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가 연극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의 이소현 감독(왼쪽부터), 영만 엄마 이미경 씨, 윤민 엄마 박혜영 씨, 예진 엄마 박유신 씨가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스포일러 주의"그러면 이제 사람들이 다 그러면 영만 엄마가 해야겠네. 영만 엄마가 하면 되겠다고 했는데 이제 예진이 엄마가 또 욕심이 많잖아. 하고 싶어 했어요. 예진이 엄마도." _영만 엄마
"너무 너무 너무 서운해 가지고…. 그거 못하면 어때요. 근데 차라리 뭐를 해서 둘이 경합을 해서 떨어졌으면 이렇게까지 마음 상하진 않았을 건데." _예진 엄마
새로운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엄마들 사이의 질투와 갈등은 깊어지고 급기야 몇몇은 극단을 나가버린다. 이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맞잡을 정도로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미 이전부터 묘하게 영만 엄마와 예진 엄마 사이에는 어떠한 기류가 흘렀다. 주연 자리를 놓고 시작된 치열한 두 배우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히 다큐판 '여배우들'이다.
영화 '장기자랑'은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극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 안에서 만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세월호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극단) 소속 배우들이자 세월호 엄마들의 모습에서는 '희로애락'을 만날 수 있다. 그들도 '배우'로서 욕망하고, '한 사람'으로서 기뻐하고, '한 엄마'로서 슬퍼한다. 여느 엄마, 여느 누군가와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4일, 서울 동작구 한 극장 라운지에서 예진 엄마(박유신), 영만 엄마(이미경), 윤민 엄마(박혜영) 그리고 노란리본 배우들을 4년간 따라다니며 담아낸 이소현 감독을 만났다. 이날의 인터뷰는 배우들이자 엄마들의 '장기자랑' 토크쇼를 방불케 했다. 영화 속 모습에 반했고, 그들의 입담에 두 번 반하게 된 자리였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귀엽고 사랑스러운 엄마들…새로운 이미지 담아내려 한 감독
▷ 오늘 인터뷰에 영화 속에서 주연 자리를 놓고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던 두 분 예진 어머님과 영만 어머님이 나오셨다. 괜히 나도 모르게 긴장해버렸다. 이소현 감독(이하 이소현) :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늘 인터뷰에서 가장 기대되는 지점이다.(웃음) 가장 포스 있는 두 분이자 연기에 관한 각자만의 철학이 있는 분들이다. ▷ 무대를 넘어 스크린까지 진출했다.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은 어떤가?
이소현 : 미모로 승부하는 다큐다.(웃음)
윤민 엄마 박혜영(이하 윤민 엄마) : 다큐에는 미모의 여배우가 나오지 않는다.
예진 엄마 박유신(이하 예진 엄마) : 우리야 실생활이 거짓 하나 없이 백프로 다 팩트다. 난 담담하고 떨리는 게 없는데 감독님이 긴장했다.
이소현 : 예진 어머님과 영만 어머님 싸우는 장면을 허락받을 때가 제일 떨렸다.(웃음) 관객 수가 안 돼서 빨리 내려갈까 그 부분이 걱정이다.
윤민 엄마 : 우리 영화는 보시는 분만 보는 스타일의 영화다. 세월호에 관심 있거나 궁금한 분이 보는 거지 전반적으로 모든 관객이 보는 거 아니다.
이소현 : 촬영 감독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나보고 김건희 여사랑 눈 딱 감고 보라는 거다.(웃음) 진실규명 원하는 사람만 봐서는 힘들다. 관객층을 넓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찍으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부분으로 많이 넣어둔 게 어머님들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는 거였다. 세월호 관련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진실규명 하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미지 말고 조금 더 친근하고 가깝게 할 수 있는 이야기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었다.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 이 영화의 시작점이 궁금해진다. 이소현 : 내 눈에는 어머님들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이전 다른 미디어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간다면 "쟤네 왜 저래?" 욕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님들이 원치 않으면 못 나가는 거였는데 흔쾌히 재밌겠다고 해주셨다.
영만 엄마 이미경(이하 영만 엄마) : 어차피 이건 다큐다. 거짓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사실을 보여주는 거다. 진짜 그때 감정이 내가 그랬고, 거짓으로 한 게 아니었다. 사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숨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면 어떡할 건가? 사람마다 다 색깔이 다르니까, 영만 엄마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거다.
예진 엄마 : 처음 감독님이 오셨을 때는 내가 까칠했다. 둘이 나 한 명을 갖고 그러니까 내가 날을 세웠다. 너무 외롭고 뿔이 났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날이 엄청 섰다.
윤민 엄마 : 그때 내가 있었으면 빨리 정리했겠지.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세월호 엄마들은 왜 '연극배우'가 됐을까
▷ 영화에도 나오긴 하지만, 처음 연극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영만 엄마 : 계기라고 하기보다 연극이 너무 재밌었다. 원래 내 성격은 되게 밝고 씩씩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한 순간 그에 주눅 들게 됐다. 그러다 보니 더 아픈 거다. 아픔을 극복 못 하니까…. 연극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열린 마당에서 내 끼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부터 해야지, 말아야지 할 겨를이 없었다.
예진 엄마 : 늘 어디 가서 질문을 받으면 예진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예진이는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고, 수학여행 가기 전날까지도 연기 학원을 엄청 열심히 다녔다. 그런 예진이가 보면서 엄마를 평가할 거야, 엄마인데 잘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공연할 때도 예진이에게 가서 내 분량을 읽어주며 혼잣말을 많이 했다.
