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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나쁜 'N번방법'? 국회에 '책임 입법' 요청한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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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나쁜 'N번방법'? 국회에 '책임 입법' 요청한 헌법재판소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2020년 4월 29일 재석의원 전원 찬성으로 국회 문턱을 넘은 법이 있습니다. 일명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방지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형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일부 법률 개정안입니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사람을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의 요지입니다. 단순 소지하고만 있어도 처벌 대상이 되는 아주 강력한 법입니다.

    'N번방 사건'은 2019년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 채팅방을 통해 불법 음란물을 생성하고 거래 및 유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으로,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그 피해 대상과 정도가 깊고 넓습니다.

    당연히 전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총선과 겹치면서 정치권은 N번방 관련 법을 여야 할 것 없이 발의했었죠. 의원들과 시민단체는 무더기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여야는 약속대로 2020년 총선 직후 4월 29일 본회의 가결 전날과 당일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회의를 열고 부랴부랴 개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런데 개정안 가결 후 약 3년 뒤 2023년 2월 23일 헌법재판소는 이 개정안 일부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립니다. 헌재 재판관 모두 이 개정안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했는데,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위헌 이유와 함께 당시 국회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너무 가혹한 처벌? 왜 위헌인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재판관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문제가 된 성폭력처벌법 3조 1항의 개정 전후 조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中
    개정 前: 제3조(특수강도강간 등) ① 「형법」 제319조제1항(주거침입), 제330조(야간주거침입절도), 제331조(특수절도) 또는 제342조(미수범. 다만, 제330조 및 제331조의 미수범으로 한정한다)의 죄를 범한 사람이 같은 법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유사강간), 제298조(강제추행) 및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後: 제3조(특수강도강간 등) ① 「형법」 제319조제1항(주거침입), 제330조(야간주거침입절도), 제331조(특수절도) 또는 제342조(미수범. 다만, 제330조 및 제331조의 미수범으로 한정한다)의 죄를 범한 사람이 같은 법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유사강간), 제298조(강제추행) 및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한눈에 보이시죠? 법정 최저형이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주거침입의 기회에 행해진 강제추행·준강제추행의 경우 정상을 참작해 감경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도록 했다"며 "법정형의 하한을 일률적으로 높게 책정해 경미한 강제추행·준강제추행까지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에 반한다"며 위헌 결정을 했죠.

    이 조항에 따르면 형법상 주거침입의 죄를 저지른 사람이 강제추행, 준강제추행 등의 죄까지 범하면 절반으로 형을 낮추더라도 일단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게 됩니다. (※집행유예 선고 기준은 징역 3년 이하) 물론 '집에 쳐들어와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3년 6개월 실형은 선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 헌재의 설명을 보시죠.

    2023. 2. 23 성폭법 상 주거침입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 사건 헌법재판소 선고 中
    재판부: 형법상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 경우는 일상적 숙식의 공간인 좁은 의미의 주거에 대한 침입에 한정되지 않으며, 행위자가 침입한 공간이 일반적으로는 개방되어 있는 건조물이지만 관리자의 묵시적 의사에 반하여 들어간 경우도 포함되는 등 그 행위 유형의 범위가 넓다. …(중략) '추행행위'에는 '강간‧준강간' 및 '유사강간‧준유사강간'에 해당하는 행위는 포함되지 않으며, 유형력 행사의 대소강약이 문제되지 않는 '기습추행'이 포함되는 등 그 행위 유형이 다양하다. …(중략) 이에 따라 주거침입의 기회에 행해진 강제추행 또는 준강제추행의 불법과 책임의 정도가 아무리 경미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다른 법률상 감경사유가 없으면 일률적으로 징역 3년 6월 이상의 중형에 처할 수밖에 없게 되어, 형벌개별화의 가능성이 극도로 제한된다.

    아파트 로비에서 일어난 경미한 성추행을 가볍게 처벌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개정안에 따르면 사람들이 통상 생각하는 것처럼 '집'에 강제로 들어와 강간·준강간을 저지른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보다 덜 못된 사람들도 무조건 실형을 받게 됩니다. 법정형의 상한을 높게 규정한 탓에 죄질이 아주 나쁜 자와 나쁜 자, 덜 나쁜 자 사이 차이를 둘 수 없게 되고, 이는 "책임주의에 반한다"는 것이 헌재 설명입니다.

    법 똑바로 만들어 주세요…재판관의 부탁

    연합뉴스연합뉴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헌재는 사실상 국회에 책임감을 갖고 법을 만들라는 취지에서 질타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선애 재판관은 "평등원칙에 반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책임이 입법자에게 있다"고 별개의견까지 내가며 국회에 법 좀 똑바로 만들라고 합니다.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이 선고됐는데 별개의견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는 법조계 평가가 나왔습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023. 2. 23 이선애 재판관 별개의견 中
    입법의 과정의 측면에서는 국회법 등 법령이 정한 절차에 따른 다양한 의견의 수렴 및 해당 범죄의 법정형을 규정한 법률안에 대한 축조심사를 포함하는 토론과 의결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국회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개정한 법률조항에 규정된 법정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입법재량을 적정하게 행사한 결과로 추정된다. …(중략) 입법과정에 관해서는 국회의 회의록 등 공개된 입법자료와 사실조회 결과를 통하여 볼 때, 성폭력처벌법 제3조 제2항의 '특수강도강간죄'와 혼동한 나머지 실제 심의 대상이 되는 같은 조 제1항의 '주거침입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에 대한 심의는 하지 않은 채, 그 법정형을 상향하도록 의결하였다는 사정이 확인된다. 즉, 심판대상조항의 입법과정에는 '주거침입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에 대하여 그 '법정형의 하한을 징역 5년에서 징역 7년으로 상향하는 법률안의 내용'에 대한 의견 수렴과 명시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죄질이 다른 성폭력범죄와의 혼동으로 인하여 그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토론에 의한 심의가 누락된 채 의결되었다는 오류가 존재한다. …(중략) 합리적 이유 없이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거나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이므로, 형벌체계의 균형을 현저히 상실하여 평등원칙에 위배된다.

