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인파가 몰리면서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30일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는 모습. 박종민 기자'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 수가 150명을 넘어선 가운데, 사고 당일 인파가 1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 예상됐음에도 '압사 사고' 예방책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의 경우 당일 현장에 130여명이라는 역대 가장 많은 경력을 투입했지만, 대부분 마약 단속 등 범죄 예방에만 집중됐고, 보행 경로 관리 등 압사 사고 예방을 위한 인원 배치는 없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사고 당일 10만명의 인파가 이태원이라는 좁은 공간에 모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 용산경찰서가 참사 이틀 전인 지난 27일 배포한 '이태원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 확립에 총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핼러윈으로 클럽 등 영업제한이 해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축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어 용산서는 "온라인상 핼러윈과 이태원을 단어로 한 검색량이 폭증하고, 소위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유명인들도 핼러윈 주말 이태원 방문을 예고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며 "일일 약 10만명 가까운 인원이 이태원 관광특구 중심으로 제한적인 공간에 모이다 보니 불법촬영·강제추행·절도 등과 같은 범죄가 빈발할 수 있고,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민 불편도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지난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 등이 구조활동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면서 "핼러윈 종합치안 대책을 통해 범죄·무질서 취약장소를 분석, 핼러윈 주말 3일간 112·형사·여성청소년·교통 등 관련 기능에 추가로 경찰기동대를 지원받아 총 200여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하여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암암리에 발생하고 있는 마약 범죄에 대한 실시간 단속·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압사 사고'에 대한 예방책은 별도로 없었다. 사고 당일 이태원에 투입된 경찰 인원은 총 137명으로 지역경찰(지구대·파출소) 32명, 수사 50명, 교통 26명 등으로 구성됐다. 지역경찰은 순찰과 신고 접수 및 현장 출동 등을 담당했고, 수사 인원은 불법촬영이나 마약 단속 등 범죄 예방에만 집중됐다. 보행 경로 관리 인원은 거의 없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적어도 이태원 샛길에 많은 인원이 모이면 위험하다는 건 알려진 상황인데, 그걸 알았다면 질서유지를 위해 들어가고 나가는 출입구를 달리하는 등 관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내리막길이라는 장소의 위험성이나 인원 밀집도 등을 고려한 여러 안전조치가 있어야 했다"고 짚었다.
유원대학교 경찰소방행정학과 염건웅 교수 또한 "2017년에는 올해보다 많은 20만명이 모인 적이 있다. 그때는 경찰이 폴리스 라인을 치는 등 대비를 했었다"며 "이번엔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사고 전날에도 수천명이 그 골목에 있었다고 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거리에 있던 사람들을 우회 시키는 등 통제에 경찰이 도와줘야 했는데 굉장히 미흡했다"며 "물론 경찰은 가용 인원을 모두 동원한 것이겠지만 현장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안타까움이 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반면 경찰은 올해 핼러윈 축제에 투입된 경력이 예년에 비하면 훨씬 많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최근 5년간 핼러윈 축제에 동원된 경찰 경력 중 올해 투입된 인원이 가장 많았다. 경찰에 따르면 핼러윈 축제에 동원된 경찰 경력은 2017년 90명, 2018년 37명, 2019년 39명, 2020년 38명, 2021년 85명 등이었다.
서울경찰청은 "일각에서 이태원 사고 당시 경찰 배치 부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코로나 이전인 2017~2019년에는 경찰관을 34~90명 수준에서 동원했던 것에 비해 올해는 지구대·파출소 인력을 증원하고 경찰서 교통·형사·외사 기능으로 합동 순찰팀을 구성해 인력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얼마나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는지 보다 투입된 인원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많은 인원이 좁은 공간에 모였을 때는 불법촬영·강제추행·절도와 같은 강력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점도 있지만, 압사 사고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도 예상해 병력 배치가 균형적으로 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범죄 수사나 현장에서 발생할 위법 상황들을 단속·적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런 행사가 있을 때 질서유지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많은 인원이 모였을 때 경찰이 안전을 위한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수사에 투입된 인원에 비해서는 좀 적었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원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정 투입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력 운영 시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질서유지 쪽에) 배치해서 기능하게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앞으로 유사한 대형 축제나 행사가 계속될 텐데, 주최 측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질서유지가 사각지대에 있으니 경찰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도록 하는 등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참사의 경우 행사 주최 측이 별도로 없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경찰에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됐음에도 질서유지를 위한 예방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해 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들 또한 별도의 안전 대책은 없었다. 용산구청은 오는 31일까지를 '핼러윈데이 긴급대책 추진 기간'으로 정하고 이태원 일대에 대한 방역과 행정지원, 민원대응 등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가 좁은 공간에 모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압사 사고 방지 대책은 별도로 없었다. 서울시 역시 별다른 예방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고현장 살펴보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한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태원 압사 참사 관련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투입 인력이 적었던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 경비 병력들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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