윤민 엄마 : 사실 난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뒤에서 서포트하는 보좌관 역할을 잘한다. 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배우가 모자란다고 해서 땜빵하러 들어온 거라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나한테는 연극이란 세월호 활동의 한 가지 방법이다. 예전에는 간담회에 가서 발언하는 게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문화·예술적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지겨워한다. 세월호와 관련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의미다.
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영만 엄마 : 난 합창단 활동을 먼저 했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많이 했다. 애 보는 엄마들이 뭐 좋다고 노래하냐고…. 처음에 유가족들이 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때 시작하면서 생각한 게 있다. 아픈 걸 아프다고 슬픔으로만 마주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어느 순간 지치겠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술로 다가가면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을 거라 봤다. 오래 좋은 활동 도구가 될 거라 생각한 거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무겁고 아픈 연극을 무대에 올리지만, 연극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한다. 연극하길 잘한 거 같다.
윤민 엄마 : 아직도 세월호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너 아직도 그 활동하니?" 이러는 사람도 있다. 우리한테도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 활동가에게는 더 쉽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예진 엄마 : 9주기가 다가오는데, 그동안 연락 못했던 사람에게 연락하면 인제 와서 미안하다고 한다. 잊었다가 아니라 너무 아플 거 같다는 생각에…. 그럼에도 9주기가 와서 초대하고 부르니까 인제 와서 미안하다고, 관심 갖겠다고, 그런 사람도 있다.
윤민 엄마 : 이런 마음도 약간 그런 게, 국민 대다수가 세월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난 그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본다. 세월호를 어둡고 슬프게만 보는 거기에, 생각만 해도 미안하니까 밀쳐놓는 거다.
연극 활동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영화도 연극도 마찬가지다. 우리한테는 딜레마다. 관객이 맨날 똑같다. 새로운 연극을 하는데도 공연 보는 사람은 똑같다. 우리도 되게 고민하고 있는데, 이걸 타개할 방책이 별로 없다. 우리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새로운 사람이 공연을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가보면 작년에 봤던 사람이 이번 연극을 또 본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가 연극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에 출연하는 윤민 엄마 박혜영 씨(왼쪽부터), 영만 엄마 이미경 씨, 예진 엄마 박유신 씨가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4년 동안의 기록인 만큼 정말 많은 생각과 많은 이야기가 내 안에서 떠오를 것 같다. 윤민 엄마 : 초기에 전국 투어를 하러 많이 돌아다녔다. 몇 년이 지나도 지방에 내려가면 그런다. '세월호 유가족'이라고 하면 우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긴 한데, "아이고, 어머니" 하면서 마치 우리가 연예인인 것처럼…. 반갑다고 하고, 유가족이 여기까지 왔다고 하고.
영만 엄마 : 마치 공인처럼.
윤민 엄마 : 지방에서는 사실 세월호 유가족을 맞대면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안산에 오면 세월호 유가족이 발에 채인다고 했다. 영화에는 우리 개인 일상이 드러난다. 세월호 유가족이 저렇게 사는구나, 우리와 똑같은 엄마구나, 이런 게 처음으로 다 까발려진 거 같은 느낌도 든다. 우리가 하는 연극도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 영화를 계기로 세월호 유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상, 개인 생활이 드러나는 거 같다.
영만 엄마 : 그런 걸 보니 머릿속에서 다양한 생각이 든다. 유가족다움을 강요하는 것처럼, 강요하지 않지만 내가 유가족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성격과 다르게 말이다.
윤민 엄마 : 넌 유가족이야! 유가족이야! 그러는 거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일곱 명의 엄마가 연극을 통해 아이들을 향한 기억을 이어가는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 에 출연하는 윤민 엄마 박혜영 씨(왼쪽부터), 영만 엄마 이미경 씨, 예진 엄마 박유신 씨가 4일 오후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영만 엄마 : 어느 순간 이걸 깨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슬퍼야 하고 누가 늘 날 보고 있다는 생각에 표정지어야 하고, 그런 게 내 스스로 용납이 안 되더라. 영화에서 그걸 그대로 보여준다. 유가족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고 기쁠 때 기뻐한다는 걸 말이다. 하루 종일 슬퍼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 걸 있는 그대로 봐주면 좋겠다.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 유가족도 저렇게 즐거울 때가 있고, 다양한 감정을 갖고 다 표출하고 산다는 걸 말이다.
윤민 엄마 : '세월호 엄마'라는 것밖에 없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성격은 다 다르다.
영만 엄마 : 각자의 색깔이 다 있다. 자기가 가진 색깔,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다.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을 늘 슬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로 봐주는 게 좋을 거 같다.영화 '장기자랑'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 이미 봤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또 보고 싶어진다. 본격 홍보 타임이다. '장기자랑'을 보러 오실 관객들에게 '우리 영화는 이런 영화다'라고 이야기해 달라.
이소현 :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가 되게 중요하다. 앞으로는 새로운 기억을 함께 더해가지고 가는 게 되게 중요한 이슈인 거 같다. 세월호 가족분들이 안부를 전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정말 반가운 안부를 정겹고 따뜻할 거라 약속한다. 너무 슬프고 힘들고 비통한 게 아니라 반가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