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국내에 체류하는 캄보디아인 A씨는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 임시향정신성의약품인 신종마약, 일명 '러쉬(Rush)' 400여 병을 한국에 들여왔다. 캄보디아인 친구를 통해 주문했고, A씨의 어머니가 포장을 도맡았다. 방콕발 국제우편을 통해 러쉬를 수입한 A씨는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외국인 마약류 사범들은 이미 한국에 그들만의 '마약 사회'를 견고히 다져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인 마약류 사범이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밀수입한 마약들의 토착화 위험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검찰청 마약백서에 따르면, 외국인 마약사범은 지난해 2339명으로 2020년 1958명보다 19.8% 늘었다. 전체사범 중 점유 비율도 14.5%로 매년 증가 추세다. 올해 8월까지 이미 1571명의 외국인 마약류 사범이 적발됐다. 검찰은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본국에서 마약류를 밀반입해 자국인들에게 판매하거나 함께 투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낮에는 버섯농장 동료..밤에는 필로폰 동지"
마약 야바와 야바 제조 기계. 대검찰청 제공지난해 12월 4일 세종시의 한 버섯농장에 딸린 숙소. 새벽 3시 50분 이곳에서 일하는 태국인 3명은 기구에 필로폰 1g을 넣고 라이터로 열을 가해 연기를 번갈아 가며 흡입했다. 이들의 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같은 해 7월부터 이들은 버섯농장 숙소를 거점으로 필로폰과 신종마약인 야바를 거래하고 투약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을 통해 외국인 마약류사범이 연루된 1심 판결문 45편(피고인 66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해외에서 마약류를 들여와 자신들의 숙소, 공장, 노래방 등에서 소비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약류를 거래하고 투약하는 시간은 주로 일과를 마친 저녁 시간과 새벽 시간대에 집중됐다. 같은 국적의 외국인을 통해 마약을 사고 팔고, 같은 국적의 외국인들과 함께 모여 마약을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국적별로 봤을 때, 태국인이 34명(51.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베트남 6명(9.1%), 러시아 3명 (4.5%)을 비롯해 중국·에콰도르·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키즈스탄·미국·미얀마 등 마약사범들의 국적은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마약사범에 대한 선고 중에선 집행유예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대다수의 마약사범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실형 선고율은 13.6%(66명 중 9명)에 불과했다. 또 다른 특징은 외국인 마약사범 중 절반 이상이 한국 체류 기간이 만료된 불법체류자라는 것. 66명의 피고인 가운데 35명(53%)이 마약 취급 당시 유효한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앞선 태국인 3명의 판결문에는 "본국을 떠나 대한민국에서 성실히 일하여 왔던 것으로 보인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일선 한 수사관은 "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약은 신종마약 '야바(YABA)'다. 경찰에 적발되면, 이들은 '야간노동 시 잠을 깨고 고된 노동을 잊으려 카페인과 필로폰을 섞어 사용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마약은 마약일 뿐이다. 야바는 동남아시아 최대마약 조직을 이끌었던 마약왕, 쿤사가 메트암페타민(25%)과 카페인(70%), 기타(코데인 등 5%)를 합성해 개발한 마약으로 3일간 잠을 안 자도 될 정도로 각성효과와 환각성·중독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위 수사관은 "잠깨려고 먹은 거 보면 짠하기도 하면서, 돈 벌려고 마약을 유통한 애들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마약 투약부터 유통·판매까지…우리끼리 '마약사회'
100억 원대 필로폰 밀반입해 유통한 태국인 일당 검거. 연합뉴스"외국인 인구가 많아지다 보니 국내에서 한국인을 상대하지 않더라도 자기네끼리 거래가 돼요. 사회가 형성되는 거죠"
지난 11일 강원경찰청은 '야바'와 필로폰을 유통시킨 국내 불법체류 태국인 65명이 경찰에 붙잡았다. 이들은 지난 4~9월 동남아 등 해외에서 밀반입된 마약류를 강원도와 경기도, 충북, 경북, 전남 등 전국으로 유통하고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강원 일대의 판매책으로 활동하던 한 태국인은 신종마약 야바를 사들인 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1정당 5만원에 팔아넘겼다. 노동자들은 여럿이 돈을 모아 '야바'를 산 뒤 농촌 지역의 비닐하우스 등에서 마약을 투약했다.
마약 전문 수사관들은 외국인 커뮤니티 내에서 유통, 판매, 투약이 가능한 마약 사회가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약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경찰관 B씨는 "일례로 태국에는 '송크'라는 물을 뿌리면서 즐기는 축제가 있다. 일례로 경기도 안성 지역에서 해당 축제를 할 때 신종 마약 야바 등을 거래한다더라"고 전했다.
또 "최근에 나이지리아인들이 종종 검거되는데, 약을 본국에서 받아온다. 그냥 받으면 탄로가 나니, 옆 나라 가나 등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보내 여러 사람을 거쳐 약을 분산시킨다. 약이 떨어지면 다시 밀수입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귀띔했다. 수사관들은 같은 국적의 사람들끼리 모여 마약을 주로 하다 보니 한국인 투약책을 통해 외국인 판매책들을 검거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단순 투약뿐 아니라 유통과 판매에도 나서고 있다.. 태국인 C씨는 올해 2월 본국에 있는 자국인으로부터 '마약이 들어있는 택배를 받아서 한국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면 100만원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그는 휴대전화 채팅 어플 '라인'을 이용해 전라북도 고창에 있는 수취인의 주소를 알려주는 등 필로폰 밀수입 공모에 나섰다. 본국에 있던 판매책은 필로폰 19.05g, 18.73g, 15.57g, 17.67g, 16.98g을 각 인스턴트 커피봉투 안에 넣어 정상적인 커피봉투와 섞는 방법으로 위장해 국제특급우편을 보냈다. C씨가 받을 예정이었던 필로폰은 88g으로 약 3천여 명이 투약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다행히 해당 필로폰이 통관 과정에서 발각돼 압수돼 국내 유통은 되지 않았다.
밀수입한 마약 퍼질라…전문가들 "국제공조 필요"
연합뉴스
이러다 보니 외국인 마약사범들이 들여온 현지 마약들이 토착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4-5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신종 마약을 들여와 확산했고, 특히 안산과 평택, 의정부와 동두천 등 경기도 지역에서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한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는 "처음엔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인이 복용하기 위해 마약을 가지고 왔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에 이걸 팔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태국인의 경우 야바 등을 들여와 장사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B수사관은 "필로폰의 경우 동남아에서는 1kg에 많아 봤자 1천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는데 그게 우리나라에 들어 오면 소매가로 10억까지 간다"며 "돈 때문에 마약류 유통에 뛰어드는 외국인도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마약류 유입을 막기 위해서 출발지에서 마약류 단속 철저히 할 수 있도록 국제 공조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지금은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을 통한 밀반입이 많다"며 "하지만 그 많은 국제우편이나 특송화물을 마약견이 다 발견하기 어렵고, 인천공항 검색 스캐너를 통과해도 은박지에 싸거나 0.02g처럼 양이 적을 경우엔 적발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를 막기 위해 그는 "태국 마약수사청이나 미국 DEA, 베트남 경찰청, 관세청, 국정원 등의 국제적인 공조가 이루어져야만 국내 밀반입을 차단할 수가 있다"며 "(마약을 보내는 쪽에서) 언제, 몇시에 어느 화물이 간다는 식의 정보 공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