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장 주재 원내대표 회동 기념촬영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김 의장,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김진표 국회의장이 예산안 협상 시한으로 정한 15일에도 여야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김 의장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두번째 중재안을 제시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하면서 협상의 물꼬가 트이는 듯 했지만, 국민의힘이 수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면서 예산안은 다시 표류하게 됐다.
김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하며 "우리 모두 오늘은 결론을 내야 한다, 의장으로서 마지막 조정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조정안의 내용은 '법인세 최고세율의 1%p 인하'와 '행안부 경찰국·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관련 추후 입법적 해결'이었다.
최대 쟁점인 법인세의 경우, 정부·여당은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과세표준 3천억원 초과 대기업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3%p 인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앞서 김 의장이 22%로 인하하되, 시행을 3년 유예하자는 첫번째 중재안을 제시한 바 있지만, 민주당이 거부했다.
그러자 김 의장이 이날 법인세 최고세율을 1%p만 내리는 중재안을 재차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이 경우 지방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첨단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한 조례 개정 등을 통해 추가적인 (세금) 경감 조치를 별도로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인세 인하 폭은 최대한 낮추는 대신, 지자체 차원의 세제 지원으로 실질적 감세 효과를 모색해보자는 제안이다.
또다른 쟁점인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 예산 문제와 관련해서 김 의장은 "법률 개정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설립된 기관의 예산 문제는 여야가 협의를 거쳐서 입법적으로 해결하거나 현재의 여러 권한 관련된 부분을 예비비로 넣어서 추후에 결정할수 있도록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관련 예산의 전액 삭감을 요구하는 민주당의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예비비라는 통로를 통해 임시적으로 기관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절충안인 셈이다.
특히, 김 의장은 "639조 원의 예산안 중 5억여 원 차이를 좁히지 못해 타협을 이뤄내지 못하는 것은 민생경제는 안중에도 없이 명분 싸움만 하는 소탐대실의 전형"이라며 "정부·여당이나 야당 모두 결단을 내려 수용해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며 여야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김 의장의 최후통첩을 두고 여야는 숙고에 들어갔다. 먼저, 민주당은 이날 오후 4시부터 40여분 의원총회를 거친 뒤, 김 의장 중재안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의장의 중재안이 민주당의 입장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고심 끝에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의장의 뜻을 존중해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엔 국민의힘에서 김 의장 중재안의 수용을 보류하며, 예산안 합의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5시 50분부터 20여 분 동안 의원총회를 열었는데, 주호영 원내대표는 "법인세율 1%p 인하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당내 의견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또 주 원내대표는 "예산안에서 여야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쟁점이 있는 항목이 6~7가지 더 있다"며 김 의장 중재안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 추가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의 입장은 공식적으로는 보류지만, 사실상 김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읽힌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유치를 강조해왔기 때문에 당내에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기류가 전해진다. 의원총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이웃한 대만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20%라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인하가 필요한 상황인데, 1%p 인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며 "법인세 문제를 포함해 각종 쟁점에 추가 협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여야는 공공임대주택 확대, 지역화폐 예산 복원, 기초연금 부부 연계 감액제도, 금융투자소득세 등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산안 처리 시한이었던 지난 2일을 훌쩍 넘긴 여야는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열흘 넘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야는 계속해서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지만, 이른 시일 내에 타결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회의장이 마지막 중재안이라는 최후통첩을 남긴 만큼, 우리도 거부 대신 보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며 "협상은 계속되겠지만, 이미 강대강 대치가 지속된 상황에서 빠르게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