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군공항에서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방부 제공최근 경기도가 수원 군공항 이전 공론화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이전예비후보지인 화성 지역사회에 거센 반발이 일면서 '지역 갈등'이 또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오랜 현안을 도민 의견 수렴으로 풀기 위해 추진한 공론화 사업이 되레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기는 '역효과'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사업 공론화 반발 고조…갈등 고착화 우려
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 민관협치위원회에서 수원 군공항 이전 현안을 공론화 의제로 채택한 뒤, 화성 내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 등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8일 열린 수원전투비행장 화성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 주관 긴급 회의. 범대위 제공먼저 화성 화옹지구로의 군공항 이전을 반대해온 시민단체가 반기를 들었다. 수원전투비행장 화성이전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등은 지난달 8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공론화 의제 철회를 위한 단체 행동을 결의하고, 이달 5일 대규모 결의대회를 예고한 상태다.
화성으로 이전을 전제로 삼으면서도 정작 화성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공약 이행을 위해 도가 나섬으로써 갈등만 부추기는 것이라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화성과 수원 환경단체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수원 군공항 폐쇄를 위한 생명평화회의'는 나흘 전 전체회의를 열어 도의 의제 선정 백지화를 목표로 반대 운동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군공항 이전은 7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업비가 드는 데다 자연 훼손과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는 등 실익이 없는 만큼, 공론화 중단은 물론 화성습지 보존을 위해 전체 이전 방식이 아닌 전투기 분산 배치 등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이들은 군공항 이전 공론화 논란의 근본 원인을 놓고, 의제 선정 권한이 도지사에게만 독점적으로 주어진 것을 문제 삼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수원군공항 폐쇄를 위한 생명평화회의가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긴급 전체 회의를 열었다. 생명평화회의 제공공론화 저지에 지역 정치권도 가세했다. 송옥주(화성시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성명을 통해 "군공항 이전은 국가 사무이자 지자체 협의 사항인데도 도가 공론화 의제로 선정한 것은 법적·제도적·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군공항은 유치 희망지역으로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기도가 공론화 사업으로 지역 현안의 갈등문제를 해소하려던 취지가 무색하게, 오히려 비판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역 간 갈등이 더 심화된 셈이다.
이런 갈등 국면이 굳어져 사업이 계속 답보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론화 추진이 일방적 행위로 인식돼 화성시민들의 반발을 키운 것 같다"며 "화성지역에서 이전사업에 따른 인센티브를 크게 반기지도 않는 상황에서 반대 여론만 자극함으로써 답보 상태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군공항 이전 압력↑, 주민 주도 공론화 추진도
지난달 31일 오전 경기도청 4층 다목적회의실에서 열린 8월 도정 열린회의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경기도청 제공이처럼 도의 공론화에 대한 화성지역 반발이 거세진 데에는 올해 6·1지방선거 과정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수원 군공항 이전에 군불을 지핀 흐름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에도 경기도와 수원 지역사회는 여전히 이전사업에 고삐를 놓지 않는 모양새다.
김 지사의 경우 자신의 주요 공약사업 중 하나로 '경기국제공항' 건설을 제시, 3선의 수원시장 출신인 염태영 경기도 경제부지사에게 일임했다. 공론화 의제 선정에 대해서는 "군공항 이전으로 접근하지 말고 국제공항을 경기남부에 만드는 발상의 전환을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해당 사업이 군공항과 민간공항의 통합이전을 전제로 두고 있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올가을 조직개편에서는 공항 건설을 주도할 전담팀(TF)까지 꾸려질 예정이다.
지난달 30일 김진표(가운데) 국회의장과 이재준(오른쪽) 수원특례시장이 수원시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시청 로비를 함께 걷고 있다. 수원시청 제공도심 속 군공항을 옮기려는 수원 지역사회 역시 이전사업에 대한 의지가 굳건하다. 그간 군공항 이전에 앞장서온 김진표(수원시무) 국회의장은 최근 수원시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수원과 화성 사이에 위치한 종전 부지 일대가 첨단연구산업단지로 탈바꿈함으로써 두 지역이 모두 '윈윈'할 수 있다"며 군공항 이전 대안으로 제시돼온 경기남부 국제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재준 수원특례시장도 "의장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면 수원과 화성이 상생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또한 지방선거 국면에 윤석열 대통령(당시 당선인)이 수원지역 주민간담회에서 군공항 이전에 대한 중앙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약속했던 것도 사업 관련 기대감을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됐다.
지난 5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수원에 위치한 더함파크에서 열린 수원 군공항 소음피해 간담회에 참석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와 김용남 수원시장 후보가 동행한 모습. 박창주 기자
이런 가운데 군공항 이전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은 공론화 추진에 반색하며 활동 보폭을 넓혀가려는 분위기다. '수원 군공항 이전 시민협의회'는 도의 공론화에 맞춰 민선 8기 경기남부 통합국제공항 공약사업화를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주민설명회·홍보 강화 등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31일에는 군공항 인근 전투기 소음피해와 개발 소외를 호소해온 화성지역 시민단체인 '병점권 연합회'가 군공항 이전·국제공항 건설을 안건으로 채택해 주민 8천여 명의 서명부를 만들었다. 자체 공론화위원회도 결성해 도의 공론화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달 12일 수원 군공항이전 시민협의회가 임원진 회의를 개최했다. 수원시 공항협력국 제공앞서 지난달 3일 이뤄진 경기도의 수원 군공항 이전 공론화 의제 채택은 올해 1월 '경기도 공론화 추진에 관한 조례'가 공포된 이후 첫 사례다. 관련 공약사업을 실천하겠다는 도지사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수원 군공항 이전은 2013년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이듬해 수원시의 이전건의를 거쳐 본격화됐다. 2017년 국방부가 예비후보지로 화성 화옹지구를 선정했으나, 화성지역의 강한 반대로 이전부지 지원방안 수립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2년 전 김진표 의원이 발의한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데, 그가 의장직에 오르면서 법안 처리가 수월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개정안은 군공항 이전사업에 '기한'을 정해 찬성여론이 과반이면 이전 후보지 시장이 유치신청을 하지 않아도 특정 기간 안에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