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현실판 더 글로리' 정순신 사태…"이런 나라에서 애 낳으라고?"

  • 0
  • 폰트사이즈
    - +
    인쇄
  • 요약


사건/사고

    '현실판 더 글로리' 정순신 사태…"이런 나라에서 애 낳으라고?"

    핵심요약

    국수본부장 임명 하루 만에 아들 학폭 드러나…당시 檢 인권감독관
    동급생 대상 언어폭력으로 '강제전학'…반성커녕 "취소해야" 소송전
    피해자 극단선택 시도할 만큼 괴로운데…'승소' 자신에 서울대 진학
    맘카페 "韓 저출산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 2030도 "아이 안 낳고파"
    急 '학폭 대책 보고' 지시한 尹…"뒷북 코미디" "유체이탈 따로 없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던 정순신(57·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아들의 '학폭(학교폭력) 논란'으로 하루 만에 사퇴했지만 후폭풍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직무 관련성도 떨어지는 검찰 출신을 무리하게 앉히려 하더니, 언론 보도까지 됐던 사건을 대통령실이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정 변호사 부부가 가해자인 아들의 강제전학 처분을 되돌리기 위해 소송까지 건 반면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점을 두고, 학폭을 소재로 한 유명드라마 '더 글로리'(넷플릭스)의 "현실판 시즌2"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부모가 돈 있고 '빽' 있으면 다 해결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겠냐는 자조적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27일 교육부에 "지방 교육청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조속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언뜻 정 변호사의 낙마가 대통령실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일이었던 것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같은 날 정 변호사를 국수본부장으로 추천한 윤희근 경찰청장도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경찰청은 인사검증 권한이 없고 검증결과를 보고받을 뿐"이라며 "검증 결과, '아무 문제없음'이라고 통보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황진환 기자대통령실. 황진환 기자
    앞서 대통령실은 전날 발령 취소 관련 이도운 대변인의 브리핑에서도 "검증에서 문제가 걸러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며 "(대통령이 학폭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트위터 등 다수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 "코미디가 따로 없다" 등의 비난이 잇따랐다.

    교육부는 이날 부랴부랴 "학폭 근절 대책을 다음달말 정도에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2012년 수립되고 1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전반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최근 발생한 사안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우려와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나날이 지능화되고 악랄해지고 있는 학폭 관련 대응체계를 점검·보완하는 것은 당국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부실한 인사검증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가해자의 부모를 경찰 수사 최고 책임자로 직접 지명한 정부가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생색'을 내는 것 자체가 이번 사태의 아이러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공분을 산 부분은 '계급 사다리' 위에 자리한 부모가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해 아들의 '있는 죄'를 덮으려 했다는 점이다.
     
    관련 판결문 등에 따르면, 정 변호사의 아들 정모씨는 강원도 소재 자사고에 재학하던 2017년,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동급생 A씨에게 8개월 동안 언어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표현의 수위는 임계치를 넘어선 수준이다. 정 변호사가 2018년 미성년자인 아들을 대리해 학폭 가해로 인한 전학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행정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정씨는 A씨에게 "빨갱이 XX",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더러우니까 꺼져라"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강제전학 처분을 받았다. 가해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정됐음에도 반성은 없었다. 정 변호사 부부는 '전학 처분이 지나치다'며 되레 행정소송을 걸었지만, 2019년 4월 대법에서 최종 패소했다.


    피해자 A씨는 극심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었다. 정씨의 이름만 들어도 몸을 떠는가 하면 공황장애 등으로 입원치료도 받았다. 정상적 학교생활을 할 수 없었고, 자살 시도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정씨는 현직 검사였던 아버지를 자랑하며 '무조건 승소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명백한 '2차 가해'지만 입시가도는 순탄했다. 정씨는 2020년도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 소송전 당시 정씨는 서울중앙지검의 '인권감독관'이었다.

    해당 사건이 '고위직 검사 아들의 학폭'으로 보도됐던 그때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현 정부가 출범시부터 기치로 내건 '공정',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결과다.
     
    '맘카페' 등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는 들끓고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엄마들이 가입한 한 포털 카페에는 "한국이 저출산의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를 보여주는 뉴스"라는 성토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90년대까지만 해도 부모가 어떤 포지션이냐보다 본인이 열심히 공부하면 대치동 학원을 안 가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루트가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가 가능했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정 변호사 사태를 보며) 부모의 배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처절히 깨닫게 됐다""이 땅의 모든 아들·딸들이 공정한 잣대로 평가받을 때 출산도 증가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엄마들은 "(정씨 사례처럼) 나중에 밝혀지더라도 입시나 취업 등 모든 면에서 학폭 관련(혐의)은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으면 좋겠다", "피해자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갈 것"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연합뉴스
    아직 미혼인 MZ 세대도 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대' 수준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 학폭 피해를 당한 20대 이모씨는 "지금도 그때 기억이 떠올라 잠들기 힘든 날이 있다"며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들도 (정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김모씨는 "이런 사회에서 그저 '아이를 낳으라'는 주문만 외는 정부가 우습다"며 "가뜩이나 출산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안 낳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최근 사회복지연구에 게재된 '청년층의 삶의 질과 사회의 질에 대한 인식이 결혼 및 출산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사회적 신뢰가 높다고 느낄수록 결혼·출산을 '중요하다'고 느낄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가 사회의 공정성과 평등 수준이 높다고 여길수록, 결혼과 출산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여지가 생긴다는 뜻이다.
     
    전국에 거주하는 만 20~34세 성인 남녀 281명에게 물은 이 조사에서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는 데 동의한 여성은 불과 4.0%에 그쳤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