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를 올리고 있는 이원정. 한국배구연맹아무리 뛰어난 선수여도 우승과 인연이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하지만 데뷔 6년 차 세터 이원정(23 ·흥국생명)은 한 번 하기도 힘든 통합 우승을 무려 두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이원정은 2017-2018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한국도로공사의 지명을 받았고, 데뷔 첫 해부터 통합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이후 2020-2021시즌 GS칼텍스 이적 후 곧바로 두 번째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우승 기운을 타고난 걸까. 지난해 12월 27일 GS캍텍스에서 트레이드를 통해 흥국생명으로 이적한 이원정은 개인 통산 세 번째 통합 우승을 코앞에 뒀다.
당시 팀을 이끌었던 권순찬 전 감독은 세터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해 이원정 영입을 단행했다. 권 전 감독은 "이원정이 코트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영입 배경을 설명한 뒤 "단순한 전력 보강이 아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추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원정과 권 전 감독의 동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권 전 감독은 지난 1월 구단 윗선의 선수 기용 개입 등 외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돌연 경질됐다.
그럼에도 이원정은 팀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했고, 팀을 정규 리그 1위에 올려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권 전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흥국생명 이원정. 한국배구연맹이원정은 정규 리그 막바지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다.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맞았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해 지난달 29일 한국도로공사와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랫 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경기 감각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2차전은 달랐다. 여전히 햄스트링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만 정교한 토스로 팀의 공격을 진두 지휘해 승리를 이끌었다.
흥국생명은 3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도드람 V리그 여자부 도로공사와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 대 0(25-18, 25-15, 25-21) 완승을 거뒀다. 5전 3선승제 챔피언 결정전에서 1, 2차전을 내리 잡아내며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뒀다.
하지만 이원정은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부상 이후 챔피언 결정전을 위해 운동을 많이 했지만 몸이 잘 올라오지 않아서 속상했다"면서 "1차전보다는 (경기력이) 나은 것 같은데 만족하진 못한다"고 말했다.
시즌 막바지에 입은 부상에 대해서는 "중요한 상황에 부상을 당해서 속상했다. 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치료를 받고 빨리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이 좋았을 때 다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부상 여파로 3세트부터 다소 지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이원정은 "3세트에서 무조건 경기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지금도 햄스트링이 썩 좋지 않은데 4세트에 가면 힘들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천까지 가려면 빨리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햄스트링 통증 탓에 또 다른 장기인 블로킹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원정은 "세트를 거듭할수록 힘이 안 들어갔다. 그래도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3차전에서 끝내고 쉬자는 생각으로 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본단자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원정(사진 오른쪽). 한국배구연맹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에게 이원정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선수다. 그만큼 이원정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을 터. 이원정은 "감독님이 많은 주문을 하신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서 "(김)연경 언니와 옐레나가 키가 크기 때문에 높고 빠른 볼을 주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님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흥국생명 이적 후 '배구 여제' 김연경과 호흡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원정은 김연경에 대해 "칭찬과 쓴소리 모두 많이 해주신다. '나이스 토스'라고 외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는 천천히 하라고 해주신다"면서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긴장한 모습을 보였더니 다독여줬다. 많이 챙겨줘서 고맙다"고 전했다.
도로공사와 GS칼텍스에서 우승을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주전으로 뛰고 있는 만큼 짊어진 무게도 다르다. 이원정은 "도로공사에서 우승을 했을 때는 (데뷔 1년 차라) 별 생각이 없었다. GS칼텍스에서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면서도 "이번에는 확실히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간절함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새로운 팀에 오자마자 우승 기회를 잡았다. 이원정은 "이번 시즌은 확실히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면서 "또 다시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승을 하는 것도 운이 좋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고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