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F 장착차량을 알리는 스티커. 주영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차 주인에겐 쉿!"…매연차량 '2만대' 날개 달았다 (계속) |
국내 한 매연저감장치(DPF) 제작사가 대기환경 보전 등을 위해 노후 경유차에 부착하는 DPF 필터를 가품(假品)으로 생산해 차량 수만대에 장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경찰도 해당 업체 등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들어갔다. 한 업체에서만 그동안 가짜필터를 장착한 차량은 2만대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부터 가짜 필터 만들어 차량에 장착…보조금 부당 이득 추정
27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한 DPF 제작사인 A업체는 최소 2010년대부터 매연저감 기능이 약화된 DPF필터를 별도 생산해 차량에 장착하고 있다.
DPF(Diesel Particulate Filter·디젤 미립자 필터)는 배출가스 5등급인 경유차에 장착해 미세먼지를 저감시키는 장치다. 차량에서 배출되는 매연을 모아 500도가 넘는 고온에서 태워 미세먼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부는 대기질 개선을 위해 2005년부터 새 경유차에 이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했다.
노후 경유차 또는 건설장비 등 매연을 과다 유발하는 차량의 소유주는 차량을 폐차하거나 DPF를 장착해야 한다. 해당 차량의 소유주는 폐차를 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국내 DPF 제작사 8곳 가운데 한 곳과 DPF장착 계약을 맺어야 한다. DPF를 장착하면 매연량이 기존 노후경유차량 대비 80%가량 줄어든다.
정부는 DPF 장착 비용의 90%를 지원해주며, 장착 이후에는 3년간 3차례 필터 청소 비용을 지원해 대납한다. 필터 청소 비용이 1회에 15만원인 걸 감안하면 45만원을 지원해주는 셈이다. 이후에는 지자체 예산으로 1년에 한 번 무상으로 필터를 청소할 수 있다.
A업체의 경우 실제 필터 청소에 3~4시간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소비자 불만을 줄이기 위해 기존 차량에 장착된 필터를 떼어낸 뒤 새 필터 또는 필터 청소를 마친 다른 필터를 교체하는 방식으로 필터 청소를 해왔다. 즉 A업체의 필터 청소는 사실상 필터 교체의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이 과정에서 가짜 필터를 장착했다.
DPF 장착 이후 3년간은 정부가, 이후에는 지자체가 필터 청소 비용을 대납해주기 때문에 A업체가 가짜 필터를 장착하는 방식을 통한 필터 청소로 부당하게 정부와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아 챙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A업체가 차량에 장착한 DPF필터의 종류. 왼쪽부터 재생필터, N필터, 정상필터. 주영민 기자"DPF 장착 이후 차량 출력 저하" 민원에 대응하면서 장착
A업체가 이같은 가짜 필터를 제작해 부착하게 된 건 과다한 민원을 해결하고 추가 DPF필터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DPF를 장착하면 차량 운행시 매연을 태워 재로 만드는 과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출력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다.
차량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태우면 DPF 장치 내부에 재가 쌓이게 되는데, 이를 방치하면 차의 연비와 출력, DPF 성능 자체가 떨어진다. DPF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터를 청소해 쌓인 재를 제거해야 한다. 필터 청소가 필요한 때는 운행 기간 10개월 또는 주행거리 10만km를 경과했을 경우다.
또 DPF가 정상 작동하려면 배기가스의 온도를 높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속 80㎞ 이상의 고속주행이 필수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다. 정차가 많은 택배차량이나 시속 90㎞ 이상 운행할 수 없는 레미콘 차량이 특히 고장이 잦다. 일부 운전자는 저감장치를 제거하거나 필터에 구멍을 뚫어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A업체는 필터 청소 이후에도 차량 출력이 개선되지 않는다며 민원이 이어지고 이로 인한 사후 서비스(A/S) 출장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차주들에게 '출력이 떨어지지 않는 필터'를 제작했다며 가짜 필터를 달아줬다. 가짜 필터로 차량 출력 저하 관련 A/S 출장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필터 청소에 사용되는 교환용 DPF필터의 제작량도 줄었다.
이를 통해 차량 출력 저하 관련 민원으로 인한 A/S가 줄면서 교환용 필터 제작량도 줄었다. A업체는 민원이 줄자 "우리 제품은 차량 출력 저하 관련 민원이 거의 없다"고 대내외적으로 알렸고, 이를 토대로 DPF 장착 계약도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CBS노컷뉴스가 가짜 DPF필터를 제작한 이 업체의 내부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그동안 가짜필터를 장착한 차량은 2만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A업체가 필터청소 업무를 맡는 협력업체에 보낸 공지문자. 독자 제공직원들에게는 '가짜필터 존재 알리지 말라' 입단속
A업체가 가짜 필터인 'N필터'를 제작한 건 2015년 전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A업체의 필터 청소 협력업체에서 근무한 B씨는 "2015년 전까지는 기존 필터에 구멍을 뚫어 장착하는 방식으로 민원을 피했고, 이후 정부가 구멍 뚫린 필터에 대한 단속에 나서면서 외관은 정품과 똑같지만 매연을 모으지 못하는 N필터를 별도 제작해 각 협력업체에 배포했다"며 "2015년 이후에는 기존의 구멍 뚫린 필터를 N필터로 바꾸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A업체는 필터에 일부러 구멍을 뚫어 매연저감 기능을 없앤 필터를 '재생필터', 재생필터를 대체해 제작한 가짜 필터를 'N필터', 정품은 '정상필터'라고 지칭했다. 실제 A업체가 하청업체에 메신저 등을 통해 배포한 공지사항을 보면 "절대 차주에게 재생필터, N필터, 정상필터 등 필터 종류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동차 명장 "N필터, 정품과 성분 달라…매연 포집 기능 없는 듯"
CBS노컷뉴스는 A업체가 생산한 정상필터와 N필터를 입수해 두 필터의 성능 차이가 있는지
박병일 자동차 정비 명장에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 두 필터를 구성하는 성분은 다르게 나왔다. 박병일 명장은 "전자현미경으로 두 필터의 일부를 채취해 관찰한 결과 각기 전혀 다른 성분으로 구성됐다"며 "성분 분석만으로도 이미 두 필터가 같은 회사 제품이지만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명장은 이 분석을 통해 두 필터 중 정품은 정상 작동하지만, 다른 필터는 매연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경찰, A업체 본사·공장 등 압수수색…수사 착수
경찰도 최근 A업체의 가짜 필터 생산·장착 정황을 파악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인천남동경찰서는 지난 23일 사기 및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등의 혐의로 A업체의 본사 사무실과 공장, 필터 청소 협력업체 등을 압수수색했다.
A업체는 필터 청소를 요청한 DPF 장착 차량에 가짜필터를 교환하는 수법으로 대기환경 오염을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을 저해하고, 정부에는 정품 필터를 장착한 것처럼 속여 보조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업체의 본사 사무실과 필터 제조공장, 창고, 필터청소 관련 협력사 등을 압수수색해 이들이 제조한 가짜 필터와 관련 전산 자료, 차량 장착 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CBS 노컷뉴스는 A업체에 N필터의 매연저감장치 성능인증 여부와 가짜필터 장착 의혹 등에 대한 입장 등을 듣기 위해 A업체에 연락했지만, 업체 측은 "최근 경찰 압수수색 등으로 입장을 내기 곤란하다. 며칠 뒤 입장을 내겠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