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투수들. 연합뉴스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한국 야구의 초라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일본이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도 너무 큰 점수 차로 무너졌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2차전 일본과 경기에서 4 대 13으로 대패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무대서 인정받은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3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으로 타선의 중심에 섰고, 리드오프로 나선 일본계 미국인 라스 눗바(세인트루이스)가 4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으로 펄펄 날았다.
여기에 또 다른 빅 리거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마저 3타수 3안타 5타점을 터뜨리며 한국 마운드를 사정 없이 두들겼다. 일본 타선은 장단 13안타를 퍼부었다.
선발 등판한 MLB 통산 95승의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는 3이닝 3실점으로 다소 부진했지만 뒷문이 견고했다. 뒤이어 마운드에 오른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가 3이닝 1실점으로 잘 버텼다.
우다가와 유키(오릭스), 마쓰이 유키(라쿠텐), 타카하시 히로토(주니치)는 실점 없이 1이닝씩 막아내며 한국의 공격을 꽁꽁 묶었다.
대표팀 타선에선 KBO 리그 최고 타자 이정후(키움) 홀로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양의지(두산)가 두 경기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고, 박건우(NC)가 솔로포를 보태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안타 6개로 4득점에 그친 채 무릎을 꿇었다.
김광현(SSG)은 일본 킬러로 기대를 모으고 선발 등판했지만 옛말이었다. 한일전서 눈부신 호투를 보여준 건 무려 15년 전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조별 리그와 준결승전에서였다. 2회까진 안타를 한 개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3회 4실점 후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굳은 표정의 WBC 대표팀. 연합뉴스
불펜진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됐다. 원태인(2이닝 1실점), 곽빈(⅔이닝 1실점), 정철원(⅓이닝 1실점), 김윤식(0이닝 3실점), 김원중(⅓이닝 1실점), 정우영(⅔이닝 무실점), 구창모(⅓이닝 2실점), 이의리(⅓이닝 무실점), 박세웅(⅓이닝 무실점) 등 김광현이 내려간 다음 무려 9명의 투수를 동원했지만 일본의 강타선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역대 최강으로 기대를 모은 내야진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현역 빅 리거 김하성(샌디에이고)과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으로 구성된 키스톤 콤비 역시 일본의 맹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9점 차로 끌려가던 7회말 2사 만루 위기에 등판한 박세웅(롯데)이 8회말까지 실점 없이 막아냈다. 하지만 간신히 콜드 게임 패배를 면했을 뿐이었다. 7회 이후 점수 차가 10점 이상이 되면 콜드 게임이 선언된다.
객관적인 전력에선 열세란 평가를 받았어도 그간 한일전서 수차례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지만 이번에는 전혀 손을 써보지 못했다. 이강철 감독이 경기 후 일본 취재진에 "9점 차로 패한 게 일본과 차이를 보여주는 수치라 생각하는가"라는 굴욕적인 질문을 받을 정도로 무기력한 패배였다.
이 감독은 "일본이 잘했다. 잘한 건 인정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능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 생각한다"면서 "더 성장하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은 반드시 이날 패배를 교훈삼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