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코스피 지수가 2500선 턱 밑까지 치솟았다.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와 뒤이은 미국 경기 경착륙 우려 흐름, 국내 기업들의 실적 충격 속에서도 투자자들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기류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분간은 경기 악화 우려가 증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 '어닝쇼크'에도 주가는 급등…'바닥 찍었다' 판단했나
7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1.18포인트(1.27%) 상승한 2490.41에 마감했다. 작년 8월 이후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닝쇼크'를 기록한 삼성전자의 주가가 급등한 점이 지수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주가는 4.33% 급등한 6만 5천 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는 이날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매출이 63조 원, 영업이익은 6천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 95.75% 감소한 수치다. 영업이익 6천억 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 영업이익 4700억 원 이후 14년 만의 최저치로, 시장 전망치 1조 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시장은 '실적이 바닥을 찍었다'는 낙관론에 '베팅'했다. 삼성전자가 최악의 실적과 맞물려 메모리 반도체 감산 결정을 내리자 앞으로는 재고가 감소해 실적과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본 셈이다. 반도체 선두 기업의 감산 결정 영향으로 또 다른 반도체 대표주인 SK하이닉스 주가도 6.32% 치솟았다.
앞서 코스피 지수는 3월 SVB 파산 사태도 비교적 빠르게 극복하고 상승세를 이어왔다. 파산 사태 직후인 지난달 14일 2.56% 크게 하락해 2348.97로 마감했던 지수는 이후 18거래일 가운데 12거래일 상승세를 기록하며 현재 수준까지 올랐다. 상승세에 배경엔 마찬가지로 낙관론이 자리한다. 특히 금융 불안과 경기 둔화가 가시화된 만큼 글로벌 영향력이 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조기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되살렸다는 분석이다. 시장의 미국 기준금리 전망을 집계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불과 1달 전만 해도 연말에 해당 금리가 연 5.50~5.75% 수준으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가장 많았지만, 이제는 그보다 훨씬 낮은 4.25~4.50%로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연준 금리 인하 기대 여전하지만…"지금 문제는 경기"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 연합뉴스그러나 이런 낙관론은 시기상조라는 진단도 적지 않다. 아직 연준이 경기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금리 인상을 종료한 것조차 아닌데 그 이후 행보인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너무 빨리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준의 '매파(긴축 선호)' 성향 인사로 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6일(현지시간)에도 추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시장의 기대는 성급하다. 전후관계로 보면 지금 판단이 이뤄지고 반영돼야 하는 건 경기"라며 "경기 침체로 얘기될 만큼 상황이 급격하게 얼어붙는다면 그 때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당분간 금리 인하 기대에 비해 덜 반영된 '경기 침체' 우려가 시장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리세션(경기 침체) 리스크가 더욱 부각되면 증시 랠리를 이어가기는 부담"이라고 밝혔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4월 초 미국 경제지표들이 연달아 부진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며 "연준 금리 인하 기대도 높아지고 있지만, 연준이 움직인다고 해도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금리 인하 기대가 기존 대비 더 커지는 것이 주가에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리시간으로 이날 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고용보고서를 보면 3월 비농업 신규 고용자 수는 23만 6천명 증가했다. 전월(31만 1천명)보다 증가폭이 둔화된 것으로, 1월과 2월 숫자가 시장 예상치를 대폭 웃돌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월스트리트저널(WSJ) 전망치인 23만 8천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과열 양상을 보였던 노동 시장이 식어가고 있다는 뜻인데, 최근 잇따라 발표된 부진한 고용지표를 경기 침체의 신호로 보는 시각도 많다.
한편 다음 주에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등 중요 일정들이 많아 주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박희찬 연구원은 특히 "미국 은행 실적 발표에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3월 소매판매 부진에 따른 경착륙 우려 자극 강도 등도 체크포인트"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