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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경찰 집중단속 비웃는 '깔세'…막판까지 털어먹는 '전세사기'

사건/사고

    [단독]경찰 집중단속 비웃는 '깔세'…막판까지 털어먹는 '전세사기'

    편집자 주

    가장 안전하고 포근해야 할 집이 끔찍한 악몽의 장소로 전락한다. 피땀 흘려 모은 전세금은 자취를 감추고 전세대출은 빚더미가 되어 삶까지 위협한다. 치밀한 전세사기 전면에는 소위 '빌라왕'으로 불리는 바지사장들이, 그 뒤에는 '배후세력'들이 판을 주도한다. 경찰이 집중 단속을 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사기꾼들은 '덫'을 놓고 서민들을 유혹하는 중이다.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준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가운데, CBS노컷뉴스는 전세사기가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밀착 취재했다. 파멸로 이끄는 '검은 미로'를 만드는 조직과 체계는 예상보다 더욱 악랄했다.

    [검은 미로, 전세사기③]
    '버릴 매물' 명단 공유하는 전세사기 일당
    '전세사기' 일당, 마른 걸레에서 물 짜내듯 막판까지 '편취'
    변제능력 없어 경매 넘어간 와중에 '깔세'
    경매 예정된 '버릴 매물' 명단 공유…세입자 물색
    HUG 강제관리주택 30호 불과…틈 노려
    "경매개시 결정된 주택엔 들어가지 말아야"

    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위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단독]빌라왕 섭외 '토스실장'의 비밀…직접 취업해보니
    ②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③[단독]경찰 집중단속 비웃는 '깔세'…막판까지 털어먹는 '전세사기'
    (계속)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신청한 강제경매가 늘어나는 가운데 해당 주택을 소유한 임대인과 부동산 컨설팅 업체 등 '전세사기' 일당은 경매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 중에도 이른바 '깔세(선 월세)'를 놓아 추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깔세란 보증금 없이 임차기간만큼의 월세를 한번에 선지급하는 임대차 계약으로 흔히 말하는 사글세를 얕잡아 이르는 부동산 업계 은어다. 깔세는 보통 장기 임대가 어려운 경기 침체기에 상가 점포를 단기 임대하거나 일정한 소득이 없는 이들이 고시원 등에서 방을 구할 때 흔히 맺는 임대차 계약의 한 방식이다.

    경찰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무자본 갭투기 전세사기는 건축주 등 매도인과 부동산 컨설팅 업체, 명의 대여자 그리고 일부 공인중개사의 공모로 이뤄진다. 경찰의 집중 단속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도 이들은 500만원~2500만원까지 수수료를 내걸고 '깡통전세' 명단을 공유하며 급매, 전세, 깔세 등 임대차 계약을 지속하고 있었다.


    마른 걸레에서 짜낸 '물'…'버릴 물건' 모아 명단 공유


    2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명의 대여자인 '바지 집주인'이 보증사고를 내 전 세입자가 임차권등기를 해둔 매물에 전세사기 일당이 깔세·단기임대 방식으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 정황이 포착됐다. 서울의 A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 일당으로부터 깔세 세입자를 구해달라며 수수료를 제안 받았다고 밝힌 매물 명단에는 서울·경기·인천 등에 있는 50여채의 신축 빌라·오피스텔의 주소와 전용면적, 계약 만기일, 보증금 등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해당 명단을 A공인중개사에 보낸 오모씨는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빌라 100여채를 소유하고 있다며 경매에 넘어갔거나 경매에 넘어갈 위험이 있는 매물을 명단으로 정리해 부동산 컨설팅업체나 공인중개사 등에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었다. 오씨는 급매 혹은 깔세 등 계약을 진행해주는 대가로 200만~500여만원을 제안했다.

    A공인중개사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에 든 세입자들이 임차권 등기를 하고 집을 빼면 HUG에서 이거를 경매 처분을 하는데 그 처리 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그 사이에 (전세사기 일당들이) 깔세를 놓는다"며 "깔세로 400만~500만원이 되는데 이걸 또 받아가지고 나눠먹는다"고 설명했다.

