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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해도 계속 생겨나는 전국 '빌라왕'…배후, 뿌리를 뽑아야

사건/사고

    사망해도 계속 생겨나는 전국 '빌라왕'…배후, 뿌리를 뽑아야

    편집자 주

    가장 안전하고 포근해야 할 집이 끔찍한 악몽의 장소로 전락한다. 피땀 흘려 모은 전세금은 자취를 감추고 전세대출은 빚더미가 되어 삶까지 위협한다. 치밀한 전세사기 전면에는 소위 '빌라왕'으로 불리는 바지사장들이, 그 뒤에는 '배후세력'들이 판을 주도한다. 경찰이 집중 단속을 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사기꾼들은 '덫'을 놓고 서민들을 유혹하는 중이다.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준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가운데, CBS노컷뉴스는 전세사기가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밀착 취재했다. 파멸로 이끄는 '검은 미로'를 만드는 조직과 체계는 예상보다 더욱 악랄했다.

    [검은 미로, 전세사기④]
    전국 뻗친 '빌라왕'은 누군가?
    계약할 땐 '젊고 부유한 임대사업자'였는데
    3개월 만에 낡은 빌라서 병약한 모습
    빌라왕 '바지 집주인' 경우 많지만, 건축회사 회장인 진짜 빌라왕도
    '건축왕' 딸, 공인중개사에서 전세계약 중개
    '이름 없는 빌라왕' 전국에 퍼져…피해 규모 계속 커질 듯

    '청년빌라왕' 송씨의 생전 거주지. 김정록 기자'청년빌라왕' 송씨의 생전 거주지. 김정록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빌라왕 섭외 '토스실장'의 비밀…직접 취업해보니
    ②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③[단독]경찰 집중단속 비웃는 '깔세'…막판까지 털어먹는 '전세사기'
    ④사망해도 계속 생겨나는 전국 '빌라왕'…배후, 뿌리를 뽑아야
    (계속)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 사태에는 이른바 '빌라왕', '빌라의신' 등 다양한 별명이 등장한다. 이런 별명이 붙은 이들은 대부분 명의를 내준 '바지 집주인'이다. 주로 마땅한 직업이 없는 이들 또는 사회초년생들이 '배후 세력'으로 꼽히는 컨설팅 업체 등으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고 명의를 내준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빌라왕은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이들을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전국적으로 뻗어있는 빌라왕들을 포함해 그 배후에는 어떤 세력이 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놓고 수사 중이다.


    '명품 파우치' 들고 부유했는데…유서 남긴 '청년빌라왕'의 말로


    전세사기 피해규모 및 수사상황전세사기 피해규모 및 수사상황
    현재 언급되는 빌라왕은 7명으로, 이 중 3명은 사망한 상태다. 사망한 3명 가운데 유일한 20대로 '청년빌라왕'으로 불리는 송씨가 있다.

    수도권에 빌라 58채를 소유했던 송씨는 지난해 12월 인천의 한 빌라 2층 거주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1995년생 송씨는 유서에 경제적 어려움을 언급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가 빌라를 매입한 방식은 전형적인 '동시진행' 수법이었다. 기존 임대인이 임차인과 전세계약한 뒤 임대인과 매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송씨는 분양사무소로부터 신축 빌라 등 매물을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매매하기도 했다.

    동시진행으로 계약이 진행된다는 것을 임차인에게 알리지 않으면서도, 전세계약에 송씨가 직접 나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2021년 12월 경기 부천시의 한 오피스텔을 전세계약한 A씨는 계약 당일에서야 자신이 계약한 집주인이 곧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바뀔 임대인인 송씨를 비롯해 송씨의 대리인조차 볼 수 없었다. A씨는 "당시 공인중개사가 '이 자리에 송씨가 와있는 것입니다'라며 자기가 대신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임대사업자'라고 소개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4월 송씨에게 신축 빌라를 분양했던 한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송씨의 사망에 대해 "그(언론에 나오는) 빌라왕이 송씨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이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매매할 때 송씨가 직접 와서 자신을 임대사업자라고 소개하며 계약을 체결했다. 임대사업자 등록증도 확인하고 (계약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송씨가 직접 무갭투자자로 2~3년 후에 시세 차익을 노리고 투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송씨를 어떻게 알게됐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송씨의 말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전세세입자, 공인중개사, 분양사무소 등 송씨를 직접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송씨를 '부유한 젊은 임대사업가'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송씨와 만나 전세계약을 체결한 B씨도 송씨의 첫인상을 "부유해 보였다"고 말했다. B씨는 "당시 송씨는 한 명품 파우치를 들고 왔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자동차도 소유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송씨가 사용하던 SNS 프로필 사진에는 고급 요트로 보이는 곳에서 찍은 사진도 남아있다.

