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런던 세계 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신동훈(64)씨. 주영민 기자120번째 완주 도전…세계 6대 마라톤 완주
"시작부터 무모했죠. 첫 마라톤대회부터 풀코스로 지원했는데 다들 말렸어요. 포기하기 싫어 죽어라 연습했더니 3시간 50분대 기록으로 완주했습니다. 그게 첫 완주였죠."
전 부천시 공무원이었던 마라토너 신동훈(64)씨는 첫 마라톤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오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런던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그의 마라톤 인생에서 120번째 풀코스(Full Course·42.195㎞) 완주 도전이자 세계 6대 마라톤대회 완주 도전이다.
그는 이번 마라톤대회에서 완주하면 그가 사는 부천시의 시승격 50주년 축하 현수막과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보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어 전 세계에 부천을 알릴 계획이다. 그의 도전에 14일 부천시도 출정식을 열어 응원했다.
그의 이번 도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세계 6대 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난관이다. 세계 6대 마라톤대회는 미국의 보스턴, 뉴욕, 시카고와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일본의 도쿄 대회다. 이들 대회가 세계 6대 마라톤대회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신청했다고 모두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회에 참가할 만한 기본 기록이 있어야 하는 데다 워낙 참가 신청자가 많아 무작위 추첨으로 뽑혀야 참가할 수 있다. 운과 노력이 모두 필요한 셈이다. 신씨는 지금까지 5개 마라톤대회에서 완주했다.
세계 6대 마라톤대회를 모두 완주한 참가자에게는 '6성 메달(Abbott World Marathon Majors Six Stars)'이 수여되고, 6대 마라톤대회 통합 웹사이트(worldmarathonmajors.com) '명예의 전당'에도 수록된다. 전 세계를 통틀어 6성 메달을 목에 건 마라토너는 110여개국 1만1155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한국사람은 98명이다. 신씨가 이번 런던마라톤대회에서 완주할 경우 성적에 따라 6성 메달을 목에 건 99번째 한국사람이 될 수도 있다.
신동훈(오른쪽 첫 번째)씨가 2012년 미국 보스턴 세계마라톤 대회에서 동료들과 완주한 뒤 '제16회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홍보 현수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신동훈씨 제공"한번 시작하면 끝장보는 성격…풀코스로 입문한 마라톤"
경북 문경 출신인 신씨는 1984년 서울시 공무원으로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1년 만에 퇴사하고 이후 1988년 부천시에서 다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29년간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다가 2017년 12월 사무관으로 정년퇴직했다.
부천시 공무원으로 지내면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고, 두 딸도 무사히 키웠다. 그는 1996년 '체납차량 번호판 영치' 부분에서 부천시 공무원 가운데 가장 많은 성과를 내 경기지사 표창도 받을 만큼 매사 적극적이었지만 사실은 매일 재킷 안주머니에 '사표'를 품었던 평범한 공무원이었다고 회상했다. 신씨는 "첫 근무가 민원봉사실이었고 이어 세무, 공보, 안전 등 대부분의 공직생활을 일이 많은 부서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신씨가 마라톤을 접하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에 제대로 건강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6년 허리뼈 추간판 탈출증(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자 치료 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깅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늘면서 마라톤으로 발전했다. 결국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건 48세였던 2006년이었다.
건강이 악화돼 시작한 운동 역시 육체적·정신적으로 끝장을 보는 마라톤이었는데 의외로 잘 맞았다. 신씨는 "일과 마라톤의 공통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노력한 만큼 결과를 낸다는 점이 그러하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성격은 첫 마라톤대회 때부터 풀코스로 참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보통 10㎞, 하프코스 등 중간 단계를 거쳐 풀코스에 도전하는데 그에게 마라톤은 42.195㎞ 코스뿐이었던 것이다.
2006 춘천 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한 신씨는 매년 국내·외 주요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2019년 춘천 마라톤대회에서는 100번째 공식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을 뛴다.
14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시청 로비에서 (오른쪽부터) 조용익 부천시장과 신동훈씨, 신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신씨의 런던 마라톤대회 출정식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주영민 기자 "우선은 80세까지 완주하는 마라토너되는 게 목표"
그가 처음 해외 마라톤대회에 눈을 돌린 건 2012년. 보스턴대회는 추첨 등 운을 요구하는 다른 대회와 달리 공인된 기록이 있으면 참가할 수 있었다. 가장 역사가 깊은 대회인 데다 2001년 이봉주 선수가 우승한 대회로 친숙한 점도 참가 이유 중 하나였다.
신씨는 마침 부천시 공보․홍보 업무를 담당하던 때여서 완주할 경우 자신이 일하는 부천시를 홍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건강을 되찾고, 국제 마라톤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 곳 역시 부천시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2017년 도쿄대회, 2018년 베를린대회, 2019년 시카고대회, 지난해 뉴욕대회에서 완주한 뒤 부천시 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 홍보 현수막을 펼쳤다. 신씨는 그때가 고향을 떠나 정착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운 도시에 대한 사랑과 공무원으로서 29년을 지낸 자부심을 표현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또 그가 BIFAN의 팬이기도 했다. 신씨는 "상업영화가 아닌 장르영화를 주로 다루는 영화제여서 외국인들에게 알리기에도 더 좋은 영화제라고 생각한다"며 "나 역시 생소하지만 다양한 장르영화를 접하면서 영화를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존 카니 감독이 연출한 음악영화 '비긴어게인'이나 시각효과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트랜스포머'같은 영화들은 BIFAN을 접하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영화라고 설명했다.
특히 '트랜스포머'의 메인 테마곡 'Arrival to Earth(지구 도착)'는 지금도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연주곡이다. 언젠가 마라톤 대회를 나가는 길에 오른 여객기에서 이 영화를 보다가 가슴이 울려 그 감정을 수필로 적은 경험도 있다고 그는 회상했다.
신씨는 이번 런던 마라톤대회 출전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흔히 세계 6대 마라톤대회 완주를 위해서 필요한 3요소가 있다고 한다. 시간, 체력, 돈이다.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는 '체력'과 대회를 준비하고 해외에 체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해외 대회인 만큼 만만찮은 '경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모두 자비로 국제 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여기에 '운'도 필요하다. 6대 마라톤에 도전하는 이 중 다수가 60대 이상인 이유다.
신씨의 이번 런던 마라톤대회 완주는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기록도 오히려 처음 해외 대회를 나갔던 2012년 보스턴대회 때보다 지난해 뉴욕대회 완주 기록이 30분가량 빠르다. 이미 6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이지만 런런대회 완주는 4시간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씨는 "지금은 80살까지 완주하는 마라토너가 목표"라면서도 "하지만 건강이 허락한다면 더 뛸 수 있을 때까지 달리고 내가 사는 부천도 알릴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