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GM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미국 오하이오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LG에너지솔루션 제공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탈중국화 기조를 발판 삼아 K-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북미 시장 투자가 탄력을 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고, SK온과 삼성SDI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 재무부의 IRA 세부 지침이 조만간 공개될 예정인 가운데 K-배터리 업계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될지 주목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7조2000억원을 투자해 신규 원통형 배터리 독자 생산 공장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 지난해 3월 1조7000억원을 들여 원통형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가 투자비 급등을 이유로 3개월 만에 보류했는데, 그때보다 5조원 이상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생산 네트워크 지도. LG에너지솔루션 제공국내 배터리 업체 중에서 북미 지역에 원통형 배터리 전용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건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이다. 해당 공장은 연평균 27GWh(기가와트시)의 생산능력을 갖춘다. 고성능 순수 전기차 35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IRA 시행에 따라 북미 지역에서 고품질·고성능 배터리의 안정적인 공급을 요청하는 고객이 크게 증가했다"며 "이에 기존 계획했던 투자를 대폭 확대해 고객과 시장 수요에 적극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신규 공장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앞으로 북미 지역에서 총 7개의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은 △지역 △고객 △제품 △스마트팩토리 등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해 북미 시장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금번 투자로 향후 고성장이 예상되는 북미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SK온이 미국 완성차 기업 포드와 지난해 5월 총 10조2천억 원을 투자해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세우고, 미국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연간 129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생산공장 3곳을 구축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사진은 블루오벌SK 켄터키 공장. SK온 제공SK온과 삼성SDI 등 다른 K-배터리 기업들의 북미 시장 투자도 가속화하고 있다. SK온은 포드와 손잡고 미국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배터리 생산 기지 3곳을 구축하고 있다. 테네시주 스탠든에 43GWh 규모의 공장 1개소가, 켄터키주 글렌데일에 같은 규모의 배터리 공장 2개소가 각각 들어선다. 조지아에서도 독자 생산 공장 2개소를 가동하고 있다.
삼성SDI는 북미 완성차 시장 3위인 스텔란티스와 미국 인디애나주에 연간 23GWh 규모의 합작 공장을 짓는다. 삼성SDI의 첫 미국 생산 거점이다. 23GWh는 전기차 약 28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이다. 여기에 제너럴모터스(GM)와도 미국 미시간주에 연간 생산 능력 30~50GWh 규모의 공장을 짓는 방안도 논의중이다. 투자 금액은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K-배터리 기업들이 북미 지역으로 발빠르게 뛰어드는 데에는 미국의 탈중국화 기조가 반영된 IRA의 영향이 크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올해부터 북미 지역에서 제조·조립한 부품을 50% 이상 사용해야 375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40% 이상을 추출·가공해야 같은 금액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규정했다. 세계 배터리 1위 업체인 CATL 등 중국 기업들은 북미 시장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에 생산 기지를 확보한 K-배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높아진다.
삼성SDI와 스텔란티스는 24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에 25억달러(약 3조1천625억원) 이상을 투자해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는다고 밝혔다. 사진은 삼성SDI-스텔란티스 합작사 체결식. 왼쪽부터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마크 스튜어트 스텔란티스 북미 COO. 삼성SDI 제공
미국 재무부는 이번주 전기차 배터리 부품·핵심 광물의 IRA 세부지침을 내놓는다. 관건은 배터리 핵심 소재인 양극재·음극재를 부품과 광물 가운데 어느 쪽으로 분류할지다. 부품으로 분류하면 북미에서 제조·조립해야 보조금을 받지만, 광물로 묶으면 대미 FTA 국가에서 생산해도 세금 혜택이 가능하다.
지난해 공개한 백서에서 미국 재무부는 FTA 비체결 국가가 추출한 광물이라도 이를 체결국에서 가공해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원산지를 FTA 체결국으로 보겠다고 규정했다. 중국 등으로부터 수입한 광물이라도 한국과 같은 대미 FTA 체결국에서 이를 가공해 부가가치 기준을 충족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정부는 세부지침이 백서 내용대로 나올 거라고 예상하면서도 미국 배터리 업계 일각의 반발을 남은 변수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배터리 기업들은 백서 내용이 유지되면 핵심 소재를 외국에 의존하는 현재 상황이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며 불만을 보이고 있다.
다만 반발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전반적인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한국 기업의 현지 투자를 연일 경제 성과로 홍보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백악관은 26일(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제조 공장 예산을 4배로 늘릴 계획이고, 현재 이 프로젝트에 55억 달러를 지출해 북미에서 가장 큰 독립형 배터리 단지가 될 수 있다"며 "이 기업은 지난해 의회에서 통과된 IRA의 세금공제 덕분에 수요가 증가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