    그런데 불과 3개월이 지난 지난해 7월 보증보험 감정평가서를 받으러 송씨를 찾아간 B씨는 깜짝 놀랐다. 계약 당시 부유해 보였던 송씨가 살던 집이 예상과 다르게 낡은 빌라였기 때문이다.

    B씨는 "그때 송씨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다며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며 "실제 당시 만난 송씨는 화장기가 없고 병약한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또 "공장에서 12시간 교대근무를 하고있어서 오후 6시 이후에만 전화 통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송씨는 오후 6시 이후에는 임차인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실제 송씨가 거주했던 인천 남동구의 한 4층짜리 빌라는 '빌라 58채를 소유한 청년빌라왕'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허름해 보였다. 송씨의 '공범'이자 '배후'로 지목되고있는 20대 오모씨도 이 빌라 4층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빌라 인근 거주민은 오씨에 대해 "맨날 밤에만 활동을 해서 술집에서 일을 하는 줄 알았다"며 "고급 자동차를 수시로 바꿔 타고 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그 친구들도 초록색 외제차처럼 눈에 띄는 것만 탔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천경찰청은 송씨와 오씨 관련해서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오씨가 송씨의 배후라고 볼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며 "아직 피해자가 명확히 누구인지 확정되지 않았고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백채 소유한 '임대사업자'…계약 때 얼굴도 안보여


    숨진 빌라·오피스텔 임대업자 정모 씨 사건과 관련해 실제 집주인, 다시말해 '빌라왕'의 배후로 추정되는 신모씨가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숨진 빌라·오피스텔 임대업자 정모 씨 사건과 관련해 실제 집주인, 다시말해 '빌라왕'의 배후로 추정되는 신모씨가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등지에서 빌라 240여채를 소유했던 일명 '강서구 빌라왕' 정모씨는 2021년 7월 제주에서 사망했다. 정씨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정씨에 대해 "매우 평범한 40대로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거주지가 제주였던 정씨는 수백채 빌라를 소유하면서도 실제로 임차인과 얼굴을 마주한 적이 드물었다. 2021년 4월 정씨와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를 계약한 C씨는 "정씨는 제주에 거주해서 서울에 와서 계약하기도 어려웠다"며 "저와 계약할 때도 1~2분 간 짧게 얼굴과 신분증을 보고 계약만 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씨 임차인 D씨는 "(정씨가 임대인으로 있는) 우리 건물에서 실제로 정씨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며 "대리인이 오거나 인터넷 화상 연결로만 얼굴을 봤다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씨는 사망 이후에도 잔금을 치루는 등 거래 흔적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정씨와 관련해서는 서울경찰청이 수사 중이며 최근 배후인 부동산컬설팅업체 대표 신모씨를 구속하고 일당 78명을 검거했다.

    수도권 등지에 1139채를 소유한 채로 지난해 10월 사망한 김모씨는 가장 유명한 빌라왕이다. 김씨 역시 자본이 없이 갭투자를 하거나, 동시진행 수법으로 빌라를 사들였다.

    2020년부터 전세사기를 시작했던 김씨는 그 한 해 동안 약 370여채의 주택 명의를 이전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생전 김씨는 고급 외제차를 렌트해서 타고 다녔으며, 하룻밤 술값으로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쓰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세사기 이전에도 김씨는 여러 전과가 있었다. 2019년에는 보이스피싱 일당에 계좌를 제공하고,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활동하다가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현재 서울경찰청은 김씨와 관련해서 공모한 것으로 보이는 5명에 대해 수사 중이다.


    '바지 집주인' 빌라왕과 다르다…딸과 함께 사기 친 '건축왕'


    연합뉴스연합뉴스
    다른 빌라왕들이 일정 금액을 받고 명의를 내준 이른바 '바지 집주인'이었다면, 인청 등 지역에 2709채 주택을 거느린 '건축왕' 남모씨는 다르다. 본인이 건축회사 회장이면서 직접 신축 매물을 바지 집주인들에게 팔아넘겼다.

    남씨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남회장'으로 불린다. 남씨는 2013년부터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지었다. 이 지역에서 주택임대사업으로 모은 자금으로 강원도에 동해경제자유구역 망상 제1지구 개발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 사업에 임차인들의 보증금도 투자됐는데, 해당 사업이 잘 안되고 금리가 오르는 등 어려움을 맞닥뜨렸다. 결국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고 2022년쯤부터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건축왕 남씨 일당은 전세계약을 하면서 근저당이 많이 잡힌 신축 건물을 문제가 없다는 듯 홍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과정에서 임차인들이 근저당에 대해 우려하면 "건물주가 부자다" "공인중개사에서 하면 문제가 없다"며 속이기도 했다.

