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올해 1월 전원회의 이후 5개월 만에 전원회의를 소집하고 무대에 등장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얼굴은 심하게 붓고 눈 주위에는 다크 서클이 생겼다. 볼에는 큰 뾰루지도 난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은 스트레스와 과도한 음주, 수면 부족 등이 겹칠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스트레스는 지난 5월 31일 야심차게 추진한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함으로써 스타일을 구겼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은 북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불혹이 안 된 젊은 나이지만 세상일이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일이 꼬여도 너무 꼬여 야심찬 의도가 자충수가 되었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발사된 정찰위성 탑재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이 국제해사기구(IMO)에 통보한 우주 궤도 진입은커녕 10분 만에 서해상에 추락하여 우주발사국(NADA)이 발사 실패를 공식 인정하였다.
김정은은 남측 해군이 보름 동안 사투 끝에 발사체 잔해를 인양하는 장면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독한 술을 한잔하며 측근들을 박살냈을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했더라면 이런 참패는 없었을 것으로 후회막급일 것이다. 성질 같아서는 미사일 개발총국 책임자 등을 문책해야 하지만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서두른 본인의 책임도 있으니 일단 재발사 준비에 주력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거수하는 북한 김정은. 연합뉴스 반면 한국 해군은 고군분투 끝에 천리마 1형의 2단 추진체를 인양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 군으로서는 뜻하지 않는 인양으로 부가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한국군의 인양 능력이 실시간으로 시현되어 글로벌 구조 전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K-방산의 시너지 효과도 적지 않았다. 이번 인양 작전에 투입된 청해진함, 통영함, 광양함 등 K-구조함들의 작전 수행 능력도 검증이 된 셈이다.
천마를 찾았으니 만리경만 인양하면 북한 ICBM 기술의 퍼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위성체 및 1·3단 추진체 등 추가 잔해물 탐색이 성공하면 정밀 분석이 가능하다. 연결단에 1·2단 엔진 제어, 원격 명령 및 계측, 유도제어, 배터리 등의 전장품이 남아 있다면 발사체 및 ICBM 기술 수준, 국산화 수준, 해외 부품의 구매 여부 등의 진단이 가능하다. 특히 관련 부품이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었는지를 밝히면 해당 국가와 기업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의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북한은 63일 만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하며 향후 돌파구 마련에 고심 중이다. 상반기 경제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변화된 정세와 외교·국방전략을 토의한다는 입장으로 경제난 해결 대책과 함께 2차 정찰위성 발사 등에 대한 미래 비전을 밝혔다.
전원회의 결과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다. 과거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주도했던 77살 김영철 전 노동당 대남 비서와 79살 오수용 전 경제부장이 이번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복귀했다. 김정은은 올드보이들을 구원투수로 등장시켰다.
연합뉴스 김영철 전 노동당 대남 비서는 지난 2018년과 2019년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바로 옆에서 보좌했던 최측근이다. 대남 강경파이자 원칙주의자로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정찰총국의 수장이었고, 2007년 남북 장성급회담에선 북한 대표로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위상은 급락했다. 한때 처형설까지 돌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이번에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통전부 고문으로 복귀하였다. 다시 대남 업무를 책임질 것이며 경색 국면인 남북관계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지난해 해임됐던 오수용 경제부장도 복귀했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경제 분야의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실무형 관료를 다시 기용하였다. 난국을 타개하는 데는 역시 노회하고 산전수전 다 경험한 인물이 적임자라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에 불과하다. 전권을 부여받지 않은 월급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현장관리뿐이다. 내일 모레 80대를 바라보는 이들은 과거 김정은의 지시대로 움직이다가 보직 해임된 인물들이다. 1~3년 만에 다시 자리에 돌아왔지만 근본적인 개혁과 개방은 언감생심이다.
김정은은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계기로 세상일이 본인의 의중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한 만큼, 절제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사실 정찰위성이 성공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다. 가난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사회주의 독재체제가 미사일로 불장난을 한다는 인식만 확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