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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판사 눈에만 보인 도장…법원 감정은 尹장모 진술 배격

사회 일반

    [단독]판사 눈에만 보인 도장…법원 감정은 尹장모 진술 배격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가 얽힌 사건 중 하나인 '정대택 사건'은 20년이 된 지금도 진행형이다. 검찰은 최근 정씨를 무고 혐의로 5번째 기소했다. 정씨는 사건에 검찰 고위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실제 수사와 재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CBS노컷뉴스는 객관적 자료와 사실을 통해 이 사건을 심도있게 검증해봤다.

    [정대택 사건과 法기술자들②]
    '강요죄'로 정씨 고소때 낸 약정서에 도장 안 보여
    최씨 "복사하고 팩스로 보내면서 흐려졌다" 해명
    판사도 "눈으로 쉽게 확인 가능"…최씨 손 들어줘
    법원 의뢰 감정서는 "삭제 가능성" 판결과 정반대
    양심고백 법무사 "최씨가 도장 지운다 했다" 증언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최은순, 동업자 몫 뺏으려 비밀약정" 법정 증언
    ②[단독]판사 눈에만 보인 도장…법원 감정은 尹장모 진술 배격
    (계속)

    윤석열 대통령 장모인 최은순씨의 증언을 적극 수용한 판결이 내려졌지만, 법원의 문서 감정에선 최씨 증언을 정면으로 배격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과학'이 아닌 '시력'에 의존한 판결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판사의 주관적 시력이 아닌 법원의 공식 감정을 기준으로 했다면 최씨의 애초 진술은 크게 신빙성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2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04년 진행된 최씨와 정대택씨간 항소심 재판에서는 '도장없는 약정서'를 놓고 양측 주장이 크게 엇갈렸다. 앞서 최씨는 사업 이익을 나누는 약정서를 쓰도록 강요했다며, 동업 관계였던 정씨를 2003년 12월 고소했다.

    최씨가 소유한 약정서의 원본(왼쪽)과 이를 복사해 고소장에 첨부한 사본(오른쪽).최은순씨가 소유한 약정서의 원본(왼쪽)과 이를 복사해 고소장에 첨부한 사본(오른쪽).
    항소심에서 정씨는 정상적인 약정서를 강요에 의한 것으로 꾸미기 위해 최씨가 인위적으로 도장 자국을 지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씨를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소했다.

    문제의 약정서는 서울 오금동 스포츠센터 근저당채권 인수 사업의 이익을 두 사람이 50대50으로 나누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모 판사 "도장, 육안으로 쉽게 확인"…정씨 법정구속


    약정서 도장 변조 혐의를 받게 된 최씨는 고소장을 보내는 과정에서 약정서를 복사를 하고 팩스를 이용하면서 흐려졌다고 반박했다. 도장 자국이 멀쩡히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항소심 재판장인 윤모 판사는 최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2004년 6월 선고심에서 "희미하지만 각 인영의 흔적이 있고 이를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정씨가 개인적으로 의뢰한 감정 결과를 제출했지만 참조하지 않은 채 최씨 진술에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최씨 약정서 사본에는 도장이 보이지 않지만 윤모 판사는 "도장이 쉽게 보인다"고 판결했다.최은순씨 약정서 사본에는 도장이 보이지 않지만 윤모 판사는 "도장이 쉽게 보인다"고 판결했다.
    도장을 육안 감정한 윤 판사는 "최씨로부터 돈을 받고 허위 증언을 했다"며 양심고백한 법무사 백윤복씨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판사는 강요, 사기미수, 무고 등 3개의 사건을 병합해 판결하면서 정씨를 법정구속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로부터 10여년 지난 2014년 10월 최씨 주장은 물론, 윤 판사의 판결과도 정면 배치되는 법원 감정 결과가 나왔다.

    최씨를 무고했다며 검찰이 인지 수사해 정씨를 재판에 넘긴 사건의 1심 재판에서다.

    법원 의뢰로 최씨 약정서의 원본과 사본을 비교한 감정서. 최씨의 주장과 달리 복사를 하더라도 인영만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결론이다. 해당 감정서는 도장을 인위적으로 지웠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법원 의뢰로 최은순씨 약정서의 원본과 사본을 비교한 감정서. 최씨의 주장과 달리 복사를 하더라도 인영만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결론이다. 해당 감정서는 도장을 인위적으로 지웠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법원 감정 "복사해도 도장 모두 나와…인위적 조작 판단"


    법원이 외부에 의뢰해 실사한 감정서는 "수차례 복사하였으나 문제되는 인영이 모두 나타날 뿐 아니라 복사되는 횟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쇄된 문자나 필적, 인영이 모두 전체적으로 희미하게 나타날 뿐 문제된 인영만 없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관찰됐다"고 명시했다.

    특히 "문제된 인영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문제된 인영을 삭제한 후 복사하는 방법 등 인위적으로 조작할 경우에는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판단했다.