    더구나 남씨의 딸이 중개사무소에서 전세계약을 직접 중개하기도 했다. 2021년 남씨 일당의 인천의 한 주택을 전세계약한 E씨는 "당시 집에 잡혀있던 근저당이 너무 많아서 위험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중개사였던 남씨의 딸이 '이 건물 전체 주인이 2명인데 매우 부자다. 걱정 안해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인중개사 끼고 (계약)하면 돈 떼어먹힐 일 없다. 걱정 말라'고 했다"며 "남씨가 '매매가가 훨씬 높다'고 했는데 실제로 매매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해당 주택에 건축왕 남씨의 이름으로 근저당이 설정되고, 경매에 넘어가는 등 문제가 발생하자 딸인 남씨는 자신의 아버지인 남씨에 대해 "누군지 모른다"고 발뺌하기도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남씨와 오랫동안 알고지내며 함께 일했던 한 내부 관계자 이모씨는 자신은 말그대로 '바지 집주인'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씨와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냈으며, 7년 전부터 함께 일했다는 이씨는 서류상 남씨의 건물을 소유한 임대인들 중 하나다.

    이씨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나는 세입자의 보증금 1원도 받지 못하고 명의만 이용됐다"며 "남씨의 회사 직원으로서, 남씨가 지시하는대로 명의만 썼고, 받은 것은 직원으로서 월급 뿐이다"고 답했다. 이씨는 남씨에 대해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씨는 '전세사기'라기보다는 '부동산 사업 실패'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씨는 "사기였다면 임대사업을 하지 않고 10여년 전 애초부터 전세금을 갖고 도주하지 않았겠느냐"며 "전세계약을 할 때 근저당 잡힌 내용도 설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수사 중인 인천경찰청은 남씨 일당이 임차인에게 이같은 근저당의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적극적으로 속이기까지 했다고 보고있다. 경찰은 건축왕 남씨와 관련해 남씨 등 공범 51명을 수사중이다. 최근 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빌라왕들, 전세사기 전 '불법 도박장'·'보이스 피싱' 전과도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빌라의신' 권모씨 일당은 그 별명대로 '왕'들과는 규모가 다르다. 권씨 일당은 수도권 등지에 3493채를 소유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빌라의신은 권씨 한 명이 아니라, 박모씨, 최모씨를 통칭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이들은 번호 뒷자리가 '2400'으로 끝나는 통일된 대포폰을 사용하기도 해 '2400 조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씨는 지난 3년 동안 1297채 주택을 명의 이전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전세사기에 뛰어들기 전부터 사행성 게임기 '바다이야기'를 이용해 불법 도박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뺑소니를 친 범죄 이력도 있다.

    지난해 9월 경기남부경찰청은 이들을 일당을 구속하고 공인중개사, 브로커 등 48명도 검거했다. 경찰은 현재 이들과 관련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에 413채를 소유한 빌라왕 이모씨는 중개보조원으로 활동하면서 한 공중파 부동산 전문 프로그램에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씨는 2018년 6월쯤 부동산 관련 법인을 설립해 동시진행이 가능한 매물을 물색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이씨가 소유했던 413채는 모두 '깡통전세'였다. 또 이씨는 임차인 118명으로부터 보증금 312억 원을 편취했다.

    서울경찰청은 이씨를 구속하고 일당 7명을 검거했다. 또 건축업자와 분양대행업자 등 공범 여부도 수사 중이다.

    이밖에도 빌라왕이라는 명칭은 붙지 않았지만 수십채씩 소유한 것으로 언급되는 바지 집주인들이 다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전세 계약 특성상 임차인이 직접 피해를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향후 전세사기 피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반론보도]「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등 기사 관련
    노컷뉴스는 지난 1월 22일자 「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1월 24일자 「사망해도 계속 생겨나는 전국 '빌라왕'…배후, 뿌리를 뽑아야」, 1월 25일자 「막막한 설 보낸 전세사기 피해자들…"빌라왕 활개, 정부는 뭐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건축업자 A씨는 "경찰이 가로챘다고 한 보증금 266억원은 아직 피해 금액으로 현실화된 금액이 아니며,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세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딸과 함께 사기친 건축왕으로 보도된 부분에 대해서는 딸은 입건된 사실조차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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