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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뒤로 꺾이고 2중·3중 겹친 유해…서산 부역 희생사건 유해 발굴

대전

    양손 뒤로 꺾이고 2중·3중 겹친 유해…서산 부역 희생사건 유해 발굴

    좁은 교통호 따라 유해 60여 구 이상 발굴…최소 1865명 희생
    고개 숙이게 한 후 머리 뒤를 쏘는 총살 추정
    대부분 농사 지으며 생계 꾸려갔던 20~40대 성인 남성 추정…일부 여성 포함

    1구역에서 발굴된 유해, 양 팔이 뒤로 꺾여 있고 교통호 바닥으로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1구역에서 발굴된 유해, 양 팔이 뒤로 꺾여 있고 교통호 바닥으로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모퉁이에 호를 파놓은 데가 있어요. 신작로서 끌고 올라가서 하나 갖다 놓고 '팡'하고 총 쏘고 또 하나 놓고 '팡' 하고 총 쏘고 몇 번을 그랬어요. 처음에 '뜨르르르' 갈기고 도망간 사람이 있으니까 나중에 하나씩 세밀하게 죽이더구먼요." (갈산리 대한청년단원 이모 씨·당시 24세)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부역자로 몰려 충남 서산과 태안에서 학살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70여 년이 지나 모습을 드러냈다.

    아산에 이어 두 번째 발굴로, 이곳에서만 최소 1865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30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서산 부역 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에서 73년 전 집단학살 정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완전한 형태의 유해(유골) 60구 이상과 유품 등을 발굴했다.

    2구역에서 발견된 최소 30구 이상의 유해가 서로 뒤엉켜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2구역에서 발견된 최소 30구 이상의 유해가 서로 뒤엉켜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발굴 지역인 교통호는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인민군이 전투를 대비해 판 곳으로, 수복 후 서산지역 부역 혐의자들이 이곳에서 집단 학살됐다. 지난 2008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당시 다수의 참고인이 읍·면 단위마다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발굴 유해는 총 60~68구로, 폭과 깊이가 각각 1m 이하인 좁은 교통호를 따라 빽빽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굵은 다리뼈들뿐만 아니라 척추뼈와 갈비뼈까지도 완전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당시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 후 머리 뒤를 쏘는 총살로 추정된다. 대부분 옆으로 누워있거나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었다.

    1구역에서 나온 한 유해는 교통호 바닥을 향해 고꾸라져 있는 상태에서 양팔이 뒤로 꺾인 채 신발을 신은 상태로 발견됐다. 주변에는 M1추정 탄피도 확인됐다.

    일부 구역에서는 유해 다리 사이에 다른 유해가 안치돼 2중, 3중 위아래로 중첩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당시 학살 이후 마을 들개가 시신을 물고 내려와 이장이 청년들과 교통호 주변 시신을 교통호 안에 재매장했다는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3구역에서 최소 17구가 발굴됐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3구역에서 최소 17구가 발굴됐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이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977명으로, 희생추정자는 888명에 달한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최소 186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했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20~40대의 성인 남성들로 여성들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실효성 있는 유해 발굴과 위원회 종료 이후 유해 발굴 사업이 지속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유해 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 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를 근거로 전국 6개 지역 7개소를 선정해 유해 발굴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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