    최씨가 고소장에 첨부한 약정서처럼 도장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넘어, 최씨가 도장자국을 고의로 지웠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셈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육안 감정을 한 윤 판사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후에 법원 감정이 뒤늦게 나와 결과를 되돌리기 어려워서다. 뿐만 아니라, 이 판결이 되레 파생된 다른 재판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만큼 윤 판사의 판결은 최씨와 정씨간 소송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법원 감정서를 받아본 김모 판사는 2017년 1월 "확정판결의 사실 판단을 뒤집기에는 부족하다"며, 무고 등 혐의 1심 재판에서 정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앞서 2015년 8월 다른 김모 판사도 '설령 최씨가 도장을 지웠다고 인정해도 강요죄를 인정한 앞선 대법 판결을 배척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정씨의 무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에도 법원 감정이 이뤄졌는데, 최씨와 법무사 백씨의 인영 부분을 놓고는 "차이(差異 )지게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다 보니, 최씨에게 불리한 증언이나 물증은 계속 배척되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법조계 "최씨 도장 삭제했다면, 사문서 위조 가능성"


    하지만 법조계에선 최씨가 인위적으로 도장을 삭제한 약정서로 정씨를 고소했다면 "무고와 사문서 변조 등에 해당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와 관련해 한 차례도 이렇다 할 수사를 한 적이 없다. 반면 "문서를 변조해 자신을 고소하고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한 정씨에 대해선 최근까지 5번에 걸쳐 무고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현재 로펌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윤 전 판사는 '실제 도장을 눈으로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20년전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본인의 당시 판결에 대해선 "항소심에서 하는 것은 물론 증거 조사도 할 수 있지만 1심 판결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상 2심까지는 사실을 다투는 사실심이다.

    백 법무사의 증언을 왜 배척했느냐고 물으려 하자, 윤 전 판사는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며 대화를 끊었다.



    이해 돕기 : 약정서 도장은 왜 중요할까


    정대택 사건에서 약정서에 도장 자국(인영)이 있느냐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이 도장 없는 문서에서 사건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또 도장 없는 문서가 제출된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누구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 있기도 합니다.

    강요에 의해 어쩔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는 최씨와 막대한 이익을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처음 약속한대로 약정서를 썼다는 정씨.

    그렇다면 이 약정서가 어떻게 쓰였는지 당시 정황을 퍼즐로 맞춰봐야 할 겁니다.

    ◇최씨 말 따라가면 '도장없는 약정서'는 미궁으로

    가장 큰 의문은 최씨가 2003년 12월 정씨를 처음 고소할 때 첨부한 약정서에는 왜 도장이 없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최씨의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약정서를 복사해서 팩스로 보내다 보니 도장이 흐려졌다는 거죠. 즉 도장이 없는 게 아니라 흐려져서 육안으로 잘 안보인다는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또다시 주장을 바꿉니다. 도장이 없는 걸 몰랐다가 나중에 정씨가 사문서 변조 혐의로 고소한 뒤 알게 됐다는 건데요. 이 부분은 도장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걸로 해석될 소지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도장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약정서 내용이 중요하다며 논점을 바꿉니다. 최씨의 말만 듣다 보면 도장없는 약정서는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법원 의뢰 감정서에는 복사를 하더라도 인영만 지워지지 않는다고 나옵니다. 더군다나 문제의 약정서 도장이 인위적으로 삭제됐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시했습니다.

    그럼 강요된 약정서일지라도 처음부터 도장이 선명한 약정서를 내면 될텐데, 왜 굳이 도장없는 약정서를 냈을까요.

    정씨의 설명 대신, 한때 최씨와 같은 편에 섰다 양심선언한 법무사 백윤복씨가 법정에서 한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백윤복씨의 법정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화 내용
    백 : 내 도장이 있고 입회인으로 되어 있는데 내가 작성을 안했다고 할 수 없어요.
    최 : 법무사님 도장은 지우면 돼요.
    백 : 도장을 지워서 소장에 첨부해서 검찰로 넘긴다고 치더라도 판사들이 짱구인가요?
    최 : 돈 싫어하는 판사 보셨나요?

    백씨의 얘기는 정씨를 고소하기 전에 두 사람이 이를 '모의'했을 뿐 아니라, 고소장에 첨부한 약정서에도 손을 댔다는 건데요. 그러면서 "실행에 옮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백씨의 양심선언은 판결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백씨의 진술이 바뀌어 믿을수 없다는 까닭에섭니다.

    하지만 기존에 최씨에게 유리하게 했던 백씨의 진술은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수억원의 금전이 오간 사이라면 이전 진술들이 더 의심스러운 게 아닐까요?  

    재판 과정에서 백씨는 최씨로부터 거액(2억원)과 아파트(3억원 상당)를 받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2억원에 대해 법률 자문을 해준 대가라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백씨가 구체적인 진술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멀쩡한 변호사를 놔두고 법무사에게 억대의 돈을 주며 법률 자문을 맡는 게 상식적일까요? 아무튼 검사와 판사의 시각으로는 그렇습니다.  

    최씨는 정씨를 고소할 때 백씨도 함께 고소했는데, 이 역시 각본에 의한 것이라고 백씨는 고백했습니다. 백씨는 "최씨가 (인영을) '삭제했다'고 했고, 그것이 전제가 되지 않았다면 상피의자가 되는 걸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최씨와 백씨가 둘 사이의 금전약속 이행을 놓고 틀어질 때쯤, 1억원을 갖고 백씨를 찾아간 최씨의 딸 김건희 여사는 자존심이 상한 백씨를 "순수한 마음에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습니다.  

    결국 정씨에게 민형사 소송에서 연거푸 승소한 최씨는 53억원을 독차지했습니다. 또 최씨는 법무사 백씨에게 줬던 아파트도 소송을 통해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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