    축조심사란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법률안 조항 하나하나 낭독하며 심사하는 방식인데요. 위원회 심의에서는 생략할 수 있지만, 소위 단계에서는 원칙적으로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적법한 입법 절차'라고 하려면 소위 위원들끼리 조항 하나하나 소리 내 읽어가면서 논의해야 한다는 거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인데, 문제는 이 개정안은 아주 급하게 통과됐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결 전날과 당일까지 소위 회의를 했으니까요. 당시 법사위 소위 회의록을 보면, N번방 사건 국면에서 논의의 초점은 △불법촬영물 제작과 소지 △법정형 상향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등에 맞춰져 있습니다. 문제적 조항 3조 1항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020. 4. 29 법사위 제1소위 377회 회의 中
    법사위 전문위원:  성폭력범죄 법정형 상향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정안의 입법 취지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감안하여 적정한 법정형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입니다.

    법사위 소위원장:  법무부 의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무부차관:  13세 미만에 대한 강간은 법무부는 현행 유지 의견입니다.

    (중략)

    법사위 소위원장:  그러면 이것도 좀 더 검토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좀 더 조정해 보고요. 다음에 네모 4항 특수강도강간․특수강간이 현행 무기, 5년 이상인데 이걸 7년 이상으로 올리자, 특수강제추행도 3년인데 5년 이상으로 올리자 이렇게 돼 있거든요. 차관님 어떻습니까?

    법무부차관:  저희는 박인숙 의원님 안에 동의합니다.

    법사위 소위원장:  올리는 것에?

    법무부차관:  예.

    법사위 소위원장:  차장님 의견은 어떻습니까?

    법원행정처 차장:  저희는 현행 유지 의견입니다.

    법사위 소위원장: 그러니까 다른 법하고, 다른 죄하고 관계가 있지요, 그렇지요? 지금 7년 이상 되는 게 뭐가 있나요?

    법원행정처차장: 13세 미만에 대한 유사강간이 7년 이상이고요.

    앞서 살펴봤듯이 3조 1항에는 특수강도강간죄부터 주거침입까지 다양한 종류의 범죄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를 5년 이상으로 단죄할 때에는 죄질에 따라 법관이 실형을 선고할 수도 있고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었죠. 양형에 대해 논의하긴 했지만 급하게 논의하다 보니 특수강간에 초점이 맞춰졌고 형량을 7년 이상으로 높이면서 문제가 생겨버린 겁니다.

    양형위원회 자료 안보고 법 만드는 국회

    범죄단체조직죄에 적용된 조씨는 지난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2년 형을 확정받았다. 조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도널드푸틴' 강모씨(25)와 '랄로' 천모씨(29)에게는 모두 징역 13년이 확정됐고, '블루99' 임모씨(34)는 징역 8년을, '오뎅' 장모씨(41)는 징역 7년을 확정받았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범죄단체조직죄에 적용된 조씨는 지난 10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2년 형을 확정받았다. 조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도널드푸틴' 강모씨(25)와 '랄로' 천모씨(29)에게는 모두 징역 13년이 확정됐고, '블루99' 임모씨(34)는 징역 8년을, '오뎅' 장모씨(41)는 징역 7년을 확정받았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주빈의 경악할 범죄에 전국민적 분노가 일었고,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엄벌을 요구했던 때였습니다. 20만 명 이상 청원만 9건이었죠. 사법부와 달리 국회는 국민적 요구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고 국민 개개인과의 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입니다. 여야 지도부 역시 'N번방법'의 빠른 통과를 법사위 위원들에게 주문했었고요. 정치적 압력에 더불어 설상가상으로 당시 법사위 입법조사관이 건강 문제로 해당 논의가 이뤄지던 때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

    국회사무처가 당시 상황에 대해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국회는 "대상 범죄의 법정형 상향에 관한 기타 검토 자료는 없다"고 했습니다. 헌재는 또 '양형위원회의 연간보고서를 입법 과정에 활용하느냐'고 국회에 물었는데, 국회의 답은 이랬습니다.

    성폭력 특례법 위헌제청에 대한 국회사무처의 사실조회 답변서 中
    "국회 관계 법규는 법안 심사 시 양형위원회의 연간보고서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국회가 법률안을 심사하면서 관계 기관인 법원행정처의 의견을 청취하는 중에 양형위원회 보고서가 참고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상 범죄의 법정형 상향에 대해 양형위원회의 연간보고서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실)

    이 범죄에는 이 정도 형량이 적당하다는 법원 측 의견의 총체가 양형위 연간보고서입니다. 소위 위원들 대부분이 모두 법조인 출신으로 '법을 아는 분들'이지만, 양형위 자료를 참고라도 했다면 위헌 결정이 나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회의록을 보면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개선하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서두른 입법이었고 그 과정에서 평등·비례의 원칙이라는 대원칙이 간과됐습니다.

    이 점에 대해 당시 관계자들 대부분 "총선 직후였던 데다 빨리 개정하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린 잘못이 있다"라고 반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국회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법'을 발의하고 상임위 통과까지 일사천리로 입법 과정을 마무리짓습니다.

    국민의 요구에 빠르게 응답한 건 칭찬받을 일이지만, 이렇게 통과된 법이 몇년 뒤 헌재에서 뒤집힌다면 이만큼 소모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형벌체계의 균형을 상실했다"는 이선애 재판관의 일갈과 더불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국회가 앞으로는 꼭 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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