    A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본인을 오씨의 대리인이라고 소개한 부동산 컨설턴트 B씨가 단기임대차 계약을 함께 진행하자며 제안해왔다. A공인중개사가 10개월 단기임대를 원하는 세입자가 있다고 하자, B씨는 처음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요구했다.


    경기도 한 빌라촌에 있는 해당 매물의 등기부등본 갑구에는 HUG의 가압류(2021년 4월)가, 을구에는 임차권등기명령(2022년 11월)이 표기돼있었다. A공인중개사가 해당 매물이 경매에 넘어갈 우려가 있는 상황 등을 지적하며 위험성을 따지자 B씨는 보증금을 없애고 100만원을 더 깎아 10개월치 깔세 400만원을 제안했다고 한다.

    A공인중개사는 "중간에 경매 절차가 진행되면 귀찮아지고 꺼림칙하기 때문에 해당 계약을 진행하지 않았다"면서도 "깔세 나온 매물이 신축 빌라라 상태가 좋기 때문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정도 반지하에 살던 사람들은 짐 없이 들어와 살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식으로 깔세를 10개만 놔도 4000만원, 100개가 되면 4억"이라며 "어차피 경매 넘어갈 '버릴 물건'이라고 생각하니까 깔세까지 놔서 임대인이랑 컨설턴트 나눠먹고, 한번 연락을 튼 공인중개사들한테도 이런 매물 100여개씩 모은 명단을 계속 보낸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입수한 '전세사기' 일당 사이 공유되는 복수의 명단에 오른 주택 등기부등본을 조사한 결과 특정 부동산 개발·임대·컨설팅 업체 혹은 개인이 각각 30여채가 넘는 매물을 소유했으며, 범죄 수법과 사후 대처 과정 등을 공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깔세' 명단 속 주택 가봤더니…여기저기 '경매 안내문' 붙어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오씨가 제공했다는 한 명단의 매물 50여개 주택 등기부등본 갑구상에는 소유자에 공통적으로 박모씨의 이름이 등장했다. 박씨는 2018~2019년 사이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신축 빌라·오피스텔 50여채를 집중 매입했다.

    그는 지난해 7~8월 사이 서울 빌라 4채와 경기도 빌라 2채를 집중 매도했다. 이중 경기도 소재 빌라 2채는 각각 2억여원의 매매가로 지난해 9월 같은날 이모씨에게 명의를 이전했다. 박씨가 보유한 50여채 중 20여채는 2021년 12월 무렵부터 이달까지 세금 체납으로 인한 압류 이력이 있었다. 또 전세권 설정 2건, 임차권등기명령 1건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진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해당 명단에 있는 주택 현장을 돌며 전세사기 일당의 흔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명단에 포함돼있지 않은 다른 호수에서도 세금 체납으로 압류 상태이거나 임차인 및 HUG의 신청으로 강제경매가 개시된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등기부등본상 박씨가 소유자로 6채나 이름을 올렸던 강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는 30여채 중 14채가 세금 체납 등으로 압류 상태였으며 12채에 대해선 임차권등기명령이 설정돼 있었다. 해당 오피스텔을 최초 분양 받은 이들 중 2~10채를 소유했던 이들이 보증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40대 우모씨가 소유한 4채와 20대 이모씨가 소유한 1채 등 총 5채는 2021년~2022년 사이 HUG의 신청으로 강제경매 절차를 밟고 있었다.

    또 변제 능력이 없는 명의 대여자를 찾아 한꺼번에 명의를 이전한 정황도 포착됐다. 박씨는 2020년 1월과 2월 양일에 걸쳐 해당 오피스텔 3채를 서모씨에게 매도했는데, 이후 모두 세금이 체납된 상태였으며 1채에 대해선 HUG의 가압류가 걸려있기도 했다. 10채를 분양받았던 40대 문모씨는 2021년 5월 30대 문모씨에게 한번에 2채, 같은달 20대 이모씨에게 한번에 2채를 각각 매도했다.

