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서울역 앞에서 출발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추모행진이 용산구 대통령실 방향을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 걸쳐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정부가 이번에는 살던 집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낙찰 받은 세입자들의 무주택 자격을 계속해서 유지해 주기로 했다.
아파트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세입자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이런 경우 당장 사는 집에 돈이 묶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공시가격 제한이 있어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6일 주택공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전세사기 피해자 등이 임차보증금을 임대인으로부터 돌려받지 못해서 자신이 살고 있었던 전셋집을 불가피하게 경매나 공매로 낙찰 받은 세입자의 경우 이 집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도 무주택으로 간주해 청약 시 무주택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원하지도 않는 집을 떠안는 것도 억울한 데 무주택 자격까지 상실해야 했던 이중적인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이 시행되기 이전에 임차주택을 낙찰 받은 경우에도 소급해 무주택을 인정하기로 한 만큼 적지 않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혜택을 받게 됐지만 관건은 실효성 여부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어도 추후 청약으로 새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당면한 상황을 놓고 보면 그 과정이 녹록치 않다.
우선 재산의 상당 부분이 전셋집에 묶여 있어 청약에 당첨이 되더라도 지난해 서울 기준 아파트 평균 분양가가 3.3㎡당 3474만원이나 하는 비싼 새 아파트 값을 부담해 내기가 쉽지 않다.
무주택 자격 유지 조건으로 낙찰 받은 주택의 가격을 공시가 기준 수도권 3억원 이하, 지방은 1억5천만원 이하로 제한한 것도 피해 규모가 작은 피해자들만 보호하는 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경매 시 해당 주택을 노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입찰하는 것을 막는 장치가 없어 낙찰 자체가 쉽지 않고, 어렵게 낙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가용 재산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야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데 지원이 원활한 전세대출과 달리 경락대출은 지원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안상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미추홀 같이 저렴한 동네는 몰라도 서울에서는 공시가격 3억원이 되게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전세가 아니기 때문에 대상을 넓혀야 할 필요가 있다"며 "경매의 경우에는 이른바 꾼들에게 다 빼앗기고, 또 대출의 어려움 등이 있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같은 제도 마련이 피해자 지원의 핵심인 피해액 지원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것도 꾸준한 지적의 지점이 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30일 법무부와 함께 마련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해 임대인이 임대주택의 선순위 확정일자 부여일, 차임·보증금 등 임대차 정보, 국세징수법·지방세징수법에 따른 납세증명서 등을 임차인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게 함으로써 임차인이 이같은 부분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도 함께 개정해 선순위 임대차나 미납·체납 국세·지방세 관련 정보가 확인될 경우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특약을 권고하도록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단독으로 임차권 등기를 종료하도록 하는 등의 장치도 마련했다.
전세사기 피해 방지를 위한 임대인 미납국세 열람제도가 시행된 지난 3일 서울 남대문세무서 민원실에 미납국세 열람제도 안내문이 놓여있다. 연합뉴스전세사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도시주택보증공사(HUG)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관계기관들도 피해자에 대한 대환대출, 피해확인절차 신속화, 피해확인서 유효·발급 기간 확대, 긴급주거지원 보증금 분납 등의 추가 대책을 내놨지만 이들 정책은 모두 피해 예방이나 피해 회복의 편의성을 높여줄 뿐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현실적인 대응책과는 거리가 멀다.
피해자들은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이나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의 내용처럼 정부가 선(先)구제 후(後)청구에 나서거나, 피해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전환하는 등의 방안이 실현돼야 피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전세사기가 피해구제 제도가 있는 의약품 부작용 같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 아니라 사인 간 거래에 의해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점, HUG의 전세금 보증보험처럼 제도 악용으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화에서 "전세사기 사건에 대한 국민적·사회적 정서가 있는 만큼 관계당국이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도 "전세금 보증보험도 전세사기에 악용됐다는 이유로 보증 범위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 또 다른 범죄를 활성화시키는 기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