 상위법 취지를 시행령으로 위배하는 건 옳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회를 우회한 시행령 개정 작업에 주력하면서 갈등이 일고 있다. 야당의 비협조적인 태도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제 막 시행되기 시작한 법조차 시행령으로 흔드는 정부의 시도 역시 곱게 보기는 어렵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에 관한 연구용역을 마치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 개정 방안을 전달했다.

기재부가 제기한 개정방안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한다는 조건 아래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도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재계는 중대재해법에서 CSO를 경영책임자에 명확하게 포함하라고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해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을 때 미리 세워둔 CSO가 대표이사 대신 처벌받도록 '총알받이'로 쓰려는 의도라는 비판도 나오던 터였다.

박종민 기자박종민 기자
실제 현대건설이 중대재해법의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가 아닌 CSO라며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받아야 하는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하지 않았다가 논란에 휩싸인 일도 있다.

문제는 경영책임자의 범주는 애초 시행령에서 다툴 대상이 아니라 이미 법률에 명시됐다는 점이다. 민간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규정한 중대재해법 2조 9호 가목에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즉 중대재해법은 사업을 대표하고 이를 총괄하는 권한·책임이 있거나, 이에 준하는 권한·책임이 있으면서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를 경영책임자로 본다. 핵심은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 단순히 안전보건관리업무만 떼내어 단순히 CSO를 선임한다고 경영책임자가 될 수는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노동·법률 전문가는 물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시행령에서 경영책임자 규정을 다시 정리하는 것은 법에서 위임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럼에도 경영책임자의 대상을 넓히자며 기재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법령 패스'를 시도하는 까닭은 사실상 법 개정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주도해 통과됐고, 겨우 올해 1월 시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안에 법을 개정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이처럼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법령을 시행령으로 우회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법무부가 지난 11일 발표했던 '수사개시 규정 개정안'에 대해 야당은 '시행령 쿠데타'라고 비난하고 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현행 검찰청법은 검사의 수사개시 권한을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중요범죄로 규정했다.

하지만 대선 직전인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통과시킨 '검수완박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서는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좁혔다. 검찰의 수사 권한을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검찰청이 입법예고한 시행령은 공직자·선거·마약 등의 범죄 일부를 다시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포함했다. 사실상 검수완박법 이전의 6대 범죄 수준과 유사하도록 확대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이다.

이 경우는 중대재해법과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애초 법령에 있는 부패범죄, 경제범죄가 명확한 법률 용어가 아니고, 이 때문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는 문구를 붙여 시행령으로 범죄의 범위를 구체화하도록 허용했다.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더 나아가 시행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의 대상이 부패범죄, 경제범죄와 같은 수준의 범죄까지 포함할 수 있느냐 여부는 법 개정 당시부터 논란이었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법을 만든 국회의 취지에 역행하도록 법을 해석하고 시행령을 만들어도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물론 극심한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부로서 국회의 법 개정을 기다리기보다는 당장 꾀할 수 있는 정책 변화부터 추진하는 것이 잘못만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의 공개된 토론 속에 법 개정을 거쳐 해결할 사안조차 야당을 피해 시행령 개정에만 기대는 것에도 비판이 나온다.

용인대학교 최창렬 교양학부 특임교수는 "여소야대에서 야당이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이니 여당이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면서도 "법리적으로만 보면 상위법 취지를 시행령으로 위배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회를 향해서도 "상위법에 현저하게 위반된다면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고, 정부의 이러한 시도들은 상위법의 빈틈을 노려서 한다고 볼 수 있다"며 "애초 문제가 되는 법들을 만들 때부터 입법상 미비한 점이 없도록 했어야 했다"고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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