    17일 찾은 서울 강서구의 한 오피스텔. 해당 건물에는 총 5채가 강제경매 절차를 밟고 있었다. 박희영 기자.17일 찾은 서울 강서구의 한 오피스텔. 해당 건물에는 총 5채가 강제경매 절차를 밟고 있었다. 박희영 기자.해당 오피스텔에는 '빌라의 신' '2400조직' 등으로 불리는 권모씨와 함께 구속 기소된 최모씨가 2채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파악됐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요즘 같이 빌라 분양이 안 될 때는 수수료가 1채당 2500만원까지도 올라간다"며 "2채만 해도 5000만원을 벌 수 있으니까 부동산 컨설턴트 업체 직원이 자기 명의로 분양받아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또 "땀 흘려서 번 돈 아닌 이상 비싼 차 몰고 생활비로 써버린 다음에 세금은 감당 못한다"며 '독이 든 꿀'에 비유하기도 했다.


    경매 넘어간 '전세사기' 주택…버젓이 부동산 정보 플랫폼서 광고


    변제 능력이 없는 바지 집주인이 보증사고를 내 강제경매가 진행 중인 주택의 깔세 계약은 전세사기 일당 사이 암암리에 진행될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버젓이 부동산 정보 플랫폼에 '단기임대' 매물로 광고되며 새로운 세입자를 찾는 모습도 포착됐다.

    '빌라의 신' 권씨가 8채, 그 일당 박모씨가 1채 소유한 서울 은평구의 한 오피스텔은 총 6채가 세금 체납으로 인한 압류 이력이 있었으며, 이중 HUG의 강제경매절차가 진행 중인 곳도 있었다. 지난 18일 해당 오피스텔에 7채를 소유한 김모씨의 주택 한 곳 현관 앞에 채권자 HUG가 신청한 '부동산임의(강제) 경매'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해당 주택은 지난해 8월 임차권등기명령이 설정돼있기도 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해당 주택에는 인근 직장에 다니는 고모씨가 지난달부터 '단기임대'로 들어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는 곧 다른 지역으로 발령날 것을 대비해 부동산 정보 플랫폼에서 단기임대 매물을 찾던 중 해당 오피스텔을 발견해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65만원 내는 조건으로 3개월을 계약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고씨에게 해당 매물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인천에 소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는 "경매 진행 중이란 상황을 알고 계약할 때 의심을 많이 하긴 했다"면서도 "돈 없는 집주인이 아니라 부동산에서 보증을 서주고 돈도 부동산으로 보낸다"고 했다. 이어 그는 "보증금 150만원도 없어지는 돈이라고 생각 하는데, 단기로 살기에 적당한 금액이라 어느 정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은평구 한 오피스텔 현관문에 붙어있던 '부동산임의(강제)경매 안내문'. 해당 주택에는 단기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새로운 세입자가 한달째 살고 있었다. 박희영 기자18일 서울 은평구 한 오피스텔 현관문에 붙어있던 '부동산임의(강제)경매 안내문'. 해당 주택에는 단기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새로운 세입자가 한달째 살고 있었다. 박희영 기자
    보증사고가 발생한 주택 중 HUG가 채권자인 경우 강제경매를 개시하게 되면 통상 절차가 진행되는데 1~2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경우 HUG는 보증사고 난 주택에 다른 세입자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전세사기 임차인에게 임시거처로 제공하는 긴급지원주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강제관리인 지정과 강제관리주택 신청의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지난 20일 기준 HUG에서 운영 중인 강제관리주택은 30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HUG 관계자는 "경매를 진행한다고 해서 강제관리주택을 받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원에서 승인해줘야 강제관리주택을 쓸 수 있는데 받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강제관리주택 지정 등은 법원이 결정해줘야 할 문제"라면서 "깔세를 놓는 건 아직까지 소유권을 가진 집주인 권리일 수 있지만, 경매 개시가 결정된 등기를 보고도 보증금을 걸어두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항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한 행동"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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